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갇힌 일본의 맨얼굴을 보다
상태바
'어제'에 갇힌 일본의 맨얼굴을 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7.18 1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 유영수 저 | 휴머니스트 | 296쪽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도입했고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지만, 권위주의 문화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산업의 쇠퇴와 주변국의 부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좋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나라 일본. 

저자는 〈Part 1. 일본은 ‘선진 법치 국가’일까〉와 〈Part 2. 개인이 보이지 않는 사회, 일본〉에서 그동안 ‘선진 법치 국가’라고 생각했던 일본의 사법제도와 사회 분위기를 날카롭게 해부하면서 갈수록 집단주의적인 분위기에 함몰되는 일본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일본은 근대 초 서구 국가들과 같은 선에 서기 위해 근대적인 사법제도를 도입했지만, 어디까지나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고 제도는 철저하게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민주주의가 도입되었어도 전근대적인 악습은 단단했다. 개인보다 집단을 강조한 결과, 일본의 시민사회는 갈수록 허약해지고 있다.

〈Part 3. 일본 정치는 왜 정체되고 있을까〉와 〈Part 4. 뒤처지고 있는 ‘일본주식회사’〉는 우리가 선망해온 ‘민주국가’이자 ‘경제대국’ 일본의 쇠퇴를 차근차근 살펴본다. 일본은 1945년 이후 민주화되어 아시아 주변국에 비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받았고 경제적으로 월등히 성장해 ‘1억 총 중류사회’를 표방하며 풍요를 누려왔다. 저자는 그랬던 일본이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경제가 정체 상태에 들어선 이유를 세심하게 짚어본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폐색감’이 짙어지는 일본 사회가 보다 민주적인 방향으로 쇄신되지 않으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정치·경제 상황은 더욱 주목을 요한다.

저자는 〈Part 5. 일본은 ‘문화 선진국’일까〉를 통해 일본의 집단주의적인 심성과 답보 상태에 놓인 경제가 문화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계적인 거장을 배출하며 명성을 날리던 일본 영화계는 위축된 지 오래이고, 1990년대 문화를 선도했던 일본 드라마 또한 과거의 성공 법칙에 머물러 있다. 서점가에는 혐한(嫌韓)·혐중(嫌中) 서적이 날개돋힌 듯 팔려나가고 혐한 특집 코너까지 마련되어 있는 데서 일본의 문화적 다양성이 크게 떨어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깥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온 일본에서 문화적 감수성의 쇠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제에 갇힌 일본’의 현재를 진단한다. 일본을 선진국으로 알고 추격하는 데 바빴던 우리는 어느새 정치적·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 사이 일본은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리만 쇼크’), 2011년 3.11 대지진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쇠퇴일로를 걷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일본은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며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점점 위기의 징후가 커지고 있다 해도 일본은 의회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다. 출판·만화 왕국답게 양질의 콘텐츠를 가득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의 드라마와 만화, 애니메이션은 우리 독자와 시청자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제조업 시대의 성과에 집착함으로써 몰락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일본은 거품경제의 붕괴를 계기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지만,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보다 결과가 검증된 성공 방식을 답습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는 ‘폐색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져간다. 1980년대까지 고도성장의 과실을 누렸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느낌이 출구 없는 세계에 대한 절망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일본을 막연히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우리의 편견이며, 어째서 일본이 정체와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지를 명쾌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전후(戰後) 일본의 성장 동인이 오늘날에는 족쇄가 되고, 메이지유신 시대의 질서가 제대로 쇄신되지 못하면서 지금의 일본이 갈수록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다양하고 생생한 사례와 치밀한 역사적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이 책은 우리가 따라잡아야 할 나라로 생각했던 일본이 어떻게 해서 ‘어제’에 갇혀버렸는지 살펴봄으로써, ‘선진국’ 일본의 맨얼굴을 직시하고 우리에게도 남아 있는 일본의 그림자를 깊이 성찰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