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정복자 칭기즈칸과 그의 안다 구르칸 자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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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복자 칭기즈칸과 그의 안다 구르칸 자무카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07.05 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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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57)_ 위대한 정복자 칭기즈칸과 그의 안다 구르칸 자무카

위대한 지도자는 백성의 삶이 고단하지 않도록 미리 살펴 아픔을 덜어주고, 불편함을 해소하려 한다. 우리나라 세종이 그러했고, 몽골의 칭기즈칸 역시 그랬다. 모든 면이 다 훌륭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동기는 아래에서 보듯 백성의 의사소통 어려움에 있었다. 백성의 불편함을 어엿비 여기는 애민이 한글을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다. 여기서 中國이 대륙 중국을 가리키느냐 혹은 다른 의미의 지칭어이냐 하는 문제는 다루지 않겠다. 
  
   나랏〮말〯ᄊᆞ미〮 中國듕귁〮에〮달아〮
   文字문ᄍᆞᆼ〮와〮로〮 서르 ᄉᆞᄆᆞᆺ디〮 아니〮ᄒᆞᆯᄊᆡ〮
   이〮런 젼ᄎᆞ〮로〮 어린〮 百姓ᄇᆡᆨ셔ᇰ〮이〮 니르고〮져〮 호ᇙ〮 배〮 이셔〮도〮
   ᄆᆞᄎᆞᆷ〮내〯 제 ᄠᅳ〮들〮 시러〮 펴디〮 몯 ᄒᆞᇙ 노〮미〮 하니〮라〮
   내〮 이〮ᄅᆞᆯ〮 為윙〮ᄒᆞ〮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여듧〮 字ᄍᆞᆼ〮ᄅᆞᆯ〮 ᄆᆡᇰᄀᆞ〮노니〮
   사〯람마〯다〮 ᄒᆡ〯ᅇᅧ〮 수〯ᄫᅵ〮 니겨〮 날〮로〮 ᄡᅮ〮메〮
   便安뼌ᅙᅡᆫ킈〮 ᄒᆞ고〮져〮 ᄒᆞᇙ ᄯᆞᄅᆞ미〮니라〮。 

칭기즈칸도 몽골 문자를 만들었다. 몽골 문자를 몽골어로 ‘몽골 비치그’라 하는데 파스파 문자와 더불어 몽골어를 위해 만들어진 주요 표기 체계들 중 하나이다. 오늘날 몽골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다소 변형된 채로 중화인민공화국의 내몽골 자치구의 오이가르진 부족이 사용하고 있다.

몽골 문자는 1204년경 위구르인 재상 타타퉁가(또는 타타통가, 塔塔统阿)가 포로로 잡혔을 때 칭기즈칸의 명을 받아서 만들게 되었다. 글자꼴은 위구르 문자를 몽골어의 음운구조에 맞게 변형시켰다. 시리아 문자에서 파생된 문자이며 소그드 문자를 거친 위구르 문자를 고쳐서 이 표기 체계를 만들었다. 

 

전통 몽골 문자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세로쓰기에 있다. 이것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써 나가는 몇 개 안 되는 세로쓰기 문자들 중의 하나이다. 대부분의 세로쓰기 표기 체계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나가지만, 중세의 위구르 문자와 거기서 파생된 문자들(몽골 문자, 오이라트 문자, 만주 문자 및 부리야트 문자)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쓴다. 이는 위구르인들이 중국의 표기 체계를 모방해서 자신들의 문자를 반시계방향으로 90도 회전시켰기 때문이다.

파스파 문자는 元제국 쿠빌라이 칸의 명령에 의해 티베트 출신 승려 파스파(1235~1280년)가 만든 문자로 중국어는 물론 티베트어, 산스크리트어, 투르크어 등을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파스파 문자가 훈민정음 창제에 영향을 끼쳤다는 학계의 주장도 있다.
 
1587년에는 아유쉬 구쉬가 티베트어, 중국어, 그리고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언어들의 소리를 옮겨 적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개의 문자들을 추가로 고안해 냈다. 이렇게 추가된 것은 ‘알리 갈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보르지긴 씨족의 족장 테무진이 이합집산의 몽골 부족들을 통일하고 몽골제국을 세운다. 그리고 그를 최고 지도자로 추대하는 추앙 세력들에 의해 칭기즈칸으로 불린다. 존호인 칭기즈는 1206년 全 몽골의 칸으로 즉위하면서 몽골 제 부족장들이 올린 존호이다. 오늘날의 우리는 칭기즈 또는 징기스 등으로 부르지만 중세몽골어에서는 팅기즈, 텡기시, 텡기즈 등으로 불렸으며 말뜻은 ‘바다’이다. 

 

몽골어로 죽마고우를 ‘안다’라고 한다. 칭기즈 칸이 되기 전의 테무진과 자무카는 어린 시절부터 형제나 다름없는 안다였다. 그러나 점차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몽골 통일의 강력한 라이벌이 된다. 자무카는 한때 그를 지지하는 세력들에 의해 우주의 왕이라는 구르 칸으로 선출되었는데 이것이 테무진과의 결정적 결별의 계기가 된다. 자무카를 상대하기 위해 테무진도 부족연합을 결성하고 둘 사이의 최종 승자는 테무진이 된다.  

자무카는 결국 1206년 근거지를 잃고 유랑하던 중 수하의 배신으로 테무진에게 잡혀 온다. 테무진은 자무카를 끌고 온 자들을 그의 눈앞에서 처형하고, 피를 흘리지 않고 죽도록 해달라는 자무카의 청에 따라 가죽 자루에 넣고 목을 조르는 방식으로 처형하였다. 처형에 앞서 테무진이 다시 형제가 되자고 제안했으나 자무카는 하늘에 해가 둘일 수 없듯이 몽골의 왕도 한 사람뿐이라며 거절하고 죽음을 선택했다고 몽골비사(元朝祕史)는 전한다.

 

                                                         영화 속의 테무진과 그의 안다 자무카

용감하게 죽은 자무카라는 용사의 이름의 뜻은 오이가르진 방언으로 ‘이방인’이다. 왜 그가 이방인으로 불렸는지는 알지 못한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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