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지구적 삶과 21세기 인문학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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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지구적 삶과 21세기 인문학의 실천
  • 오윤호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국문학
  • 승인 2021.07.2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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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에코테크네 신체와 생태』 (이경란 외 9명 지음, 오윤호 엮음, 선인, 331쪽, 2021.05)

21세기 이후 인간은 극단적인 기술 문명의 확산과 폭염과 폭우로 대표되는 파괴적인 기후 변화를 온전히 마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인간은 ‘인간만이 더 잘 사는 세상’을 만들며 인류 문명을 잘 구축해 왔지만, 어쩌면 이러한 노력은 지구 6차 대멸종의 시간을 더욱 빠르게 앞당겨 놓았을 뿐이다. 『에코테크네 신체와 생태』는 이 절박한 순간을 주목하고 있다.

 

『에코테크네 신체와 생태』는 ‘이화인문과학원 에코테크네 학술총서’ 1권으로 기획·출간되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은 21세기 급변하는 생태-기술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문학 담론을 선도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데, 그 결과물 중의 하나가 ‘이화인문과학원 에코테크네 학술총서’이다. 생태(Eco)와 기술(Techne)을 조합하여 개념화한 에코테크네 인문학은 기술과 생태, 인간의 상호 공존 가능성을 모색하고, 기술문명과 지구환경을 비판적으로 재인식하는 인문학적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에코테크네 인문학의 출발점이 신체와 생태여야 하는가? 인문학의 역사에서 신체는 늘 정신과 대비되어서 이질적이고 오염되고 종잡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신체를 길들이기 위해, 통제하기 위해 인간은 정신을 필요로 했다. 이렇게 신체와 정신으로 구성된 인간은 (특히 서양 학문에서) 한편으로는 동물과, 다른 한편으로는 기계와 비교되면서 동시에 그것들과 구분되는 방식으로 정의되었다. 예컨대 인간은 “합리적 동물”(아리스토텔레스)이거나 “영혼이 있는 기계”(데카르트)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는 ‘감정이 있는 컴퓨터’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언제나 동물과 기계가 인간에 가장 근접해 있는 존재들이었으며, 때로는 연합의 대상으로, 때로는 공포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인간적인 것과 동식물적인 것, 그리고 기계적인 것 사이의 경계는 결코 단일하게 구분되지 않았고, 이 셋은 언제나 상호 간에 침투하고 간섭을 일으켜 왔다. 특히 기술문명이 발달한 우리 시대에 임플란트, 인공장기 등을 삽입한 인간은 기계적이면서도 유기체적 동물의 중간 어디쯤에 놓이게 된다. 

인간이 얼마만큼 동식물 그리고 기계와 이미 뒤섞여 있으며, 그것들과 어떻게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새롭게 논의해야 한다. 신체와 생태에 대해 사유한다는 것은, 우리 시대에 과학과 예술, 인문학이 포착할 수 있는 흩어지고 고립된 신체들과 생태들을 분석하는 것을 넘어선다. 에코테크네 신체와 생명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그 신체와 생태를 따라가며 생각한다는 것은 다양하게 뻗어있는 자연과 기술, 문명의 선들을 따라 인간이 의존하고 연대하고 있는 지구 위의 존재들에 대한 탈인간중심적 이해를 도모하고, 지속가능한 변화와 공존의 윤리를 사유하고 지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위트 투스: 사슴뿔을 가진 소년

한 가지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 투스 – 사슴뿔을 가진 소년>은 H5G9 바이러스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염되어 죽은 후 이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동물과 인간이 뒤섞인 반인반수 하이브리드 종이 태어나는 허구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H5G9 바이러스는 인류 문명을 파멸시키는 원인이기도 하지만, 하이브리드들을 태어나게 만들어 지구를 치유하는 부작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슴뿔을 가진 거스(주인공), 돼지코와 귀를 가진 피그테일, 두더지 모양의 아이 보비 등 다양한 하이브리드들은 근대의 인간이 의도적으로 삭제했던 인간의 ‘동물성’을 신체를 통해 보여주고, 지구 위의 생명들이 다양한 (혼)종적 진화 속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생태적 희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이브리드들을 주체로 호명하는 것, 인간-기계-생태 사이에 이들을 위치지우는 것이야말로 에코테크네 인문학의 실천적 윤리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작품 혹은 현실에서는 AI나 로봇 등이 하이브리드와 같은 상황에 놓이리라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인간이 신체와 생명, 기술과 생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으며, 인간과 자연, 기술의 상호 관계를 어떻게 재설정할 수 있는지를 묻는 10편의 논문을 3부로 나누어 구성하였다. 1부 ‘새로운 신체 개념의 탐색’에서는 동양과 서양, 고전과 현대를 넘나들면서 인간-자연-기술의 관계를 재설정하고자 하는 포스트휴먼 담론과 동아시아 유학자의 인체와 심 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이경란 교수가 쓴 논문 “로지 브라이도티의 포스트휴먼”에서,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새롭게 구성하기 위해 동물-되기, 지구-되기, 기계-되기를 주장하는 브라이도티의 제안은 에코테크네 인문학의 전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2부 ‘신체의 교란과 변신’에서는 SF, 미술, 서사 재현을 통해 드러나는 포스트휴먼 생명과 신체, 변신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전혜숙 교수가 쓴 “인류세의 미술: 생명 개념의 변화”는 미국 미술가 폴 버나우즈의 미생물 바이오아트, 그리고 미국 개념미술가인 마크 디온의 미술로 표현된 생태윤리 등을 다루며 예술 재현 속에서 표현되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관점 변화에 주목하며 생명 개념의 변화와 인류세의 양상을 탐색하고 있다. 3부 ‘생태의 재발견’에서는 문학과 예술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생태학적 상상력과 ‘병균’과 ‘생명’에 대한 근대 생명 담론을 분석하면서 기존 생태주의의 관점을 심화·확장하고 있다. 

『에코테크네 신체와 생태』에 실린 10편의 논문들은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 바이오기술, 인공지능, 로봇과 함께 기후 변화와 동식물의 멸종에 맞서는 21세기 인문학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에코테크네 학술총서’는 2권 『에코테크네 기술비평』과 3권 『에코테크네 페미니즘』을 이어서 출간하며, 에코테크네 인문학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이 학술총서 시리즈가 우리가 마주한 재앙 상황을 온전히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과 지구 생태에 대한 사유와 인문학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소중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오윤호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국문학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로 20세기 문화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던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관련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으며, SF문학비평 및 다매체 시대의 장르문학에 대한 연구도 심화하고 있다. 연구서로는 『현대소설의 서사기법』, 『이야기의 심연』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최인훈 문학의 기원과 진화론적 상상력」과 「인간을 매혹한 감정기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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