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술탄은 여인을 오라하고, 조선의 왕은 여인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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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술탄은 여인을 오라하고, 조선의 왕은 여인을 찾아간다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07.18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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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59)_ 이슬람 술탄은 여인을 오라하고, 조선의 왕은 여인을 찾아간다 

 

1. 마히데브란 술탄과 휘렘 

 

“누구도 자신의 뜻을 다른 이에게 강요할 수 없다. 다만 인도하고 모범을 보일 수 있을 뿐이다.” --- 『코란』 67장 26절

성경 창세기는 노아의 세 아들을 셈(Shem), 함(Ham), 야페트(Japheth)라고 전한다. 한편, 몽골제국의 구성원인 諸部族들의 역사를 다룬 『集史』의 저자 라시드 앗 딘은 중앙아시아 초원의 유목민 투르크 종족들은 노아(Noah)의 아들 아불제 칸, 그의 아들 딥 야쿠이의 네 아들에게서 나온 후손들이라고 말한다. 네 아들은 카라 칸, 오르 칸, 쿠르 칸, 쿠즈 칸이다. 

장남 카라 칸의 아들 중에 오구즈라는 자식이 있었다. 오구즈가 天神 텡그리가 아닌 사막의 신 알라에게 귀의하면서 투르크 종족은 이방의 신을 받아들인 오구즈 지지파와 반대파로 갈라졌다. 오구즈에게는 6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해와 달과 별, 하늘과 산과 바다였다. 

오구즈의 여섯 아들들은 약속이나 한 듯 아들 넷씩을 두었다. 막내아들 딩기즈(Dinggiz, ‘바다’)의 네 아들 중 막내인 키닉(Qiniq)이 분가하여 키닉 씨족의 선조가 된다. 훗날 이 씨족에서 셀주크라는 족명의 기원이 될 셀주크(살쥑크 Saljük)라는 영웅이 두카크(Duqaq)의 아들로 태어난다. 셀주크의 말뜻은 ‘작고 깨끗한 사람’, ‘홍수’ 등 이설이 다양하다. 

셀주크 부족은 10세기 말 24개 씨족으로 구성된 오구즈 야브구 부족연맹체로부터 떨어져 나와 시르 다리야(시르 江) 하류의 우안에 있는 키질 오르다 근처를 둔영지로 선택한다. 셀주크의 다섯 아들들은 이름이 아르슬란, 미카일, 무사, 유수프, 유누스였다. 

 

셀주크 투르크는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해 카스피해 북쪽 초원을 접수하고 오늘날의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에 해당하는 코카서스 지방을 수중에 넣는다. 그리고 아나톨리아 반도로 진출하면서 비잔틴 제국과 맞서게 된다. 이들이 수립한 나라를 셀주크 술탄국이라고 한다. 술탄(sultan)은 이슬람국의 군주를 가리키는 말이다. 셀주크제국 술탄들에게 있어 셀주크는 전설적 영웅이자 조상이다. 그의 삶은 오구즈 야브구 부족연맹에서 시작되었다. 10세기 후반,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오구즈 야브구의 시르 다리아강 하류에 있는 겨울 수도 얀기켄트(Yangikent, ‘새 도시’)를 떠나 잔드 일대로 이주했다.

셀주크 집단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은 이 무렵의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사만 왕조와 동맹을 맺고 이교도 투르크인들과 전쟁을 벌였다. 이 와중에 그의 차남 미카일이 죽었다. 미카일의 두 아들 차그리와 투그룰은 셀주크가 거둬 키웠다. 990년 장남 아르슬란 이스마일이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사이에 있는 낙흐샤브 또는 누르(지금의 누르 아타)로 이주했으나 셀주크는 동행하지 않았다. 그는 서력 1007년 잔드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의 이름을 딴 제국은 그로부터 30년 뒤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를 계승한 후손들에 의해 세워진 셀주크 투르크 제국(1037~1194년)은 중앙아시아와 중동 일대를 다스리던 수니파 무슬림 왕조다. 제1차 십자군의 공격 대상이 바로 셀주크 왕조다. 십자군(the Crusades)이라는 명칭은 이 聖戰에 참가했던 그리스도교 군사들의 의복에 십자가 표지를 붙인데서 유래한다. 

‘Kingdom of Heaven’이라는 멋진 영화가 있다. 4차 십자군 전쟁을 다룬 영화인데 이슬람을 믿느냐, 기독교도냐 하는 문제와는 상관없이 상당히 감동적이다. 리암 니슨, 제레미 아이언스, 올랜도 블룸, 에바 그린 등 배우들의 연기 또한 일품이다. 사라센 황제 살라딘 역을 맡은 시리아 배우 가산 마수드의 카리스마도 대단하다.  

이 영화 속에 웅장한 성채가 등장한다. 실제 건축물은 시리아 홈즈(Holmes)에 있는 ‘기사들의 성채’라는 의미의 ‘Crac des Chevaliers’다. 십자군의 마지막 성채인 이곳은 멀리서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그 견고한 아름다움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윽고 “왜 여기에, 어떻게 이런 성채를 지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저 성채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궁금함이 뒤를 잇는다.     

 

군주의 연애에도 문화의 차이가 보인다. 셀주크제국을 계승한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최고 번성기를 이룩한 술탄 술레이만은 마음에 드는 여인을 점지해 비서에게 알린다. 술탄의 의중을 전해 받은 내관은 곧바로 하렘으로 달려가 그곳 책임자에게 문제의 여인을 준비시키게 한다. Sultan은 아랍어로 ‘지배자’, ‘권력자’라는 의미의 말이다. 주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황제의 칭호로 사용되었다. 

 

(좌로부터) 오스만 제국 최초의 황후가 된 휘렘 술탄 록셀라나, 술탄 술레이만, 술레이만의 후궁 술탄 마히데브란

하렘은 아랍어 하람의 터키식 발음이고 그 본래의 뜻은 외부인이 들어갈 수 없는 여인들의 방이다. 오스만 제국 술탄들은 황제의 모후인 발리데 술탄이 골라 준 여인과 잠자리를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황제가 여성들이 모인 하렘으로 직접 행차해 여인들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렘 여인을 단장시켜 황제의 침실로 올려 보내는 형태였다.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 불리우는 키르기스스탄 남부의 오시(Osi)에 가면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크게 높지 않은 산이 있다. 술레이만 산이다. 이 산의 이름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유대인의 왕 솔로몬이 아니라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술레이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검푸른 탁수 카라 수(Kara Su, 黑水)가 관류하는 도시의 이름 Osi는 이곳이 과거 유목국가 오손(烏孫)의 중심지가 아니었을까 추정하게 한다.

술탄이 되기 전 술레이만이 총애하던 여인은 마히데브란이었다. 그런 그가 하렘에 있던 노예 출신의 록셀라나를 발견하면서 술탄의 총애를 놓고 치열한 암투가 벌어진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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