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이해하는 뇌과학으로 미디어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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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이해하는 뇌과학으로 미디어를 읽는다
  • 나은영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 승인 2021.07.18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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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듣는다]

■ 저자에게 듣는다_ 『감정과 미디어』 (나은영 지음, 컬처룩, 420쪽, 2021.06)

 

이 책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도 지금까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따로 연구되어 온 감정, 미디어, 뇌, 심리, 힐링(테라피) 등을 의미 있게 연결해 미디어 심리학과 뇌과학의 연계를 ‘감정’을 중심으로 풀어낸 저서다. 저자의 오랜 숙원이었던 문과와 이과의 융합 시도가 하나의 결실로 맺어진 것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삶은 너무나 바쁘고 복잡하다. 그 이유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미디어를 통해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정보와 자극들이 우리 머리에 입력되고 있고, 그것들을 우리 뇌가 쉴 새 없이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들 쉬고 싶어 하고 위로받기를 원한다. 이처럼 복잡한 사회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뇌와 마음이 편안해지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늘 가던 길을 가려 하는 뇌

뇌는 우리가 늘 습관적으로 해 오던 방식을 좋아한다. 늘 가던 길을 가려 하는 것이다. 우리가 별생각 없이 살아가다 보면 이렇게 자동적으로 점화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여기서 잠깐만 멈추고 우리 뇌를 스스로 이끌어갈 수 있다면, 우리도 자동적 점화에서 벗어나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인용한 뇌과학책들 중에는 이제 그만 뇌를 편안하게 해 주자는 방향의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이 상당수 있다. 뇌의 하강나선에서 상승나선으로, 생존지향 적색 뇌에서 자유지향 녹색 뇌로, 항상 긴장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현 상태 그대로를 음미하며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의 변화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뇌가 편안해졌을 때 비로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더 잘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가 충전된다.

예를 들어, 계속 우울한 생각이 들 때는 뇌가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하강나선으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사소한 활동이라도 일단 시동을 거는 것이 좋다. 간단하고 하기 쉬운 일, 예를 들면 잠깐 일어나 한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우리 뇌를 다시 긍정적인 상승나선으로 출발시키는 촉발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걱정이 있을 때는 이것을 메모하여 ‘나의 바깥쪽’으로 내보냄으로써, 일단 뇌는 지금 해야 할 일을 계속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생존회로와 감정 입자도

감정과 관련하여 뇌과학에서 밝혀진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의식적 처리과정 없이 발생하는 ‘생존회로’로서, 이것은 인지적 해석의 결과로 발생하는 감정과 다르다. 그 이전까지 편도체 연구에서 쥐의 얼어붙기 반응을 ‘공포’라고 부른 것은 단지 인간의 용어일 뿐, 실제로 쥐가 공포를 느낀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 한 가지, 뇌에 특정 감정을 담당하는 부위가 정해져 있다고 보는 ‘본질주의’가 아닌, 매 순간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들을 우리 뇌가 처리할 때 수많은 뉴런들이 수많은 조합으로 협력해 일하면서 그 순간의 해석을 구성해내는 것이라고 보는 ‘구성주의’가 대세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더 나아가, 서로 유사하지만 조금씩 다른 많은 감정들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도 있고, 미세하게 다른 다양한 단어들로 세분화해 표현할 수도 있는 ‘감정 입자도’ 개념도 유용하다. 감정 용어를 좀 더 촘촘하게 사용할 때 감정을 더 잘 다룰 수 있다. 예를 들면, ‘마음 불편함’이나 ‘불쾌함’ 또는 ‘짜증’ 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감정들을 ‘혐오’라는 매우 강한 부정적 감정 용어 하나로 묶어 사용할 경우, 부정적 감정의 원인이나 대상이 모호해져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배경 감정과 콘텐츠 감정

그렇다면 우리가 미디어에서 접하는 콘텐츠가 감정을 유발하는 과정은 어떠할까? 감정의 중요성과 함께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 복합 감정과 집단 감정 등에 관한 설명을 이 책의 1부에서 다룬 후, 2부에서는 이러한 감정들이 미디어 수용 및 표현 과정과 어떤 관련성을 지니는지 정리하였다. 이어 본격적으로 3부에서 뇌과학과 긍정미디어심리학을 연계하면서, 9장에 이르러 미디어-뇌-마음의 관계를 복층처리모델로 이론화하였다(그림 참조).

