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불화 작품을 체계화시킨 독립된 최초의 한국불교회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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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대한 불화 작품을 체계화시킨 독립된 최초의 한국불교회화사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7.11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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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불교회화사 | 문명대 지음 | 다할미디어 | 756쪽

 

이 책은 이 땅에 불교가 수용된 372년부터 조선조가 역사에서 사라진 1910년까지의 한국의 불화를 통사적으로 체계화시킨 책이다. 우리나라 불화의 도상이나 양식의 변천을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체계화시키고 있다.

불화론 즉 불화의 조형사상이나 시대상, 도상특징이나 양식특징 등을 체계화한 이론을 각 시대별 불화의 변천 앞에 전재하여 불화 변천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조선조부터는 조성연대를 가진 화기가 있는 불화 작품 위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했으며, 조선 초기부터의 불화에는 반드시 조성연대, 작가, 시주, 주관자, 주관 사찰이 기재된 화기를 주석에 반영했다. 

고려나 조선 전반기의 화파는 불화 작품이 많지 않고 화원 수도 적어 화파를 밝히기 어렵지만 조선 후반기부터는 작품 수나 화원 수도 급속히 많아진다. 18세기 말이나 19세기에는 수많은 작품을 개별적으로 일일이 분석하고 논의하기가 어려워 불화의 흐름을 유파별로 정리하였다. 대개 경기, 충청, 전라, 경상남북도 등 크게 도별로 화파를 정리하여 불화 변천의 흐름만을 요점적으로 체계화시켰다.

불교회화의 시기 구분은 작품의 양식 변천을 중심으로 도상형식, 조성사상, 조형의지, 사회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불화의 시대 구분을 하였다.

삼국은 불교가 전래된 4세기 이후 불교사원에서 많은 불화가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사찰의 소멸로 불화는 거의 사라지고, 다만 현재 남아있는 고구려 집안의 장천 1호분예불도 벽화에서 당시 불화의 형태를 추측할 수 있는 예불도가 있다. 통일신라의 불화들은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문헌으로는 다수 전해지고 있어서 당시의 성황을 잘 알려주고 있다. 통일신라에는 수많은 불화가 그려졌다. 그러나 이 당시의 그림은 모두 없어지고 다만 백지에 그린 화엄경사경변상도(755년 완성)만 남아 있어서 당시 불화의 일면을 알려주고 있다. 

고려는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유일한 국가이다. 고려불화는 화기나 불상의 복장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왕실귀족은 물론 평민이나 천민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이 신봉했던 국민적 불교였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불화는 대부분 아미타 관계 불화이고, 일부 미륵불화, 약사불화, 조사도, 신장도 등이 있다. 고려불화는 적절한 대비효과의 구도, 단아한 형태, 밝고 호화로운 색깔, 정교하고 세련된 무늬들이 조화로와 세계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불화로 평가받고 있다.

저자 문명대

조선조는 억불숭유정책으로 불교가 탄압을 받게 되고, 불사도 제한되었다. 그러나 태조의 개인적 불사나 세종 말기의 불교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 세조의 숭불정책, 역대 왕실 비빈의 호불로 조선 초기는 국가 내지 왕실의 장인이나 화원이 불사를 담당한 경우가 많아 불교미술의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조선 초기의 불화는 고려불화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 1476년 무위사 아미타후불벽화에서 보다시피 고려불화에서 조선불화로 넘어오면서 가장 뚜렷하게 변화한 점이 구도이다. 즉 군도형식의 고려불화는 본존과 권속들을 명확히 구별하여 상하로 구분하는데, 조선조불화에서는 상하 구분이 거의 사라진다. 이밖에도 원근법이 상당히 현실화되는 점이 주목된다.

조선불화 제2기(1506~1623)는 초기불화 양식에서 탈피하여 점차 중국 명양식을 다소 수용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 양식의 특징이 상당히 정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시기 명종이 즉위하면서 문정왕후에 의한 불교부흥에 힘입어 수많은 불화가 제작되고 이 시기를 전후해서 격조 높은 불화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시기 또 다른 특징은 산수화의 구도를 크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 중기 17세기 불화는 중앙 본존을 중심으로 보살과 제자, 사천왕, 팔부중이 둥글게 좌우대칭으로 배치되는 것이 정형화된다. 조선 후기 18세기 불화는 영정조 시기의 개막으로 수많은 불화가 제작되어 불화의 황금시대다. 이 시기는 서양문물까지 수용했던 청나라 문화가 활짝 꽃피던 때와 일치한다. 조선 말기(19세기)는 1800년 순조 때부터 1910년까지로 이 시기에는 불화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이는 문화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척 세도정치와 이로 인한 삼정문란 등으로 사회가 혼란해지고 농민항거운동이 일어나면서 사회 신분의 변동이 증대되고, 이를 계기로 사상의 다양화와 개화운동의 전개, 동학운동의 폭발 등이 불교계도 자극하였다.

이 시대 불화들은 앞 시대처럼 수요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서양 화기법의 자극으로 얼굴이나 맨살 등에 음영법이 경기도 일원에서부터 시도되기 시작한다. 구도가 간략화되고 신장상의 얼굴에 명암이 설채되는 등 화풍상 현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19세기 말경이 되면서 삼신불화 등 3폭에 그려지던 불화가 한 화면에 배치되는 것이 유행하는데, 1891년 안심사 대웅전 삼신불화, 보경사 삼세불화, 1907년 갑사 삼세불화 등은 모두 작은 화면에 전 그림을 빼곡히 그려 넣은 새로운 횡구도가 크게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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