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알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한 푸코의 글쓰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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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알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한 푸코의 글쓰기론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6.20 1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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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한 위험: 글쓰기에 대하여 | 미셸 푸코 지음 | 허경 옮김 | 그린비 | 112쪽

이 책은 1968년에 이루어진 철학자 미셸 푸코와 문학비평가 클로드 본푸아의 대담을 전사한 것이다. 여기서 이들의 대화 주제는 바로 ‘글쓰기’로, 푸코는 이 대담을 통해 글쓰기의 즐거움과 의무, 글쓰기와 말하기 사이의 관계, 푸코 자신에게 있어 글쓰기란 무엇인가 등 글쓰기에 대한 다성적인 사유를 드러내고 있다.

“글쓰기란 본질적으로, 그것을 통해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내가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게 해줄 어떤 작업을 감행함으로써 실현됩니다. 내가 하나의 연구, 한 권의 책, 또는 또 다른 무엇이든, 어떤 것을 쓰기 시작할 때, 나는 그 글이 어디로 갈지, 어떤 곳에 다다르게 될지, 내가 무엇을 증명하게 될지, 정말 알지 못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글쓰기와 말하기는 다르다. 대담에서 말을 함으로써 “글을 쓰며 보호하려고 하는 모든 진지한 것들을 흩트려 놓고 있다”는 푸코 자신의 말에서 우리는 글쓰기와 말하기 관계에 대한 푸코의 통찰을 본다. 책 제목이 ‘상당한 위험’이 된 이유 역시 이 대담이 ‘글쓰기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기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글쓰기라는 비밀스럽고 어려우며 조금은 위험한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는 푸코의 말은, 반대로 풀자면 말하기의 가능성이 회복되면 글쓰기의 가능성은 물러날 수 있다는 말이다. 글쓰기와 말하기 사이에는 어떤 양립 불가능한 지점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푸코는 스스로에 대한 역설적인 면을 지적하며, 이 대담에서의 말들이 다시 글로 출판되는 것에 약간의 두려움을 느낀다고 밝힌다. 하지만 글쓰기는 푸코에게 즐거움이기도 하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서 우리에게 부과된 것인지도 모르는 이러한 의무에 복종한다는 것, 의심의 여지 없이 나르시시즘적이며, 당신을 짓누르며 사방에서 당신을 압도하는 이 법에 복종한다는 것, 이것은 다름 아닌 글쓰기의 즐거움입니다.”

어떤 것의 진실일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진단으로서의 글쓰기’를 말하며, 현존하면서도 동시에 잘 보이지 않는 것, 자신과 타인들 간 담론의 거리를 측정하고 위치 짓는 것, 진실의 펼쳐짐을 드러내는 것이 곧 자신의 글쓰기라 밝히는 푸코. 그는 글쓰기를 죽음, 익명, 빈 공간 등의 개념과 연결시킴으로써 그 지점에서 파생되는 글쓰기의 즐거움과 의무에 대한 논의로 우리를 이끈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푸코의 다성적인 사유뿐만 아니라, ‘지식의 고고학’에서 ‘권력의 계보학’으로의 이행에 관한 예비적 단서 또한 제공한다. 1968년 여름과 가을에 이루어진 이 대담은 1966년 『말과 사물』을 발표한 푸코가 1961년 『광기의 역사』 이래 유지해 오던 텍스트/이미지, 문학/미술, 언표가능성/가시성 사이의 ‘이중의 놀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마지막 텍스트, 혹은 반대편에서 바라보면, 니체적 진단(diagnostic)에 대해 말하는 첫 번째 텍스트이다. 이 대담은 이러한 이중의 측면에서 지식의 고고학에서 권력의 계보학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는, 그러나 지식의 고고학에 조금 더 가까운 텍스트이다.

이 대담이 푸코가 ‘지식의 고고학’이라 부르는 시기의 마지막에 위치한다는 것(『지식의 고고학』의 1967년 초고와 1969년 출간 사이), 그리고 무엇보다 이 대담이 이루어진 1968년의 여름과 가을이 프랑스를 포함한 동시대 유럽의 모든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68년 5월 혁명 직후라는 시기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68혁명 이후 프랑스의 억압적 상황에서 푸코가 집중한 것은 회견과 언론 등에서 나타나는 ‘말하기 권력’의 전복이었는데, ‘글쓰기를 말하는’ 이 위험한 대담은 그 68혁명 직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에피스테메를 언표로 대치하며 언표의 조건과 한계를 살피는 작업을 수행했던 『지식의 고고학』은, 1967년 초고로부터 1969년 출간을 거치며 구조주의적 함축을 갖는 언표 개념을 검토하고 파기했으며, 이를 대체하는 ‘담론’ 개념을 등장케 했다. 구조주의에서 니체주의적 담론으로 넘어가는 중간시기 1968년, 우리는 이 대담을 통해 푸코 사유가 속한 위치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좌표를 확정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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