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비판〉을 읽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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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비판〉을 읽어야 할 이유
  •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
  • 승인 2021.07.04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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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기본소득 비판』 (이상이 지음, 밈, 364쪽, 2021.05)

나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세 가지의 집필 방향을 설정했다. 첫째는 독자들이 기본소득의 개념과 논리를 최대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하게 기술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읽기 쉬운 ‘기본소득 소개서’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기본소득 주창자들의 주장과 논리를 있는 그대로 소개하고, 이것을 이해하기 쉽도록 논리적으로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알기 쉬운 ‘기본소득 비판서’다. 셋째는 경제·노동·복지 체제의 여러 문제들이 미래에는 더 심화될 것이라는 기본소득 주창자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보편적 복지국가 주창자들이 합당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성숙한 발전 전략을 제시하는 ‘미래 복지국가 제안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기본소득이 하나의 국가 체제 또는 제도로서의 가능성 유무를 검증받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실체와 전략을 정확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존의 보편적 복지국가와 당당하게 담론과 정책으로 경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정당한 논의의 과정과 결과에 따라 기본소득 담론이 학술적·논리적으로 또 정치사회적으로 승리를 거둔다면 기존의 보편적 복지국가를 대체하는 기본소득의 시대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변에서 거론되거나 정치적으로 인구에 회자하는 기본소득의 모습은 이 담론의 본질적 비전이나 목적과 무관하거나 논리적 궤도를 벗어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상적이고 자의적인 내용들로 넘쳐난다. 마치 각종 선거의 일방적 유세나 질 낮은 포퓰리즘 정치를 닮았다. 

기본소득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실질적 자유를 구현하겠다는 비전과 목적을 가진 고유 담론이다. 여기에 부합하는 기본소득이 되려면 보편성, 무조건성, 정기성, 개별성, 현금성, 그리고 충분성이라는 6가지의 원칙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이들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기본소득의 본질적 모습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 정치적으로 생산·유포되고 있는 여러 종류의 기본소득 프로그램들은 기본소득의 본질적 요건을 어기고 있다. 대부분이 ‘가짜’ 기본소득이다. 각종 조건을 달아 일부 인구만을 현금 지급의 대상으로 삼거나 푼돈 수준의 소액을 지급하거나 일회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참여소득, 생애선택 기간 기본소득, 안심소득 등도 기본소득의 요건을 결여한 가짜 기본소득에 속하는데, 우리나라의 여야 정치권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는 여정에서 경제·복지의 사각지대 등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장차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불안정성 심화 등을 이유로 기본소득의 도입을 주장한다. 이들의 가설적 비판과 대안으로서의 기본소득 제안을 우리 사회가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비판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기존 경제·복지 체제를 돌아보고 지속가능한 미래 대안을 고민할 수 있는 소중한 계기가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소득 주창자들의 담론·논리적 문제 제기를 가볍게 무시할 일은 아니며, 예의를 갖춘 학술적·정책적 논쟁과 정치사회적 토론이 충분히 요구된다 하겠다. 

그런데 분명하게 짚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와 작동 원리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복지국가의 보편적 복지는 누구라도 실업·질병·산재·은퇴·출산·육아 등의 사회적 위험이나 각종 복지(사회서비스)가 필요한 상황에 처했을 때 복지 체계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실업에 처했을 경우 일반적으로 고용보험 제도로부터 실업급여가 지급되고, 실업급여의 수급 자격이 되지 않는 취약 근로자들의 경우에는 실업부조 제도(우리나라의 국민취업지원제도)가 작동한다. 여기에도 해당되지 않을 경우, 공공부조(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가 최저소득을 보장한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근로연령층에 대해 소득 수준, 재산 정도, 취업 상태, 근로 의사와 구직 노력 여부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에게 동일 금액을 획일적으로 지급한다. 이 둘은 작동 원리가 다르고 상충한다. 그럼에도 좌파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기본소득이 기존의 보편적 복지국가와 함께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 보완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불가능하다. 원리적으로 충돌할 뿐만 아니라 기본소득 도입이 보편적 복지국가의 발전과 재정적으로 경합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주창자들의 주장과 달리 기본소득은 소득보장 사각지대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정부의 재정을 1/n로 모두에게 배분하는 보편적·무조건적 기본소득으로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연간 500조 원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재정 지출의 효과·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이 모두 낮기 때문에 정치사회적으로 용납되기 어렵다. 또, 기본소득은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의 해법이 될 수도 없다. 불평등을 개선하려면 조세와 재정 지출의 규모를 키워야 하고 소득재분배에 유리하도록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그런데 1/n 방식의 기본소득은 소득 재분배와 양극화 개선 효과가 미미하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일자리 대책이 될 수도 없다. 기술 변화에 따른 일자리 이동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고, 따라서 보편적 복지국가의 개입주의 전략이 더 중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기본소득은 경제의 활성화 및 선순환에 기여하지도 못한다. 기본소득은 소비 진작 효과가 열등하고, 경기변동 대응 효과는 아예 없고, 경기과열·물가상승을 부추길 개연성이 클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기본소득은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없다. 연간 200~500조 원짜리 완전 또는 부분 기본소득의 재정적 실현 가능성이 없으니, 10~25조 원짜리 푼돈기본소득이 거론된다. 그런데 10~25조 원은 기본소득에서 국민 1인당 월 16,600원에서 41,600원의 푼돈으로 흩어지지만, 보편적 복지에서는 복지국가의 확대·강화를 위한 큰돈이다. 

나는 복지국가 운동가이자 전문가로서 보편주의 역동적 복지국가가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확충·강화 개혁을 꾸준하게 실천해야 한다. 이 책은 기본소득 도입이 아니라 보편주의 역동적 복지국가가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이자 발전 전략임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정독과 진지한 토론을 기대한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장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예방의학 전공으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30년 동안 보건의료·복지 확대와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을 꿈꾸며 시민사회운동을 해온 복지국가 전문가이자 운동가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원장,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상임공동운영위원장,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복지대타협위원회 공론화위원장을 역임했으며, 2021년부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이상이의 복지국가 강의』, 『복지국가는 삶이다』,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복지국가의 길을 열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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