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 〈잃어버린 환상〉과 인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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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잃어버린 환상〉과 인간극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6.2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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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제 48강〉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제 48강〉_ 송기정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의 「발자크 〈잃어버린 환상〉과 인간극」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일곱 번째 시리즈 ‘문화정전’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문화 양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 전통, 사회적 관습으로 진화하며 인류 지성사의 저서인 '고전'을 남겼다. 이들 고전적 저술 가운데, 인간적 수련에 핵심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저술을 문화 정전(正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52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가 쌓아온 지적 자산인 동서양의 ‘문화 정전(正典)’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6. 서양 근대 문명과 그 세계적 영향’ 제 48강 송기정 교수(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의 강연 중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발자크의 〈잃어버린 환상〉과 19세기 백과사전 ‘인간극’

송기정 교수는 “발자크라는 작가에게 다가가기 위한 지름길”이라 할 수 있는 『잃어버린 환상』을 축으로 해서 “90여 편에 이르는 소설이 담긴” 인간극(La Comédie humaine) 총서와 작가 발자크를 일별한다. “대혁명 이후 급변하는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해부한” 발자크는 스스로 “풍속의 역사가를 자처”하는 바 ‘인간극’은 “그야말로 이야기의 보고”이자 “역사,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예술, 법 등 19세기 프랑스의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일종의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고 평가한다. 다시 말하여 그 가운데 『잃어버린 환상』은 “인간극이라는 대우주 안에서 하나의 소우주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중요하다면서 작품의 1부 ‘두 시인’, 2부 ‘파리에 온 지방 위인’, 3부 ‘발명가의 고뇌’를 각각 “개인과 역사, 정신의 자본주의화, 그리고 어음의 유통과 법의 남용”이라는 세 가지 테마를 경유하여 깊이 들여다본다. 결과적으로 발자크의 “글쓰기는 돈이 만물의 척도가 되어버린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와 저항의 노력”으로서 “정신마저 자본화되어가는 프랑스 사회를 해부하고, 분석하고, 비판”했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5월 15일, 송기정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48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들어가는 말 

발자크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는 작가다. 근대 소설의 아버지, 많은 작품을 남긴 다작의 작가,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잘 보여준 작가 등. 그에 비해 실제로 발자크를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작품을 남긴 데 반해 국내에서 번역된 책이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잃어버린 환상』의 독서는 발자크라는 작가에게 다가가기 위한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발자크 자신도 1843년 3월 2일 한스카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잃어버린 환상』을 “작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발자크는 1799년 출생하여 1850년에 사망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나폴레옹 체제하에서, 청년기는 복고왕정 체제하에서 보냈으며, 글쓰기는 주로 7월 왕정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난 후 2년 만에 사망했다. 이렇듯 발자크는 19세기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체험했던 작가다. 그런데 발자크가 글을 쓴 기간은 20년에 불과하다. 서른의 나이에 『올빼미당원들 혹은 1799년의 브르타뉴』라는 역사 소설로 문학계에 데뷔한 후, 쉰 한 살이 되던 해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글을 남겼다. 90여 편에 이르는 소설이 담긴 <인간극> 총서, 20편이 넘는 미완의 소설들, 희곡 작품들, 신문ㆍ잡지에 기고한 기사들과 에세이, 그리고 지인들과 연인들에게 보낸 편지들! 이 엄청난 양의 글쓰기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다. 평생 읽기도 어려운 분량의 작품을 그는 불과 20년 동안 창조해낸 것이다. 

대혁명 이후 급변하는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정확히 해부한 발자크는 스스로 풍속의 역사가를 자처한다. 90여 편의 소설이 담긴 <인간극>은 그야말로 이야기의 보고(寶庫)다. <인간극>에는 귀족, 부르주아, 노동자, 농민, 고리대금업자, 상인, 은행가, 작가, 언론인, 예술가, 과학자, 살인자, 사기꾼, 그리고 창녀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인간이 살아 숨 쉰다. 총 등장인물은 2500명에 달하며, 그중 500명 이상은 ‘인물 재등장’ 기법을 통해 여러 소설에 다시 등장한다. ‘풍속 연구’, ‘철학 연구’, ‘분석 연구’로 구성된 <인간극>은 하나의 거대한 사회를 이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물들은 서로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다. <인간극> 등장인물들의 관계도뿐 아니라 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인물 사전이 만들어질 정도다.
 

