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선이 말 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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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혜선이 말 잘하네!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1.07.2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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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의 생활 에세이]
                                                         (사진=구혜선 인스타그램 캡처)

요즘 연예인들이 그림을 잘 팔아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 사람이 시작하니 용기를 얻었는지 너도 나도 동참하여 그 숫자도 제법 많아졌다. 솔비, 하정우, 구혜선, 그리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조영남 등등. 이에 대해 기성 미술계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다. 어떤 화가는 구혜선의 그림더러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는 그릴 수 있지만, 백화점 전시장에는 걸지 못할 그림이라고 혹평했다. 그런데 그가 하나 모르는 점이 있다.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구혜선이나 솔비 같은 추상화를 그리는 사람은 전혀 없다. ‘전혀’라고 하면 가능성을 아예 차단하여 문제일 수 있지만, 어쨌든 ‘거의’보다는 ‘전혀’에 더 가깝다. 거기서는 모두(또는 모두에 가까운 거의!) 정물화나 풍경화를 그린다. 

악의적인 평에 구혜선은 이렇게 답했다. “예술은 판단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기에 객관적일 수 없다.” 또 “예술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이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일 뿐, 그렇기에 노인이 주름을 만지는 것도 예술이라 행위 하면 예술이 되는 것이고, 어린아이들의 순진한 크레파스 낙서도 액자에 담아 전시함으로 예술이 될 수가 있다. 꿈꾸는 여러분들 모두 예술가가 될 수 있으니 타인의 평가를 두려워 말길.”(매일경제, 2021.7.23.) 참으로 멋진 한 말이다. 나는 구혜선을 잘 모르고 이런저런 다방면의 예술 행위들을 하며 종종 비난도 받는 ‘4차원적’ 인물이라는 정도만 안다. 그런데 이렇게 합리적인 생각을 논리정연하고 쉽게 풀어내다니, 놀랐다. 

연예인들의 그림 장사에 대한 기성 미술계의 반감을 이해한다. 쫄쫄 굶는 소위 전공자들이 즐비한데 가치가 의심스러운 그림들을 이름값으로 비싸게 팔아 재끼니 반감이 어찌 안 생길쏘냐. 나도 좀 그런 기분이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생각하면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이 몇 년 전에 2,800억 원에 팔리고 그 뒤에 내가 기억 못 하는 그림이 내가 기억 못 하는 훨씬 더 비싼 가격으로 팔린 일들은 구혜선의 그림 판매보다 과연 더 합리적일까? 연예인들의 그림 자체에 대해서도 평가가 갈릴 수 있으리라 본다. 내가 보기엔 적어도 백화점 전시장에 전시 못 할 수준은 아니다.     
 

                                                     가수 조영남과 배우 하정우의 그림

연예인 화가들에 대한 비판의 한 줄기는 그림의 기초가 부족하여 추상화밖에 못 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초라는 것은 소묘 능력이나 사실적 묘사 능력을 주로 말한다. 미술 학교에서 주구장창 배우는 것이다. 그런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이것을 연마하지 않으면 그림을 못 그린다고 생각한다. 틀린 생각이다. 오히려 이것만 주구장창 하다가 창의성의 싹을 잘라버리고 진정한 미술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묘를 잘 해야, 또 구상화를 잘 해야 추상화를 잘 할 수 있다는 근거는 아무 데도 없다. 소묘를 못 해서 추상화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반대로 추상화를 못 해서 구상화만 하는 경우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물감을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뿌리면 추상화가 되지만 구상화는 공들여 그리고 칠해야 한다. 그래서 추상화보다 구상화가 더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물감을 아무렇게나 뿌린다고 해서 모두 구혜선 말대로 느낌이 있는 추상화가 되지는 않는다. 구상화가 추상화보다 더 어려운 것이 아니라 더 노동이 들어갈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미술 제도권에서 대중을 겁박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말이 하나 있다. 너희들이 몰라서 그래, 아는 만큼 보인다, 공부해라 따위의 말들이다. 헛소리다. 구혜선이 옳다. 그림은 느낌이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그림을 그렸는지 알면 좋지. 하지만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은 그런 생각으로 그렸고 나는 이렇게 느끼면 된다. 나는 조개를 그렸는데 보는 사람이 “아 빵이네!” 하면 그것 또한 재미있고 의미 있다. 피카소 그림이든 워홀 그림이든 구혜선 그림이든 내가 좋으면 좋은 거고 내게 아무런 느낌이 없으면 없는 거다. 

공부한 사람이 안 한 사람보다 그림의 가치를 더 잘 평가할 수 있다는 말은 정치학자가 택시 기사보다 대통령 후보를 더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다는 말만큼이나 헛소리다. 둘 다 자신의 취향, 신념, 인맥, 이해관계에 따라 후보자를 선택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정치학자가 택시 기사보다 더 그럴듯하고 어려운 말로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최근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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