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모니에가 직접 그리고 묘사한 부르주아의 우아하고도 치졸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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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모니에가 직접 그리고 묘사한 부르주아의 우아하고도 치졸한 일상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7.18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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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주아 생리학 | 앙리 모니에 지음| 김지현 옮김 | 페이퍼로드 | 184쪽

 

발터 벤야민은 자신의 책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작품』(1935)에서 기술의 발전과 함께 예술 작품의 ‘아우라’가 붕괴되었다고 말한다. 더는 루브르 박물관에 가지 않아도 모나리자를 볼 수 있고 원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소유할 수도 있다. 이전의 예술 작품이 신과 종교를 중심으로 한 숭배의 의미를 지녔다면 이제는 작품의 오리지널리티가 사라지고 그 독창성마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기술복제의 차원을 넘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과 계급이 붕괴될 것임을 암시한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신흥 귀족 집단이라 불리는 ‘부르주아’다. 이들은 자신들이 견고하게 쌓아온 부와 권력이 무너지는 걸 원치 않았다. 여전히 예술작품에 ‘아우라’가 존재한다고 믿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존재를 신성화시키길 원했다. 벤야민은 이러한 상류층의 태도를 ‘예술에 관한 속물적 관념’이라 비판했는데, 이렇듯 부르주아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던 벤야민이 인정한 부르주아가 한 명 있었으니 바로 풍자화가이자 삽화가, 희극작가이자 연극배우였던 앙리 모니에다. 

당시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정치적 지형은 물론 삶의 양식마저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이때 대중들은 새롭게 등장한 인간 군상에 대한 해석에 갈증을 느꼈는데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킨 게 풍속 연구 중 하나인 ‘생리학’ 시리즈였다. 문고판으로 출간된 작은 책자에는 다양한 인간 종을 묘사한 삽화와 날카로운 묘사로 가득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생리학 시리즈의 필자로는 발자크 같은 유명 작가는 물론, 수많은 저널리스트, 신문 소설과 대중 소설 작가까지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자신이 직접 삽화를 그리고 글까지 썼던 시대의 천재 앙리 모니에는 단연 돋보이는 필자였다. 벤야민은 그를 두고 “자기 자신을 관찰할 줄 아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속물”, “생리학의 거장”이라 지칭하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부르주아 생리학'에는 풍자화가 앙리 모니에가 그린 부르주아 인간 군상이 삽화로 들어가 있다. <페이퍼로드 제공>

앙리 모니에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희극 『통속생활의 정경』에서 조제프 프뤼돔Joseph Prudhomme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면서부터이다. 당시 파리지앵은 격동하는 사회의 기득권층으로 부상한 부르주아, ‘프뤼돔’ 백작의 사소한 몸짓 하나에 열광했다. 무대에서 무슈 프뤼돔은 훌륭한 부르주아, 신중한 부르주아로 등장하지만 실상은 위선으로 똘똘 뭉친 멍청한 유산 계급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모니에는 스스로 창조한 허구 인물을 직접 연기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부르주아 집단을 해체하고 이들의 허위의식을 낱낱이 고발한 것이다. 이렇듯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화살을 겨누는 냉정함과 이를 예술로 표현해내는 눈부신 재능을 목격한 그의 친구 발자크는 자신의 역작 『인간극』 연작에 수록된 단편 「사업가Un homme d'affaires」에서 그를 모델로 장 자크 빅시우라는 인물로 창조해내기에 이른다.

모니에의 눈에 비친 부르주아는 “세상에 처음 올 때 나이가 50세인 듯하니, 그는 회색 머리칼에 안경을 쓰고 불룩한 배, 흰 양말에 검은 의복을 입은 채로 태어난” 낡아빠진 사고방식으로 자신의 삶에 안주하려는 종족에 불과하다. 그는 부르주아를 애써 설명하거나 묘사하지 않고 생동감 넘치는 대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 어떤 질문에도 “마레지구, 샤를로 가 45번지”라고 대답하는 부르주아 소년은 자신이 사는 곳의 주소만으로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타 생리학 시리즈 중에서도 은근하게 비꼬는 대화문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동시대 풍속을 다뤘다는 면에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지만, 우스꽝스러운 대화 속에 담긴 함의를 독자가 스스로 해석하고 생각을 확장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능동적인 개입을 요구한다. 이러한 모니에의 독특한 표현 방식과 부르주아를 향한 날카로운 고발정신은 후에 그에게 아카데미 프랑세즈를 두 번이나 받는 영광을 남겼다.

이 작품은 시대를 풍미한 천재이자 지식인이었던 앙리 모니에의 부르주아 고발장인 동시에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끔 만드는 작품이다. 화자는 어른들의 그 어떤 물음에도 고장 난 라디오처럼 “마레지구, 샤를로 가 45번지.”라 대답하는 소년을 두고 이 아이에게 자신의 대답이 지닌 한계에 대해 끝내 설명할 수도 이해시킬 수도 없을 거라 말한다. 이렇듯 공허한 대답만을 반복하는 아이가 자라서 어떤 부르주아가 되는 지는 애써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의 모습, 그리고 그 사회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을 포착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애초에 그것이 바로 파노라마 문학과 생리학 장르의 가장 근본적인 배경이다. 이때 그 모든 변화의 중심에 있던 존재, 급변하는 19세기의 주인공이 ‘부르주아’였음은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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