주제 또한 다양하다. 역사, 정치, 경제, 문화, 과학, 예술, 법 등 19세기 프랑스의 모든 것이 담긴 <인간극>은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인간극>을 읽다 보면 19세기 당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발자크 소설을 통해 당시의 정치 상황, 과학 수준, 금융 시스템을 알 수 있고, 결혼 제도를 이해하게 된다. 19세기 초반의 파리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가 하면, 소송을 통한 법적 다툼의 현장도 목격하게 된다. 마치 요술 만화경처럼 발자크의 <인간극>은 독자들을 19세기 프랑스로 안내한다. 그리고 그 길의 한가운데 『잃어버린 환상』이 있다. 

『잃어버린 환상』의 중요성은 여러 차원에서 거론될 수 있다. 우선 이 소설은 『고리오 영감』, 『매음 세계의 영욕(榮辱)』과 더불어 젊은이에 대한 교육 소설로서 <인간극>의 중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나는 『잃어버린 환상』이 <인간극>이라는 대우주 안에서 하나의 소우주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중요성을 찾고자 한다. 즉, 대혁명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귀족으로부터 부르주아로의 권력의 이동, 자본주의의 도래, 문학의 상품화 및 출판ㆍ언론ㆍ극장계의 타락상, 어음을 통한 신용 거래의 현황, 과학적 발명과 그 성과를 가로채기 위한 대자본의 음모, 그 과정에서의 법의 남용, 그리고 당시의 파리 풍경까지, <인간극>에서 언급되는 다양한 주제들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래서 나는 개인과 역사, 정신의 자본주의화, 그리고 어음의 유통과 법의 남용이라는 세 개의 주제를 중심으로 본 강연을 진행해보려 한다. 우선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3부작 『잃어버린 환상』 

『잃어버린 환상』은 3부작 소설이다. 1837년에 1부 ‘두 시인’, 1839년에 2부 ‘파리에 온 지방 위인’이 발표되었으며, 3부 ‘발명가의 고뇌’가 발표됨으로써 소설이 완성된 것은 1843년이다. 『잃어버린 환상』이라는 제목은 처음 발표 당시 1부의 제목이었다. 하지만 3부까지 완성된 후 1부는 『두 시인』이 되고 『잃어버린 환상』은 전체 제목이 된다. 프랑스 남부 도시 앙굴렘에서 시작된 1부의 이야기는 2부에서 파리로 무대가 옮겨지고, 3부에서는 다시 앙굴렘이 소설의 무대가 된다. 

『잃어버린 환상』은 앙굴렘 출신 뤼시앵 드 뤼방프레가 품었던 꿈이 좌절되는 이야기다. 때는 복고왕정 시절인 1821년부터 1822년까지다. 약제사의 아들 뤼시앵 샤르동은 수려한 용모와 재능 덕분에 앙굴렘 귀족 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앙굴렘 사교계의 여왕 바르주통 부인의 사랑을 받는다. 부인의 권유로 아버지 이름을 버리고 귀족 출신인 어머니 이름 뤼방프레로 개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샤틀레 남작의 음모로 불명예스러운 소문의 주인공이 되고, 그것을 계기로 바르주통 부인은 앙굴렘을 떠나 파리로 간다. 뤼시앵은 그녀를 동반한다. 1부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뤼시앵의 친구이자 매제가 된 인쇄업자 다비드 세샤르다. 구두쇠 아버지 세샤르로부터 비싼 값으로 인쇄소를 인수한 그는 인쇄 비용 절감에 기여할 종이 제조법 연구에 몰두한다. 

파리에서 뤼시앵의 환상은 하나하나 무너져버린다. 우선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바르주통 부인으로부터 버림받는다. 뤼시앵은 성공을 통한 복수를 다짐하며 자신의 소설과 시집을 출판하려 하지만 무명 작가인 그의 원고를 받아주는 출판사는 아무 데도 없다. 가난에 지친 그는 현실적 어려움 앞에서 위대한 작가가 되려는 희망을 버린다. 그러고는 빨리 돈을 벌고 빨리 성공할 수 있는 저널리스트가 되어 재치 넘치는 기사로 일약 성공을 거둔다. 여배우 코랄리의 애인이 되기도 한다. 그는 펜의 권력을 마음껏 휘두른다. 뛰어난 용모와 재치로 파리 사교계의 총아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파 신문에서 활동하던 그는 출세를 위해 왕정주의자로 변절함으로써 양측의 비난을 받고 결국 추락한다. <인간극>의 많은 주인공이 그렇듯이 뤼시앵은 적들의 음모로 인해 파멸한다. 그의 첫사랑이던 바르주통 부인, 그녀의 친척 에스파르 후작 부인, 샤틀레 남작 등이 뤼시앵의 파멸을 위해 음모를 꾸민 자들이다. 게다가 그의 빠른 출세를 질투했던 동료들도 그의 추락을 위한 음모에 기꺼이 가담한다. 무일푼이 된 뤼시앵은 고향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친구이자 매제인 다비드 세샤르의 이름으로 3000프랑의 어음을 발행한다. 사랑했던 여배우 코랄리의 죽음 후 절망에 빠진 그는 무일푼의 상태에서 고향 앙굴렘으로 돌아온다. 

