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천재들을 사로잡은 개념의 이미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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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천재들을 사로잡은 개념의 이미지를 만나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7.11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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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자의 아틀리에: 사유의 천재들은 예술에서 어떤 개념을 읽었을까? | 이택광 지음 | 휴머니스트 | 192쪽

 

위대한 철학자들은 저마다 깊이 사랑한 예술 작품이 있었다. 그들에게 그림을 보는 일은 단순히 호사 취미가 아니라 사상의 바탕을 다지는 작업이었다. 프로이트는 〈모나리자〉를 통해 다빈치의 무의식을 분석했으며, 베냐민은 클레의 〈앙겔루스 노부스〉를 주제로 역사에 대한 테제를 작성했다. 이 책은 철학자가 어떤 그림을 사랑했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며 그의 사유를 깊이 들여다본다. 저자는 철학과 그림의 관계를 색다르게 해석하며 이미지를 통해 서양철학사를 바라보는 이질적 관점을 선사한다.

철학사를 살펴보면 꽤 많은 철학자가 그림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그림과 예술에 관한 교양은 당대의 지식인인 철학자가 꼭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다. 세계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는 철학자가 세계의 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그림에 관심을 갖는 일 또한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어떤 철학자들에게 그림은 취미나 교양, 발상의 단초를 넘어 그들 사유의 뼈대와 틀을 이루는 핵심 소재였다.

 

이 책은 그림에 깊이 매료되어 개념과 의미를 창조한 철학자의 사유를 톺아본다. 헤겔, 프로이트, 하이데거, 베냐민, 그람시, 아도르노,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등 이 책에서 다루는 8명의 철학자는 모두 그의 철학을 대변하는 단 하나의 그림이 있다. 예를 들어 메를로퐁티는 세잔의 〈노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세잔 부인〉을 통해 ‘실질적인 지각의 세계’에 관한 논의를 전개한다. 세잔의 그림은 원근법에 맞지 않고 윤곽선이 중첩되어 있지만 우리는 처음 이 그림을 보고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그림을 하나하나 뜯어봤을 때 비로소 고전주의적 회화 기법에 맞지 않는 부분을 발견한다. 메를로퐁티에 따르면 우리가 실제로 받아들이는 세계는 사진과 다르기에, 하나의 소실점을 가진 시선이 아니라 다양한 시선을 보여주는 세잔의 그림이 오히려 인간의 지각에 들어맞기 때문이다. 여기서 메를로퐁티는 세계를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이라고 여기는 과학의 인식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가 대상을 볼 때 만들어지는 지각상이 ‘원초적 세계’라는 생각에 이른다. 이런 측면에서 지각적 세계를 사유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는 메를로퐁티의 ‘제3의 철학’은 〈노란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세잔 부인〉을 개념화하고 발전시킨 사유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이처럼 이미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독창적 사유의 기원을 탐험하며 철학자의 사상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철학자는 가만있지 않고, 그 그림을 개념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물론 이미지는 이 개념화에 굴복하는 척하지만, 가두어둘 수 없는 충돌의 힘이 있다. 의미화에 저항하는 이미지 고유의 작동이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철학과 그림의 긴장 관계를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그 긴장 관계 자체가 곧 철학자라는 것이 이 책의 전제이다. 철학자가 본 그림이 곧 개념과 이미지를 포괄하는 역사이다. 둘은 서로 헤어지면서도 만난다. 이 책은 철학이 그림을 통해 더욱 풍부한 개념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6쪽)

‘앙겔루스 노부스’, 말하자면 ‘새로운 천사’는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번개 같은 존재이다. 이 순간의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 새로운 잡지의 목적이어야 한다고 베냐민은 생각한 것이다. 이런 베냐민의 생각은 현대 생활에 대한 ‘순간 포착’을 목표로 삼았던 인상파를 비롯한 아방가르드 미학의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베냐민이 염두에 둔 “정신적 예술”은 자연에 대한 단순 모방을 지칭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의 순간성을 표현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중략) 이 시간성은 특정한 시의성, 다시 말해서 시간의 의미에 들어맞는 것을 뜻한다. 이런 시의성에서 중요한 것은 이른바 ‘학문적인 것’에서 배제된 것들을 다시 복원하는 작업이다.
- 4장 ‘베냐민의 시간과 클레의〈앙겔루스노부스〉’ 중에서(88~90쪽)

다빈치의 〈모나리자〉, 피카소의 〈게르니카〉, 렘브란트의 〈야경〉, 마티스의 〈붉은색의 조화〉 등 철학자의 시선이 포착한 그림은 모두 서양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불후의 명작이다. 그런데 작가, 예술 사조, 기법, 제재 등을 중심으로 그림을 논하는 통상의 작품론은 이미 작품들에 대한 비평을 마치고 새로운 이야기를 거의 생산하지 못한다. 철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그림에서 비롯한 철학에 관한 담론은 8개의 걸작을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과 해석을 선사한다. 렘브란트의 〈야경〉을 통해 외양과 본질의 관계를 논의하는 헤겔의 철학은 당시 네덜란드 화가들이 사물을 왜 그렇게 인식하고 표현했는지, 다른 강도로 비추는 〈야경〉의 ‘빛’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 등에 관한 흥미로운 가설로 이어진다. 다빈치의 무의식을 파헤치며 읽는 〈모나리자〉, 〈구두 한 켤레〉의 시각적 특성과 반고흐의 미학적 관점 등 개념의 그물망에 걸린 그림 이야기는 서양미술사의 각주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 모나리자의 웃는 얼굴을 두고 프로이트는 “해석을 요청하는 표정”이라고 언급한다. 프로이트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모나리자〉의 미소가 관객을 매혹하기에 앞서서 다빈치 자신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렸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모나리자의 미소’가 〈모나리자〉라는 작품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그린 뒤에 거의 모든 그림에서 이 미소를 반복해서 그린다. 심지어 문하생들조차 이 미소를 복제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프로이트는 역설한다.
- 2장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다빈치의 〈모나리자〉’ 중에서(48~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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