모나리자와 모네와 모택동은 같은 모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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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와 모네와 모택동은 같은 모씨가 아니다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21.08.01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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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영 칼럼]

한동안 공수부대 자문위원을 했다. 틈틈이 공수부대원 2, 3백 명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을 하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재능기부’ 요청을 처음 받았을 때 곧바로 승낙했더니, 주변에서 미치지 않았냐고도 했다. 당시 모 코스닥 상장회사의 매달 15시간 자문에 강의전담교수 연봉급의 1년 계약 제안은 시간 없다고 단번에 거절하더니, 왜 차비도 안 주는 봉사, 그것도 남자뿐인 특수부대 일에 선뜻 나서냐고들 했다.

왜인지 명확히 설명하기 힘들었다. 군 복무 의무를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면제받은 사실(여자로서 겪는 다른 불공평한 여건과 관습도 많지만)에서 오는 부담감도 있었다. 흔히 특수부대 지망이 가정형편과 특수훈련비 같은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는 배경도 한몫했다. 1980년대부터 십수 년 미국 체류 시절, 가난한 조국 돈을 쓰지 않겠다고 오로지 전액 장학금과 연구비 지급 대학과 기관으로만 옮겨 다니긴 했지만, 어쨌든 사회적 특혜를 더 누린 일인으로서 남녀성비에 상관없이 군대에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원하는 강의 수준을 물었더니, “저희가 모나리자, 모네, 모차르트, 모택동이 같은 모씨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안다”는 신박한 답변을 해서 함께 웃었다. 매번 쉽고 재미있게 강의하고자 애썼다. 청중의 연령과 지식과 관심에 맞추어 강의해야 하고, 초등학생이든,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어르신이든, 대부분 고졸인 부대원이든, 강의를 지루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강의자의 잘못이었다. 때로는 의외로 해박한 부대원들의 지식에 놀라기도 했다. 알렉산더대왕을 좋아해서, 십대 초반에 몇 년간 그의 기일 무렵에 시를 써서 제문 삼아 추모제를 지낸 일화와 함께 알렉산더와 키루스대왕 얘기를 했더니, 이미 만화와 영화를 통해 그들의 ‘군인정신’을 익히 알고 있었다. 

모나리자와 모네의 성씨 얘기나 만화와 영화를 활용한 공수부대 강의 경험이 대학 강단에서 유용해진 것은 그 후였다. 최근에 미술 전공생들과 수업하다 보면 종종 ‘신박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십 년 전에 학내 강의를 시작했을 때는 예습은 물론이요, 에세이 시험에 A2 용지 5, 6쪽 분량으로 과분한 답지를 내는 선배들 때문에 A 학점을 가르느라 애먹곤 했었다. 이제는 다르다. 어느 미술사 시간에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기원후(AD, CE) 2000년은 1000년보다 최근인데, 왜 기원전(BC, BCE) 2000년은 1000년보다 예전인 것인지 물었다. 고등학교에서 선택과목인 세계사는 배운 적이 없고, 책은 별로 읽지 못했단다. 모두가 당연히 알리라고 지레짐작한 선생의 소홀함을 사과하고, 설명을 했다. 수업 후에 대화 나눈 그 학생은 한부모 가정에서 ‘알바’ 서너 개를 뛰며 등록금과 생활비를 버느라고 책 읽을 겨를도 없다고 했다. 

학기 말 무렵이 되자 난생처음 공부하는 재미를 알았다는 그 친구는 나처럼 유학 가서 다른 세상을 겪고 싶다고 했다. 열심히 말렸다. 학문에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아야 하고, 특히 미술사는 융·복합 학문이라서 여러 언어와 분야를 섭렵해야 하며, 투자 대비 가성비가 최하위 분야임을 거듭 강조해 설득했음에도 실패했다. 중ˑ고등학교 때 죽도록 싫었다던 영어공부에 매진하더니, yBa(young British artists)도 모른다던 그 친구는 지금 국비장학생으로 영국 대학원에서 현대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다. 새 세상에 살며 공부하기가 너무도 재미있단다. 이 경험이 그의 긴 인생 여정에서 유익일지 해가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현재 행복하다면 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학령인구 감소와 더불어 평균 학력감소가 화두이다. “세상은 당신이 무엇을 아는지 관심이 없다. 당신이 아는 것으로 무엇을 하는지가 관심사다.” 토니 와그너의 말이다. 많이 알면 어떻고, 조금 알면 어떠한가. 전에는 대학 문턱조차 넘을 수 없던 이들이 이제는 연령 상관없이 누구나 들어와 새로운 삶을 체험할 수 있으면 족하지 아니한가? 물론 교수들이 ‘꼰대’가 아니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꼰대가 되지 말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 of Delaware)에서 미술사 석사와 철학 박사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객원강의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대미술사학회 회장과 미술사학연구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미술과 교수로 원광대 국제교류처장과 한국문화교육센터장, 전라북도 문화예술진흥위원,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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