뤼시앵이 발행한 3000프랑의 어음 때문에 다비드가 겪게 되는 곤경이 3부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다비드는 뤼시앵이 파리에서 발행한 어음에 대한 지불 요청을 받는다. 그러나 아버지가 주요 신문 발행권마저 경쟁업체에 팔아버렸기 때문에 인쇄소는 수익을 내지 못한다. 게다가 다비드는 종이 제조법 연구에만 매달려 있다. 그에게는 돈이 없다. 그의 경쟁업자 쿠앵테 형제는 그 어음을 이용해 다비드를 파멸시키고 종이 제조법을 가로채려 한다. 결국, 어음을 상환하지 못한 다비드는 구속된다. 매제의 구속이 자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절망한 뤼시앵은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삶을 마감할 장소를 찾으며 샤랑트 강가를 걷던 중, 길에서 만난 스페인 신부에 의해 구출된다. 카를로스 에레라라는 이름의 그 신부는 사실 『고리오 영감』에 등장했던 탈옥수 보트랭과 동일 인물이다. 뤼시앵은 그에게 완전한 복종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다비드를 구할 수 있는 돈을 받는다. 그러나 뤼시앵이 보낸 돈이 도착하기 직전, 다비드는 쿠앵테 형제와 협약을 체결하고 종이 제조법 발명권을 넘긴다. 그 과정에서 쿠앵테 형제는 다비드와 뤼시앵의 학교 친구인 소송대리인 프티 클로의 야심을 이용하고, 프티 클로는 그 기회를 출세의 발판으로 삼는다. 스페인 신부를 따라 파리로 간 뤼시앵의 새로운 모험은 『잃어버린 환상』의 속편인 『매음 세계의 영욕』에서 계속된다. 

『잃어버린 환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복잡한 관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이 인물 관계도를 만들어보았다. 

. . . . . 

나가는 말 

발자크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해는 1829년이다. 그런데 그 이듬해인 1830년은 프랑스 역사에서뿐 아니라 발자크에게도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7월 혁명은 대혁명 이후 급격히 진행된 계급의 붕괴와 가치관의 변화가 이루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피의 특권이 돈의 특권으로 이동했을 뿐, 대혁명의 가치인 인권과 평등과 자유의 이념은 환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발자크는 7월 혁명 이후 극도의 실망을 느낀다. 그의 눈에 7월 왕정은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최악의 정치 체제로 보였던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던 발자크가 7월 혁명 이후 돌연 정치 무대의 전면에 나서고자 한 것은 바로 그런 상황에 대한 절망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정통 왕당파로 전향했다면, 그것은 결코 대혁명 이전 구체체로의 복귀를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부르주아의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반대 의지의 표명이었다. 왕정주의를 표방함에도 귀족들의 시대착오적인 생각과 태도에 그 누구보다도 신랄하고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시선을 던졌던 이유다. 결국, 정치에 입문하고자 하는 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그는 문학으로 돌아온다. 이후 그의 글쓰기는 돈이 만물의 척도가 되어버린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와 저항의 노력이다. 그는 정신마저 자본화되어가는 프랑스 사회를 해부하고, 분석하고, 비판한다. 

그러나 1840년 이후 그의 치열한 저항 의지는 동력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부르주아의 가치는 사회 구석구석에 퍼졌고, 모든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1840년 이후 그의 소설은 그러한 저항의 부질없음에 대한 서글픈 확인이요 절망적 탄식이다. 이제 발자크의 비관주의는 극도에 달한다. 말년에 남긴 최고의 걸작인 두 편의 <가난한 친척들> 연작 소설, 『친척 베트』(1846)와 『친척 퐁스』(1847)에는 그러한 작가의 절망이 배어 있다. 그는 이 두 소설에서 부르주아의 가치가 확고히 자리한 병든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1846년 발표된 『친척 베트』에는 발자크의 비관적 인식이 담겨 있다. 

