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를 통해 하이데거로부터 새로운 사유를 길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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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를 통해 하이데거로부터 새로운 사유를 길어내다
  • 이승종 연세대·철학
  • 승인 2021.06.2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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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크로스오버 하이데거: 분석적 해석학을 향하여』 (이승종 지음, 동연, 456쪽, 2021.05)

2010년에 출간한 『크로스오버 하이데거』는 연세대 학술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고 철학 학술지들과 『교수신문』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출판유통업체의 부도로 생각의나무 출판사가 책을 낸 지 1년 만에 문을 닫는 바람에 책도 함께 절판되었다. 16년을 공들인 연구 성과가 학문과는 상관없는 외부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아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사라질 수 있다는 게 현대사회의 불확실성인가. 저자라는 운전자가 막 주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의의 사고사를 당한 느낌이었다.

지우인 동연 출판사의 김영호 사장이 『크로스오버 하이데거』를 재출간해보자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주제로 한 국내외에서의 학술토론과 서평들을 새로이 수록하고 기존 원고의 오류들을 수정해 이번에 수정증보판을 출간하게 되었다.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내었고 각 책들에 나름 정성을 다했지만, 아픈 손가락이었던 이 책을 세상에 다시 내보내는 저자의 감회는 각별하기만 하다.  

나는 이 책에서 하이데거의 사유를 근원에서부터 사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펼쳐질 사태를 맞이할 채비를 우리 자신의 사유로부터 길어내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의 작업에 적합한 이름을 찾았다. ‘크로스오버’(cross over)는 ‘건너가다’라는 의미의 동사이지만 붙여 쓸 때는(crossover) 크로스오버 음악의 경우처럼 이질적인 것들의 교차, 융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의미에서 하이데거의 사유에 대한 크로스오버를 지향했다. 크로스오버는 무책임한 장난질이 아니라 사유의 불가피한 운명이다. 이는 비단 우리가 하이데거와는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사유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사유를 사유할 때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사유를 크로스오버라는 창의적 반복을 통해 새로이 거듭나게 해야 한다.

사유가의 사유는 역사성의 지평에서 사유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점을 역설한 하이데거의 사유가 하이데거라는 한 사람에서 시작해 그 사람으로 끝나는 완결태로 사유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의 사유는 그에게 영향을 미친 과거의 전통에 연결되어 있고 그가 사유하는 현재의 사태를 지향하고 있으며 그가 예견한 미래의 비전에 맞닿아 있다. 이처럼 과거의 전통, 현재의 사태, 미래의 비전이 녹아있는 것이 하이데거의 사유이기 때문에 그의 사유를 사유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제와 전통, 사태, 비전의 세 국면을 크로스오버시켜야 한다. 따라서 나의 연구는 하이데거라는 한 사유가에 국한한 종래의 해석을 지양한다.

나는 하이데거의 텍스트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독해하고 거기에 촘촘히 박혀있는 사유의 알맹이들을 하나하나 해명하였다. 한편으로는 분석의 방법에 의거해 하이데거의 개념들과 논제들을 정의하고 각 개념들이나 논제들 상호간의 논리적 관계를 보다 명료한 방식으로 재구성하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텍스트에게 물음을 던지고 텍스트로 하여금 그 물음에 답하게 하는 해석학적 대화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영미(英美)의 분석철학과 유럽의 해석학을 융합한다는 점에서 분석적 해석학이라 이를 만한 이러한 창의적인 독법으로 하이데거의 텍스트들에 대한 보다 선명하고 일관된 해석을 도출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자 전체 줄거리이다. 

하이데거의 사유를 건너가기 위해 내가 이 작품에서 밟았던 길의 이정표들을 돌아보면 다음과 같다. 길은 크게 네 단계로 가를 수 있다. I부에서는 하이데거의 사유를 통시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지향성이라는 주제에 대한 현대 철학의 사유들을 짚어나갔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연히 후설의 현상학과 만나게 되었고 이어서 그의 계승자이자 비판자인 하이데거의 사유에 이르게 되었다. 지향성과 현상학의 본성에 대한 후설과 하이데거의 차이(혹은 차연(差延; différance))를 바탕으로 하이데거 자신의 고유한 사유를 더듬어 나갔다. 

II부에서는 하이데거를 그와 동시대의 사유가인 비트겐슈타인과 만나게 했다. 현대 학문의 과학주의적 경향을 대변하는 영미철학의 중심 담론인 수리논리학과 언어철학에 대해, 그들이 어떠한 공동의 전선을 형성하였는지를 조망하고 그러면서도 그들이 어떻게 이들 담론들에 대해 자신들의 사유를 다듬어내었고 어떻게 서로 다른 길을 걸었는지를 더듬어보았다. 

III부에서는 하이데거 사유의 근본 얼개를 이루는 『존재와 시간』과 후기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도구의 사용에 대한 그의 현상학적 성찰과 진리에 대한 존재론적 해석을 각각 살펴보았다. 이 과정에서 하이데거가 열어 밝힌 존재 양식의 다차원성을 구체화하고 그의 진리론이 여타의 진리론들과 층위를 달리하고 있음을 부각하였다. 

IV부에서는 현대 서구 기술문명의 역사적 뿌리와 문제점에 대한 하이데거의 사유를 그의 「기술에 대한 물음」을 독해하면서 차근차근 따라가 보았다. 이로써 그의 존재론적 사유가 서구의 지성사적 전통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현재의 기술문명에 초점 잡혀 있으며 이로부터 미래에 대한 비전을 예비하고 있음을 논하였다. 하이데거에 대한 이 책의 사유는 기술문명에 와서 정점에 이른 존재망각과 허무주의의 위기로부터 전향을 지향하는 것으로 대단원에 이르게 된다. 

V부에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한 학술 토론을 수록하였다. 한국철학회, 철학연구회, 한국분석철학회, 한국현상학회, 싱가포르 남양이공대, 가톨릭관동대 등 국내외의 다양한 학회와 대학에서 있었던 풍성한 담론을 전재하였다. 이중 상당수는 이번 수정증보판에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부록 역시 수정증보판에 새로이 추가된 것으로 정대현 교수와의 이메일 토론, 윤동민, 김재철, 정은해 교수의 서평과 이에 대한 저자의 답론이 전개된다. V부와 부록을 통해 이 책에 대한 치열한 학술 토론의 향연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승종 연세대·철학

연세대 철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고, 뉴욕 주립대(버팔로)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어바인대 철학과 풀브라이트 방문교수와 카니시우스대 철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있으며, 같은 대학의 언더우드 국제대 비교문학과 문화 트랙에서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비트겐슈타인이 살아 있다면: 논리철학적 탐구』, 『크로스오버 하이데거: 분석적 해석학을 향하여』, 『동아시아 사유로부터: 시공을 관통하는 철학자들의 대화』, 뉴턴 가버(Newton Garver) 교수와 같이 쓴 Derrida and Wittgenstein(Temple University Press, 1994)과 이를 우리말로 옮긴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이 있으며, 연구번역서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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