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그 더러운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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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그 더러운 내력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1.07.11 14: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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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_ 논설고문 칼럼

역사는 좋은 일뿐만 아니라 나쁜 일도 기록해야 한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표절을 일삼아온 더러운 내력도 찾아 그 역사를 서술해야 한다. 창피스러운 내막을 낱낱이 뒤져, 검사가 공소장을 쓰듯이 까발려야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라도 가해자를 징치하고 피해자를 위로해야 한다. 학문의 가치를 온전하게 해야 한다.

이 일을 제대로 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기막힌 사례 몇 가지를 들어 관심을 촉구하고자 한다. 이용하는 자료는 내가 직접 알고 있는 것들이다. 개인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실명을 공개하지는 않으니 양해해주기 바란다. 어느 누구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고 전형적인 사례를 들고자 한다. 세 사례가 세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의 일이다. 학계를 주름잡는 거두 A 교수의 제자에 석사를 갓 한 B가 있었다. B는 생업에 종사하는 시간을 쪼개 고전 명작 하나를 가까스로 주해했다. A에게 가져가 보이고, 서문을 써달라고 했다. A는 두고 가라고 하더니, 얼마 뒤에 그 책을 자기 이름으로 냈다. B는 아무 항변도 하지 못하고,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나 서러운 사정을 하소연하기나 했다. 그 말을 나도 전해 들어, 증언을 남겨야 할 책임을 느낀다.

그 뒤에 있었던 일이다. 대단한 대학의 대단한 교수 C가 고전소설의 새로운 작품을 대거 발견했다고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으나, 사실은 책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모두 제자 하나가 한 일이고, 다른 제자들 몇도 나중에 참여했다. 이제 마무리를 하자고 하면서, 네 제자에게 작품 한 편씩을 논하는 논문을 50매씩 써오면 학과 논문집에 내겠다고 했다. 

50매는 너무 작다고 생각하면서 그대로 했다. 뒷 소식이 없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논문 네 편을 연속시킨 긴 논문이 C의 이름으로 다른 간행물에 발표되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아무 설명도 없었다. 네 제자 모두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잊고 살려고 한다. 잊지 말고 기록해 증언으로 삼아야 한다.  

다시 그 뒤에 있었던 일이다. D는 학계의 중진이고 학회의 이사인 저명 교수였다. E는 다른 대학의 초년병 교수였다. D가 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이 자기 논문의 표절이라고 E가 신문사에 알려 물의가 일어났다. 진상을 알아보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학회 이사회가 열렸다. 최연소 이사인 나도 참석했다. 이사회에서 D가 말했다. 학생이 학기 말 과제로 낸 논문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했다고 하고, 그 학생이 표절한 것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학회 이사들은 이구동성으로 교수가 학생의 논문을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나무랄 수 없다고 했다. D는 잘못이 없는데, 공연히 곤욕을 치른다고 모두들 동정하고 위로했다. E는 문제가 된 사실을 학회에 통보하지 않고 신문에 먼저 터뜨려 학회의 명예를 훼손한 잘못이 있으니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학회에서 제명하는 징계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E를 제명하면 학회에서 탈퇴하고 학회를 새로 조직하겠다고 선언하려고 했다. 학회 간사가 회원 명부를 들추어보더니, E는 학회에 가입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E를 징계할 수 없게 되어 이사회가 싱겁게 끝났다. 나는 준비한 발언을 하지 않았다. 이 일에 관한 증언을 남기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위에서 든 세 사례의 피해자들은 가해를 이겨내고 자기 학문을 했다. 불운이 불운으로 끝난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가해자의 횡포에 희생되어 학문을 포기하고 침을 뱉으며 물러난 패배자들을 위로하고 싶다. 정의가 무엇인지 밝히고 싶다.

말만 이렇게 하고, 구체적인 사정을 알지 못해 표절 내력 서술에 포함시키지도 못하니 한탄스럽다. 지금의 사례를 들지 못하는 잘못도 용서를 구한다. 나의 잘못을 꾸짖으며, 아주 억울한 피해자들이 숨은 내막을 스스로 술회하기를 기다린다. 표절의 더러운 내력을 책으로 쓰려면 공동작업을 해야 한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표절을 일삼는 것은 대한민국을 창피스럽게 하는 흑막이고 질병이다.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성희롱을 하는 것보다 더욱 잘못된 줄 알아야 한다. 삼청교육대나 형제복지원보다 피해를 끼치는 범위가 더 넓다. 잘못을 바로 알고 철저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대한민국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려면,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많다. 죄악의 근원인 표절을 청산하는 것이 그 가운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관해 전연 모르는 사람에게 국정을 맡기지 말아야 한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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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진 2021-07-21 14:05:24
정말 좋은 글을 보았습니다. 많은 배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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