그 깊은 악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남작 부인이 물었다. 
의사는 답했다. “종교의 부재와 응결된 이기주의에 지나지 않는 금전의 범람이 그 원인이겠지요. 과거에는 돈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돈보다 우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귀족, 재능, 국가에 대한 헌신이 그런 것이었지요. 그러나 오늘날 법은 돈을 만물의 척도로, 정치적 능력의 기반으로 만들었습니다.” (『친척 베트』) 

에너지 넘치는 진지한 젊은이들이 <인간극> 무대에서 하나 둘 사라져가는 현상 역시 이러한 발자크의 역사의식과 무관하지 않다. 순수성을 간직했던 세나클 회원들의 부재가 특히 두드러진다. 루이 랑베르는 일찍이 죽음을 맞이하고, 미셸 크레티앵은 1832년 시위 도중 사망한다. 다니엘 다르테즈는 시골에 은거한다. 사회의 반항아, 탈옥수 보트랭이 경찰청에 근무함으로써 자신이 그토록 저항했던 사회에 편입되어버리는 현상에서 독자는 원칙과 절대적 가치가 무너진 사회에 대한 발자크의 냉소주의를 읽는다. 반면 “나는 나의 시대를 따른다. 나는 돈을 숭배한다.”라고 서슴없이 외치는 『친척 베트』의 크르벨, 친척의 값진 예술품을 “합법적으로” 가로채는 『친척 퐁스』의 카뮈조9와 그러한 약탈 행위를 눈감아줌으로써 엄청난 이득을 보는 포피노, 그밖에도 수많은 범용한 부르주아들이 <인간극>의 주요 인물이 된다.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나자 발자크는 의도적으로 정치와 거리를 둔다. 발자크의 무관심한 태도는 더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에 대한 절망감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발자크 개인의 육체적ㆍ심리적 피로와도 무관하지 않다. 

갤리선의 노예처럼 하루 16시간 17시간, 때로는 18시간씩 일을 해야 했던 그는 이제 모든 에너지가 소진됨을 느꼈다. 빚쟁이들의 압박은 점점 더 거세어졌지만, 그의 심신은 지쳤다. 창작 활동도 활기를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남은 희망은 오직 먼 이국 땅의 별, 한스카 부인뿐이었다. 1835년 6월 빈에서의 이별 이후 만나지 못했던 부인으로부터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은 1842년 1월이었다. 그날 이후 한스카 부인은 발자크 삶의 목표가 된다. 그는 일기를 쓰듯 자신의 일상을 편지에 담는다. 집필 계획과 현황 등이 가득 담겨 있지만, 편지는 자신의 노쇠와 피로, 공허함과 우울함, 그리고 부인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채워진다. 그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한스카 부인이라는 꿈으로 대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쉬고 싶었다. 

마침내 1848년 9월 발자크는 파리를 떠나 우크라이나의 한스카 부인 곁에 머문다. 각고의 노력 끝에 1850년 3월 14일 베르디체프의 생트바르브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병든 상태에서 5월 20일 파리로 돌아온 그는 병석에 누워 지내다 8월 18일 밤 사망한다. 그의 나이 쉰 한 살이었다. 8월 21일, 생 필립 룰 교회에서 장례 미사를 마친 후, 그의 운구는 페르 라셰즈 묘지로 옮겨졌다. 문학적 동지였던 빅토르 위고의 찬사 가득한 조사를 읽으면서 이 강연을 마친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그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 거대한 작품의 작가는 혁명 작가의 계열에 속합니다. […] 발자크라는 이름은 우리 시대가 미래에 남길 찬란함 속에서 빛날 것입니다. […] 그의 생애는 짧았으나 작품으로 인해 충만했습니다. […] 아! 절대로 지치지 않는 강한 노동자, 철학자, 사상가, 시인이었던 이 천재는 모든 위대한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대로 폭풍우와 투쟁과 싸움과 전쟁이 가득한 삶을 살았습니다. […] 이제 그는 우리 머리를 지나가는 저 구름 위에서, 우리 조국의 별들 사이에서 계속 빛날 것입니다. […] 아니오, 그것은 밤이 아니라 빛입니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그것은 허무가 아니라 영원입니다. 그의 죽음은 불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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