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등교육이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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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등교육이 사는 길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21.06.2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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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_ 논설고문 칼럼

지난 6월 11일 0선·30대인 이준석 후보가 제1야당 대표로 당선된 이후, 우리 사회에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감지된다. 토머스 쿤은 그의 책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를 ‘패러다임’이라 불렀다. 오늘의 한국 정치에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 대표는 수락 연설에서 ‘관성과 고정관념을 깨 달라. 그러면 세상은 바뀔 것’이라고 하였다.

과거 산업화 과정에 민주화를 외치며 사회변화를 앞장섰던 586세대가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었고, 산업화 과정과 얽혀있지 않은 MZ세대에 의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것 같다. 이미 4·7재보선과 제1야당의 전당대회에서 2030 세대의 시대 변혁의 열망이 반영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제는 산업화 시대를 이끌었던 인식과 사고체계를 뛰어넘어, 디지털전환, 팬데믹 시대가 요구하는 패러다임으로의 대전환이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우리 고등교육 영역의 상황은 어떠한가? 최근 대학의 신입생 미충원에 따른 충격은 대학의 존폐문제로 이어진다. 대학들은 올해 4만 명이 넘는 인원을 채우지 못했다. 2024년에는 그 규모가 10만 명 이상 될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저출산에 따른 미충원사태는 주로 지방 사립대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사실 이러한 위기는 20년 전부터 경고되었던 일인데, 우리 모두가 우물쭈물하다, 막상 닥치니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이 요즈음 여기저기 제시되고 있다. 대학 정원 재분배, 지방대 재정 집중지원, 미충원율 평가 제외, 외국인 유학생 확대, 고등직업평생교육, 대학체제개편 등이다. 최근에는 대학들이 모든 것을 공유하고, 공동입학과 공동졸업 시스템까지 갖춘 ‘공유성장형 대학연합체제’로 전환하여, 대학들을 상향 평준화시키자는 안도 발표되었다. 개별 대학의 경쟁력이 아니라, 대학 체제의 경쟁력 강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국가가 재정도 책임지며, 대학서열, 학벌주의, 대학 간 교육격차를 없애자는 것이다. 여러 질문들도 나온다. 제시된 제안들이 다 이루어지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일까? 예를 들어 신입생 충원 문제가 해결되면, 교육의 질, 연구역량, 사회적 영향력은 좋아지는가?

우리가 고등교육 문제를 풀어감에 있어 그동안 접근하던 방식과 태도를 되돌아봐야 한다. 앞에서 소개한 방안들도 보면, 제도와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계속 정부만을 쳐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이라는 기관의 생존과 대학 내 기성세대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나’의 성찰과 변화보다는, 정부, 지자체, 다른 대학 등 ‘남’이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국가 주도’라는 산업화 시대의 사고체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대학의 혁신을 논하고 있다. 이는 대학 스스로 정치를 대학 사회에 계속 끌어들이는 일이 되며, 대학의 본질, 특성, 자유로움을 살려나가기 어렵게 만든다.

오늘 우리는 4차산업혁명, 팬데믹 등에 따른 대전환기에 살고 있다. 일자리의 개념과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개별화와 다양성, 협업이 동시에 중시되며, 빠른 자가 독식하는 글로벌 환경이다. 대학의 미래에 대한 인식의 체계도 변해야 할 때다.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닥친 문제도 해결해나가야 하지만, 먼저 미래의 관점에서 큰 방향과 원칙이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첫째, 대학 운영의 초점을 교수 관점에서 학생 관점으로 바꿔야 한다. 대학의 성공은 ‘한 학생’의 변화와 성장, 성공에서 찾아야 한다. MZ 세대의 다양성을 끌어 안아주고, 재능이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섬세하게 돕는 일이다. 꿈을 키우게 하고, 맞춤형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개인, 대학, 국가의 미래 생존은 인재, 지도자를 어떻게 양성하느냐에 달려 있다. ‘잘 가르치는 대학’에 보여주었던 학생, 학부모의 기대와 격려를 기억해야 한다. 

둘째, 대학의 생존과 발전은 국가 주도에서 대학 주도로 바꿔야 한다. 사실 오늘의 지방 사립대학의 문제는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각 대학이 주도적으로 특성, 여건, 환경에 따라 자유롭게 다양한 방식으로 지자체 및 국내외 기관들과 협업하며 특화해나가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기존의 정부 주도의 획일화된 각종 제도, 규제 및 평가, 지원의 틀을 없애야 한다. 창의성은 여기에서 발현된다. 

셋째, 대학 경쟁력은 개별 대학 단위에서 공유, 협업 모델에서 찾아야 한다. 현재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도 교과목 개발, 우수 강사 확보 등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국내외 여러 대학 및 교육 관련 기관들과 강점들을 공유하는 공유형 공유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서로가 윈-윈하며 공존하는 길이다. 앞으로 개별대학 단위의 교육은 국내외 IT 기업에 의한 다양한 온-오프라인 교육프로그램과 경쟁할 수 없을 것이다. 

지역 대학의 위기는 지역뿐만 아니라, 수도권 대학과 국가의 위기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대학이 이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닥쳐오는 고통을 분담하며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 현재 직면한 문제들이 심각하지만, 대한민국의 고등교육의 미래를 어떤 모습으로 그려나가야 할지, 새로운 철학과 가치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의 클라우드 슈밥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을 선언하며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 모두 다시 시작해야(reset) 한다!’고 강조하였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연세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회장, 국제퍼지시스템협회(IFSA) 집행이사,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의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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