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를 인정하려는 겸손’과 ‘한계를 넘어서려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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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인정하려는 겸손’과 ‘한계를 넘어서려는 용기’
  • 최고원 아주대·서양철학
  • 승인 2021.06.2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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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가다머 vs 하버마스』 (최고원 지음, 세창출판사, 240쪽, 2021.05)

‘쉽고 재미있게.’ 출판사의 제안은 처음부터 난감했다. 저자로서는 그 말 한마디가 가다머-하버마스 논쟁 그 자체보다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린 결론, ‘논쟁 전체를 재구성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자.’ 그렇게 해야 이 논쟁이 학술적인 토론의 경계를 넘어 우리의 일상 안으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재구성의 과정에서 저자가 특히 주력했던 점은 이러하다. 가다머와 하버마스가 했던 말들을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그들 각자가 가진 생각과 서로 나눈 대화를 논쟁의 가장 큰 줄기에 한 다발로 둘러 엮는 것이다. 그 가장 큰 줄기는 바로 ‘보편성’이다. 만약 가다머가 보편성을 주장하지 않았더라면 논쟁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그들이 가장 치열하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곳 역시 ‘보편성’ 문제였다.  

보편성 주장은 대개 ‘모 아니면 도’인데, 아무래도 ‘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거침없이 보편성을 주장하고 나섰으니, 가다머에게 관심과 논란이 집중되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내로라하는 유명 학자들이 그의 주장에 대해서 한, 두 마디씩 거들고 나섰고, 이내 가다머와 하버마스를 지지하는 두 개의 편으로 나뉘어 팽팽한 대립을 시작했다.  

많은 의심들 속에서도 가다머의 주장이 힘을 잃지 않았던 것은 가다머의 보편성이 우리 인간의 ‘유한성’에 바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런 겸손한 태도에 굳이 반발할 필요가 있겠는가?’ 의아해 할 수도 있겠지만, 상황은 겉보기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만약 그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면, 종국에는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어떤 것도 이제 더 이상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게 되고 만다. 우리가 수백, 수천 년간 쌓아 올린 ‘학문적 진리’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하버마스는 가다머가 내세운 유한성과 보편성을 극복할 길을 찾고자 했다. 보편성 주장이 ‘도’가 되기 쉬운 이유는 단 하나의 예외만으로도 얼마든지 그것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도 바로 그런 면에 집중했다. 가다머에게 있어서 ‘우리, 의식, 언어, 이해’는 사실상 등가(等價)의 개념인데, 그중에 어느 하나에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가다머의 주장 역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우리 의식에 발생하는 이상(異常)은 곧 언어의 문제이며, 한편으로 왜곡된 이해라 할 수 있다. 정신분석은 우리 의식에 생기는 그런 문제들을 말 그대로 ‘분석’하고 바로 잡는다. 그 때문에 하버마스에게 정신분석은 가다머가 주장하는 보편성을 극복할 결정적인 실마리가 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가다머의 주장을 제압하기는 어려웠고, 두 사람 사이의 논쟁은 오히려 거기에서부터 더욱 넓고 깊게 전개되기 시작한다. 
 

하버마스와 가다머
하버마스와 가다머

논쟁이 무르익어 가면서 등장했던 주요 개념들을 살펴보면, 그들 사이의 논쟁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던 개념들 외에도, ‘무의식, 존재, 경험, 선입견, 대화, 의사소통, 해석, 비판, 반성, 역사, 사회, 전통, 문화, 놀이, 상징, 이론, 실천’ 등의 묵직한 개념들이 연이어 등장했고, 거기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진보, 보수’까지 더해서 논쟁을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이 개념들은 개인의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의 차원에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세밀하게 검증되었다.   

그래서 논쟁은 결국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을까? 가다머가 주장했던 것이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우리 자신의 한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논쟁에서 그가 불리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버마스는 가다머의 주장이 초래할 불안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으니, 어쩌면 처음부터 지지 않을 싸움을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 논쟁에 있어서 ‘승부’가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어느 유명한 학자의 평가처럼, “가다머는 우리에게 겸손할 것을 요구했으며, 그에 대한 하버마스의 문제 제기는 당당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논쟁을 마주 대하면서, 우리가 과연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먼저 가다머처럼 우리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다음 하버마스처럼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것이 가다머-하버마스 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자, 논쟁 전체에 녹아 흐르는 진정한 가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고원 아주대·서양철학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철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몇 가지 고민을 안고 독일로 유학하여 마인츠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한 뒤에 아주대학교에 터를 잡고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이런저런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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