이 모델에서는 미디어 내용이 자동처리(생존회로와 습관 경로)와 숙고처리(거울체계와 심리화 체계)를 거쳐 감정으로 경험된다고 본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아도 생존회로를 통해 처리되는 감정이 ‘배경 감정’이며, 콘텐츠에 주목함으로써 처리되는 감정이 ‘콘텐츠 감정’이다. 공포영화를 볼 때 안락한 의자에 앉아서 본다면 (비록 의식하지는 못하더라도) 우리 몸은 위협받지 않는 편안한 상태임을 자동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생존회로를 통한 배경 감정이다. 영화의 내용에 주의 집중해서 경험하는 감정은 콘텐츠 감정이다.

습관 경로로 처리되는 ‘점화 감정’은 콘텐츠 감정의 가장 하단에 위치한다. 예컨대, 집단 간 갈등 상황에서 외집단 메시지는 늘 불쾌한 감정을 유발해 왔기 때문에 어느 순간 외집단 메시지라는 사실만 알아도 부정적 감정이 자동적으로 유발되는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 시냅스 가소성은 뇌의 시냅스 연결성 강화 가능성에 초점을 둔 용어로서, 편의상 점화 감정에 연결해 두었으나 실제로는 다른 단계에도 모두 적용된다. 네 단계의 감정이 순차적으로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 단계가 생략될 수도 있고 여러 단계가 동시에 경험될 수도 있다. 

숙고처리 중 거울체계를 통한 ‘대상 공감’은 상대방이나 등장인물이 ‘무엇’을 하는지에 초점을 둘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반면에, 좀 더 깊은 단계인 심리화 체계에는 상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 전후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등과 같은 의도나 상황 파악 과정이 포함된다. 이러한 심리화 체계를 통해서는 흔히 우리가 미디어 스토리에서 서스펜스와 카타르시스를 교차하며 느낄 때와 같은 고통 공감과 안도 공감 사이를 시소처럼 왔다 갔다 하며 미디어 내용을 즐길 수 있다.

긍정 감정의 선순환을 위해

긍정 감정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우리가 물리적, 사회적 공간과 미디어 공간 안에서 뇌를 포함한 신체 예산을 잘 할당해 감정을 조절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 책의 10장에서는 뇌 속의 위치세포 발견과 더불어 공간과 환경의 뇌과학을 논의하면서, 공간의 길 찾기와 마음의 길 찾기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이야기한다.

스스로 감정을 표현할 때도 감정 입자도를 높여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고,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도 아이의 감정을 어른의 용어로 무조건 규정짓기보다 감정 상태를 풍부한 표현으로 잘 이야기하며 긍정적인 사회적 공간 속에서 양육할 때 아이의 뇌도 긍정 나선의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렇게 자란 아이가 나중에 또 다른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정서를 전파하며 선순환의 고리를 형성해 갈 수 있다.

미디어도 칼이나 자동차와 같은 도구다. 따라서 미디어를 잘 활용하면 사람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사람에게 해가 될 수 있다. 미디어 스토리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의 등락을 살펴보면, 이 책의 ‘감정 굴곡의 민감성’ 모델에서 이야기하듯, 부정 감정에 더 민감한 사람과 긍정 감정에 더 민감한 사람이 있다. 웬만한 일에는 감동을 느끼지 못하면서 작은 일에도 쉽게 분노를 잘 느낀다면 부정 감정에 민감한 것이고, 작은 일에도 기뻐하면서 웬만한 일에는 쉽게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면 긍정 감정에 민감한 것이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에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만약 어린 시절에 전자와 같은 경험을 많이 하여 어쩔 수 없이 부정 감정에 민감해졌다 하더라도, 우리 뇌는 다행히 가소성을 지니고 있어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서서히 바꿔 나아갈 수 있다.

인공지능과 함께 하는 감성 예술과 힐링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특히 감성 예술마저 인공지능과 함께 하게 될 인간의 미래를 전망하였다. 낙관적 시각과 비관적 시각이 공존하지만, 만약 로봇이 인간보다 더 인간을 잘 위로해주는 날이 온다면 인간이 로봇을 더 선호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에 관한 한 인간과 인간이 함께 하는 영역이 더욱 오랫동안 남게 되기를 희망하며 글을 마쳤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 가는 동안 미디어가 우리의 뇌, 마음, 건강, 그리고 사회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파악하면서 독자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마음과 뇌에 평안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나은영 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사 및 심리학과 석사 후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거쳐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융합학문적 저서 《미디어심리학》으로 한국방송학회 학술상을 수상했고, 한국언론학회 학술상을 수상한 ‘미디어 공간 인식과 프레즌스’ 등 100여 편의 논문을 작성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비상임이사, 서강대학교 대외협력처장 및 지식융합미디어학부 초대 학장을 역임했으며, 한국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장, 한국방송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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