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인세의 투명한 정산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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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세의 투명한 정산을 위하여
  • 백원근 서평위원/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 승인 2021.07.11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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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올해 9월부터 출판유통 통합전산망(이하 전산망)이 본격 운영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런저런 요구들이 분출하고 있다. 특히 작가들이 인세 정산에 전산망 자료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주목되었다. 지난 5월 초 한 과학소설(SF) 출판사가 장강명 작가와 계약한 책의 계약금 미지급, 인세 보고 누락, 작가와의 오디오북 제작 협의 부재로 출판계약이 파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작가는 앞으로 전산망에 가입한 출판사와 계약하겠다며 정부의 전향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뒤이어,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하는 등 화제를 모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었던 『90년생이 온다』의 저자 임홍택은 출판사로부터 전자책 인세 1억 3천만 원을 못 받았으며, 무제한 스트리밍으로 서비스되는 부분은 판매 상황을 확인하기 어렵다며 출판사와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정부 지원사업의 수혜를 받기 위한 이중계약 문제도 불거졌다. 저자는 지원사업 계약서의 유효성을 주장하지만, 출판사는 지원을 받기 위한 절차적인 계약이었다고 주장한다. 전산망이 있었다면 저자와 출판사 간의 불필요한 논란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저자들의 출판계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저자-출판사 도서 판매정보 공유 시스템’을 신속하게 개발해 7월부터 시범 운영한다고 6월 30일에 전격 발표했다. 단행본 판매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의 판매 데이터를 모아 저자와 함께 공유한다는 내용이다. 전산망 사업과의 중복 논란도 있지만, 이는 손쉽게 판매량만을 우선 공유하기 위한 것이므로 중복에 따른 비효율보다는 개별 사업으로서 의의가 충분하다고 본다.
  
전산망은 책에 관한 상세 기본정보(메타데이터)를 출판사가 입력하여 유통·판매 및 도서관 등에서 활용하고, 서점의 판매 데이터를 모아 각종 통계를 만들어 사용하고자 하는 의도로 추진하는 출판유통 인프라 구축 사업이다. 현재의 유통구조에서는 책의 공급처인 출판사라 해도 어떤 책이 거래처별로 또는 전체적으로 얼마나 출고해서 팔리고 재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기 어렵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대형 서점과 도매상, 도서관 등은 각각 개별적으로 서지사항을 입력한다. 신간 보도자료도 언론사마다 보내야 한다. 책을 검색할 때 제목이 아닌 내용 또는 주요 키워드를 이용해 원하는 책을 제대로 찾기도 어렵다. 개별 판매업체가 아닌 전국 단위의 다양한 판매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각종 통계를 필요 목적에 따라 활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전산망이 있다면 이런 문제들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전산망은 지난 20년 이상 ‘준비 중’이었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출판유통 현대화 및 정보화를 위한 워크숍’을 개최하여 표준화된 출판유통 정보시스템을 구축하기로 방침을 공식 확정한 것이 1999년 6월이었다. 2000년 2월에는 ‘출판산업 현대화를 위한 출판유통 정보시스템 구축 기본계획’을 마련했고, 2001년부터 3년간 ‘출판유통 정보시스템 구축사업’이 추진되었다. 이어서 2003년 6월에는 사업 추진 주체로 사단법인 출판유통진흥원을 만들고, 2017년 송인서적의 부도 이후 낙후된 출판유통 구조를 벗어나고자 2018년부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중심으로 약 45억 원의 국고를 투입해 전산망 사업을 추진했다. 

 

이처럼 전산망 사업은 오래전부터 출판계 숙원 사업이었다. 그렇다면 공정성과 공익성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업계가 원하는 방식과 내용으로 사업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재 민관정책 협력기구인 출판유통정보화위원회에는 출판계 대표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참여하지 않았고, 실무를 추진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지금까지의 사업성과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하며 출판계 설득에 한계를 보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업 추진 주체들 내부의 교통정리도 안 된 상황에서, 갑자기 작가 인세 정산 수단으로서 전산망이 부각되며 혼선만 가중된 형국이다. 

해외의 대표적인 출판유통 전산망 사례들인 캐나다의 북넷캐나다(BNC), 독일의 엠파우베(MVB), 일본의 출판인프라센터(JPO), 프랑스의 크릴(CLIL) 등 어디에서도 판매량에 따라 베스트셀러 목록을 발표하거나, 여기서 집계된 판매량으로 저자 인세를 지급하거나, 모든 책의 판매 데이터를 낱권 단위로 제3자에게 공표하지 않는다. 이 사항들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합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각국에 진출한 아마존은 전산망에 가입하지 않아 해당국 판매량의 큰 부분이 빠져 있다. 선진국들에서도 전산망은 불완전하며, 기본적으로 출판 관련 업체들이 이용하는 출판유통 판매·정보 인프라이지 인세 정산 등 모든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요술 방망이가 아니라는 점이 국내에서는 간과되고 있다. 즉 전산망으로 투명하게 인세를 정산하라는 요구는 너무 앞서가는 주문이다. 전산망 판매 데이터를 인세 지급 데이터로 삼으려면 모든 출판사가 전산망에 가입하고, 서점 등 모든 도서 판매처에서 성실하게 거래 및 판매 데이터를 전산망과 연동시켜야 하며, 무엇보다 판매 데이터 공개에 대한 저자와 출판사의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론상으로는 모든 이해관계자가 합의하면 판매 데이터가 투명하게 공개·공유될 수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너무 멀다. 

국내의 앞선 사례로 회자되는 영화계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의 경우 기간별로 입장 관객 수와 매출액 등을 확인할 수 있지만, 집계 대상은 단기간 상영 중인 총 100여 편에 불과하다. 공연계의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은 연극, 뮤지컬, 클래식·오페라, 무용, 국악·복합 등의 장르가 적게는 수십 편에서 많게는 수백 편까지 올라가 있지만 순위만 공개할 뿐 관객 수는 공개하지 않는다. 연간 5천 개 이상의 출판사에서 8만 종 이상의 신간이 발행되고, 구간을 포함해 총 100만 종 정도가 유통되는 출판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모든 책의 판매량이 공개되면 상위권 베스트셀러로의 쏠림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에서는 최소 20~30년 이상의 협상과 협업으로 전산망을 고도화시켜 왔다. 그렇다고 모든 책의 데이터를 이 전산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모든 데이터가 투명하게 공개되지도 않는다. 꾸준한 업데이트와 개선이 필요하다. 전산망이 아직 첫발도 떼지 않은 우리 상황에서 실상과는 무관하게 정부와 출판계 간 주도권 싸움으로 해석되는 것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출판유통 발전을 위해 시작한 전산망 사업이 이해관계자 간 꾸준한 조율과 협력, 민관 협업을 통해 성과를 얻기 바란다. 저자의 인세를 투명하게 정산하는 출판계 시스템의 진화는 물론이고, 다양한 출판정보를 필요에 따라 책 생태계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만드는 데 신뢰와 협업을 기반으로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한다. 


백원근 서평위원/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로 한국출판학회 출판정책연구회장, 일본출판학회 정회원이다. 대학에서 출판문화론 등을 강의한다.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문화체육관광부 규제개혁위원, 서울도서관 네트워크 위원장, 경기도 지역서점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출판산업사』를 썼고, 옮긴 책으로 『서점은 죽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책』, 『책의 소리를 들어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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