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모더니즘 문학과 포스트식민 아프리카 문학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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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모더니즘 문학과 포스트식민 아프리카 문학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읽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7.1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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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토피언 제너레이션: 20세기 문학의 정치적 지평 | 니콜라스 브라운 지음 | 김용규·차동호 옮김 | 현암사 | 460쪽

 

제1세계 문학과 제3세계 문학의 고유성을 따로 비교하지 않고, 그 차이와 동일성을 동시에 해석할 수 있는 하나의 틀과 시각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 책은 영미 모더니즘과 독립 시기의 아프리카 문학을,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변화와 위기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다른 위치를 차지하는 문학으로 이해한다. 저자는 이 두 계열의 문학이 “부유한 국가와 보다 광범위하고 보다 가난한 경제적 주변부 간의 지구적 분할”을 특징으로 한 자본주의의 전개 속에서 서로 대립적 관계, 즉 헤겔이 말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의 관계 속에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이 두 계열의 문학을 하나의 틀 속에서 사고할 수 있는 강력한 해석 지평과 시각을 제공한다. 

전통적으로 이 두 계열의 문학은 서로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거나, 아프리카 문학은 서양 문학, 특히 정전적 모더니즘 문학에 한참 미달하는 문학으로 간주되기 일쑤였다. 그 결과, 아프리카 문학은 서양 모더니즘 문학에 비해 형식적ㆍ미적 섬세함이 떨어지고, 원시적이거나 이색적인 문학으로 취급당했다. 이 책은 영미 모더니즘과 독립 시기의 아프리카 문학을 서로 관계없는 차이의 관점이나, 어느 한쪽이 다른 쪽에 영향을 미쳤다는 일방적 시각에서 탈피하면서 이 두 문학을 하나의 관점에서 통일적으로 사고하는 놀라운 통찰을 보여준다.

여기서 하나의 관점이란 이 두 계열의 문학이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와 불균등한 발전 속에서 사회관계의 새로운 형상화, 즉 유토피아적 지평에 대한 급진적 사유를 보여주는가 하는 질문에 근거한다. 특히 이런 관점은 저자에게 차이와 동일성의 변증법적 사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는 포스트식민주의처럼 아프리카 문학을 서양 문학에 대한 차이와 대립, 혹은 서구 문학과 완전히 결이 다른 문학으로 읽지 않을 뿐 아니라, 이 두 문학의 차이를 무시하는 하나의 동일한 시각 속으로 밀어 넣지도 않는다.

이 책이 추구하는 바는 “모더니즘과 아프리카 문학을 가로지르는 공통 경로들(이 경로들이 많다고 하더라도)을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 경로들이 단순한 유사성과 영향 관계를 뛰어넘어 이해되고, 그런 과정에 둘의 진정한 차이가 명백하게 드러날 수 있는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체계 속에서 각 문학이 차지하는 위치의 문제인데, 이 위치는 항상 다른 위치들과 변증법적 관계 속에 존재하고, 그런 관계 속에서만 각 문학은 자신만의 독특한 유토피아적 지평을 제안할 수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부분에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셰크 아미두 칸의 『애매한 모험』이라는 작품을 중심으로, 주로 자본주의적 물화와 그것을 재현하려는 모더니즘적 숭고 속에서 ‘주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두 번째 부분은 포드 매덕스 포드의 『훌륭한 군인』과 『퍼레이드의 끝』, 그리고 치누아 아체베의 『신의 화살』을 중심으로 근대 자본주의와 식민주의, 그리고 그들의 관계 속에서 ‘역사’가 처한 위상을 다룬다.

세 번째 부분은 윈덤 루이스의 『아기의 날』, 응구기 와 시옹오의 연극, 그리고 앙골라 작가 페페텔라의 소설 『유토피언 제너레이션』을 중심으로 ‘정치학’을 다룬다. 저자는 앞서 살펴본 작품들이 주체와 역사 간의 구체적인 매개를 결여함으로써 유토피아적 지평을 회피하는 것으로 끝난 반면에 이 세 작가의 작품들은 성격상 명백히 정치적이고, 비록 서로 상이한 관점에서이긴 하지만 주체와 역사를 서로 매개하고자 하는 명백한 시도를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는, 프레드릭 제임슨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문학의 유토피아적 지평의 소멸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오히려 영화와 같은 다른 예술 장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듯이, 저자는 문학의 유토피아적 지평이 멈춰 선 지점에서 음악과 같은 다른 예술적 실천에서 그러한 지평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본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적 위기 속에서 형성된 음악적 실천이 유럽 모더니즘 문학과 독립 시기의 아프리카 문학이 포착하고 회피한 유토피아적 지평을 새롭게 형상화할 뿐만 아니라 음악은 자본주의의 변증법, 즉 자본주의가 어떻게 계속해서 전 세계를 자신의 지배하에 종속시킬 수 있는지 검토하는 데 아주 적절한 영역이 된다. 어떻든 그의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의 문학에 유토피아적 지평이 부재하거나 회피되고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영미 모더니즘 문학과 독립 시기의 아프리카 문학에 대한 과거의 근시안적인 해석을 뛰어넘어 자본주의적 관계의 위기 속에서, 그 차이와 동일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하나의 틀로 읽을 수 있는 거시적 시각을 제공한다. 특히 이런 틀 위에서 영미 모더니즘과 아프리카 문학의 작품들 속에서 이 작품들이 어떤 유토피아적인 지평을 보여주었는가를 섬세하고 꼼꼼하게 추적한다. 나아가서 이 책은 전 세계를 무자비하게 포섭해버린 지구적 자본주의의 단일 문화 속에서 문학이 여전히 유토피아적 지평의 표현 형식일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한편, 문학을 넘어선 지점에서 사회관계의 새로운 급진적 형상화를 살피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중심부와 주변부, 제1세계와 제3세계, 구체적으로는 영미 모더니즘 문학과 포스트식민 문학들 간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읽는 놀라운 통찰을 제공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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