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세력이 두려워했던 해양 세력의 찬란한 역사
상태바
대륙 세력이 두려워했던 해양 세력의 찬란한 역사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7.25 1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해양 세력 연대기: 현대 세계를 형성한 바다의 사람들 | 앤드루 램버트 지음 | 박홍경 옮김 | 까치(까치글방) | 542쪽

 

민주주의와 세계 무역, 자유의 가치를 형성한 5대 해양 세력 강대국, 그들은 어떻게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는가? 아테네와 카르타고, 베네치아와 네덜란드 공화국 그리고 영국. 광대한 영토나 수많은 인구 없이도 풍요로움과 강성함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저자 앤드루 램버트는 바다를 기반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축한 이들을 해양 세력으로 정의하면서, 이들이 어떻게 현대 사회의 토대를 형성했는지를 톺아본다. 

흔히 바다 주위에서 대륙 진출을 꿈꾸는 세력을 해양 세력이라고 부르는 것과 달리, 이들은 대륙을 향한 야욕을 가지는 대신 패권 국가를 경계하며 국제 사회의 균형을 이루고자 했고, 무역 활동을 위협받지 않는 한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 또한 거친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국민을 포용하는 공화정과 민주정을 발전시켰고, 경제적으로는 무역을 중시하는 열린 태도를 보임으로써 현대 정치, 경제의 기반을 닦았다. 

해양 세력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갖춘 존재로서, 대륙 세력과 패권을 다투는 동등한 세력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야심만만한 해양 세력의 신화가 그들의 문화를 두려워했던 대륙 패권에 의해서 창조된 것에 불과하다면 어떨까? 이 책은 해양 세력을 둘러싼 그간의 오해가 바다에 대한 오래된 혐오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며, 해양 세력을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가 취하는 전략 혹은 그 정체성이라고 다시 정의한다. 그리고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에 등장한 5대 해양 세력 강대국을 통해서 민주주의와 세계 무역, 자유 가치를 형성한 해양 세력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제1장에서는 고대 해양 세력을 통해서 해양 세력 정체성이 무엇이며,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고대의 해양 세력은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서 무역을 통해서 발전했다. 무역의 요충지에서 성장한 페니키아와 크레타는 장거리 교역의 허브로 부상하면서 이익을 취했다. 그러나 육지 세력은 권력 분산과 변화라는 진보적인 사고를 전파하는 해양 세력을 경계했다. 제2장에서는 최초의 해양 세력 강대국인 아테네를 살펴본다. 이전까지의 해양 국가들이 소규모 도시나 섬나라와 같은 변방의 세력이었던 반면, 아테네는 규모가 크고 부유했으며 독립적으로 기능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기틀을 다짐으로써 막대한 인력과 비용이 필요한 함대를 효율적으로 운용했다. 그러나 정복과 착취에 열을 올리면서 아테네는 해양 세력 정체성을 상실했고 이후 쇠락했다.

제3장에서는 대륙 제국 로마의 야욕을 억제하여 국제 사회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던 카르타고를 다룬다. 상업을 중심으로 발전한 카르타고는 무역을 중시하고 전쟁을 회피했지만, 대륙의 군사 대국인 로마와의 충돌이 불가피해지자 동맹을 통해서 그들에 대항하고자 했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국민을 포용하고 평등한 문화를 두려워한 로마에 의해서 조직적으로 파괴되었다.

제4장과 제5장은 근대에 나타난 해양 세력인 베네치아와 네덜란드 공화국을 각각 다룬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공화국 내에서 독특한 특성을 유지하면서 강력한 관료제와 고도의 법률 체계를 발전시켰다. 상업과 자본을 중시한 베네치아는 용병을 활용하여 전쟁을 치렀고, 항구와 요새에 투자하여 도시를 방어했다. 또한 이들은 다른 지역과의 차별화를 꾀하면서 자신들의 위세를 자랑하는 건물들을 세웠고 다양한 의식을 거행했다. 한편 네덜란드 공화국은 하나의 국가 안에서 해양 세력과 육지 세력이 길항하는 상황을 보여주었다. 해양 세력 정체성을 받아들인 해안의 3개 주와 달리 육지에 둘러싸인 나머지 4개 주는 그것을 거부했다. 20여 년간 유지된 데에 불과한 네덜란드의 해양 세력은 내륙 방어가 중시되면서 막을 내렸다.

제6장과 제7장에서는 해양 국가와 해외 제국, 대륙 세력의 해군력 등 해양 세력과 혼돈되기 쉬운 개념들을 살펴보면서 해양 세력의 정의를 명료하게 다듬는다. 먼저 제6장에서는 해양 국가와 해외 제국을 해양 세력과 비교한다. 해양 국가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바다를 중시하지만, 작은 규모로 인해서 해양 세력을 구축하지 못했다. 반면 해외에 영토를 거느린 대륙 국가는 육지의 안보를 중시하면서 바다를 기능적으로 활용할 뿐, 바다를 중시하지 않았다. 한편 제7장은 대륙 국가의 해군력이 해양 세력과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에 주목한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에 바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해군을 구축했지만, 상업을 경시하고 권력을 분산하지 않았다. 그 결과 러시아는 해양 세력이 되지 못했고, 그의 해군 또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제8장은 최후의 해양 세력인 영국을 살펴본다. 잉글랜드 혹은 영국은 헨리 8세가 대륙에서 잉글랜드를 분리하면서 해양 세력이 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는 가톨릭의 권위를 부정하면서 독자적인 정체성을 형성했고, 왕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해군력을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지자 왕실은 민간 기업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이는 상업과 평등주의의 발달로 이어졌다. 제9장은 해양 패권이 대륙 세력인 미국으로 넘어간 오늘날의 상황을 살펴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래 세계는 미국의 우산 아래에서 바다를 이용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등이 미국의 해양 패권에 도전하고 있지만, 이들 또한 바다를 기능적으로 바라보는 대륙 세력이다. 서로 다른 국가들이 동일한 지역을 두고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바다를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는 오늘날, 바다를 자유롭게 이용해야 한다는 해양 세력의 의제는 우리에게 커다란 메시지를 전달한다.

비록 해양 세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민주주의, 세계 무역 등 해양 세력이 구축한 지적 유산은 오늘날의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저자는 군사보다는 상업을, 권력의 집중보다는 평등화를 중시한 해양 세력의 의제를 지키는 일이 독재, 제국주의, 군사 정치 등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일임을 강조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