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무주, 금강 따라 대소에서 율소까지…산 따라 강 따라 신록의 옛길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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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무주, 금강 따라 대소에서 율소까지…산 따라 강 따라 신록의 옛길 따라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2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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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전북 무주, 금강 따라 대소에서 율소까지
금강 벼룻길. 원래 농수로였고 이후 대소마을과 율소마을의 지름길이었다가 이제는 금강의 명물이 되었다. 밤나무 많은 율소마을. 강변을 따라 밤꽃 피어난 나무들이 줄서있다.

무주의 금강으로 가는 길, 노루재를 넘는다. 길의 파노라마는 우리나라 어느 산골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것이지만 마음은 ‘노루’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동물을 보고 있다. 그는 아침노을 무렵 가느다란 다리와 우아한 걸음걸이로 고갯마루에 올라 불안과 우수에 찬 눈동자로 먼 물 내음을 감지한다. 그러한 우미한 자태를 쫓고 싶지만, 실상은 핸들을 이리저리 꺾느라 수선스럽기 그지없다. 재를 넘으면 길은 비교적 편안하다. 큰 강이 가까워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장안리(長安里)에 들면 안창천(安昌川)과 함께 북향한다. 천은 고창리(高昌里)를 지나 금강으로 향하고 있다. 

무주 금강을 따라 ‘예향천리 금강마실길’이 이어져 있다. 시작은 도소마을이다.

안창천이 금강으로 스민다. 무주 부남면 대소리 유평(柳坪)마을 남단이다. 수량은 대단찮지만 풍성한 강변의 초지와 하얀 강돌들이 금강의 견고한 자연성을 무심하게 보여준다. 무주 금강의 첫 마을은 유평 서쪽의 도소(島所)마을이다. 진안에서 온 금강 물길이 마을 앞에서 두세 갈래로 갈라지면서 섬을 만든다고 해서 섬소, 도소라 한다. 도소마을은 무주 최고의 늦반딧불이 출현 지역 중 한 곳이다. 8월 말부터 늦으면 10월 첫째 주까지 도소마을은 우주가 된다. 섬을 만들며 갈라졌던 물줄기는 다시 한줄기로 모여 동남으로 흐르다가 유평에 너른 습지를 펼쳐놓고 동북으로 격하게 곡류한다. 

유평교에서 서면 강 오른쪽으로 부남터널과 대문바위가 보인다. 왼편에 건물이 모여 있는 곳이 부남면소재지다.

곡류하는 강의 동쪽에 급한 경사로 악명 높은 옥녀봉(玉女峰)이 솟아있다. 옥녀봉의 북서자락 끄트머리가 곤두박질치는 강변에 부남터널이 있다. 뚫은 터널이라기보다는 달아 낸 터널이다. 강 쪽으로 창을 낸 부남터널을 통과하면 부남면 소재지인 대소(大所)마을. 무주에서도 가장 오지였다는 마을이다. 터널을 지나면 집채만 한 바위 하나가 서있다. 멀리서 보면 강변에 걸터앉은 망부석이 젖은 발로 천년을 기다리는 것만 같다. 도로가 생기기 전 옥녀봉 자락과 강변 바위 사이에 좁은 소로가 있었다고 한다. 이웃 마을과의 경계인 동시에 소통의 길이었고 돌림병이나 난리 등 위험한 일이 닥쳤을 때는 가장 먼저 이곳을 막아 행인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그래서 바위는 ‘대문바위’다. 바위에는 ‘천년송’이라 불리는 잘 생긴 소나무들과 노간주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바위 아래를 휘감아 도는 금강의 깊은 소에는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가 살고 있는데 대문바위에 매어놓은 황소를 잡아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금도 추운 날이면 종종 대문바위 근처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사람들은 이무기가 연기를 뿜어낸다고 믿는단다. 

부남터널과 대문바위. 도로가 생기면서 대문바위의 오래된 의무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상징적인 마을의 대문이다.

대소마을은 조용하다. 높이도 밀도도 낮다. 그러나 강변에 죽 늘어서 있는 파출소, 초등학교, 중학교, 우체국, 마트, 소방대 등이 면소재지의 위용을 드러낸다. 면사무소 옆에 생각지도 않은 천문대가 있다. 2002년에 개관한 ‘별자리신비탐험관천문대’다. 천문대는 10여 년간 무주의 공공건축물 30여 개를 작업한 건축가 고 정기용의 작품이다. 소박한 규모지만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구경의 굴절망원경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도로가 난 뒤 대소마을은 더 이상 오지라 불리지 않는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반딧불이의 군무가 난무하고 불빛보다 별빛이 훨씬 무수한 청정마을이다.    

금강 벼룻길. 원래 농수로였고 이후 대소마을과 율소마을의 지름길이었다가 이제는 금강의 명물이 되었다. 밤나무 많은 율소마을. 강변을 따라 밤꽃 피어난 나무들이 줄서있다. 

마을을 지나 과수원이 펼쳐진 산밭을 잠시 지나면 강변 벼룻길이 시작된다. 벼룻길은 강변의 낭떠러지에 아슬아슬 열린 좁은 길로 무주사람들은 ‘보뚝길’이라 부른다. 원래는 굴암마을의 대뜰에 물을 대기위해 일제강점기에 건설한 1.5km 길이의 농수로였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수로는 대소마을과 율소마을을 이어주는 지름길이 되었고, 대티교가 건설된 이후에는 금강변의 아름다운 옛길로 이름을 알렸다. 절벽 아래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이다. 길은 수풀에 싸여 그늘져 있다. 겨울날 땅이 얼면 엄두도 못 내겠다. 

각시바위. 구박받던 며느리 혹은 옷을 잃은 선녀가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금강은 잔잔해 물소리 들리지 않고 새소리도 없다. 순간 하늘이 열린다. 커다란 바위가 하늘로 솟아 있다. 각시바위란다. 옛날 아이를 낳지 못해 구박받던 며느리가 돌로 변했다고도 하고 목욕하러 온 선녀가 옷을 잃어버리고 바위로 굳었다고도 한다. 선녀가 목욕했다는 각시바위 아래를 각시소라 부른다. 수심이 깊고 물의 흐름이 조용해 래프팅 보트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곳이다.  

금강 벼룻길은 각시바위를 뚫고 지나간다. 사람이 직접 정으로 뚫었다고 한다. 

벼룻길은 각시바위를 뚫고 지나간다. 사람이 직접 정으로 뚫었다고 한다. 길이 10m로 어른 두 명이 서서 지나갈 정도라고 알고 있었건만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크기다. 굴을 통과하는 동안 한 번도 허리를 펴지 못한다. 바닥은 축축하다. 재빨리 굴을 지난다. 강 저편의 일상적인 전봇대들과 평범한 집들이 특별하고 낯선 억양처럼 느껴진다. 

율소마을 강변의 밤나무. 꽃은 6-7월에 핀다.  

벼룻길을 벗어나면 율소마을이다. 밤나무가 많아서, 또는 마을의 지세가 알밤처럼 생겨서 밤소 혹은 율소다. 누런 밤꽃이 흐드러졌다. 밤꽃이라는 말에는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미로운 것이 담겨 있지만 도시사람에게 그 향은 결코 오래 참을 수 있을만한 게 아니다. 여기서 길은 굴암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계속 가면 군산에 닿을지도 모르겠다. 

벼룻길을 나오면 밤꽃 흐드러진 율소마을이다. 길은 굴암으로 이어진다. 

* 여행 팁

무주 금강을 따라 난 길을 ‘예향천리 금강마실길’이라고 부른다. 대소마을과 율소마을, 굴암마을 등이 ‘금강마실길 1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코스는 부남면 도소마을 앞 강변에서 시작해 무주읍 잠두마을 직전까지로 12㎞ 남짓한 거리다. 대소에서 율소로 이어지는 벼룻길은 금강변 마실길 1구간에서 가장 이름난 곳이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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