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실수의 후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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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실수의 후유증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1.06.2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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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_ 논설고문 칼럼

만주의 주인 만주족이 자기네 땅에서 민족국가를 세운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후금(後金)이라고 한 나라는 건국한 명분이 당당해 아무도 시비를 할 수 없다. 후금이 뛰어난 역량으로 국토를 보존하고 주권을 슬기롭게 지키는 본보기를 보이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으면, 국내외 사람들이 모두 평화와 번영을 누렸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무 문제 없이 보장되어 있는 행복을 저버리고, 만주족의 나라가 남쪽으로 내려가 중국 전역을 지배하는 청(淸)나라 제국이 된 것은 대실수였다. 소수의 인원이 모두 너무나도 많은 한족(漢族)을 정복하려고 자기 강토 만주를 떠나야 했으며, 한족을 통치하는 동안에 자기 언어 만주어를 잃어버렸다. 만주족의 후예를 오늘날 중국에서 만족(滿族)이라고 하는데, 강토도 언어도 없어 사실상 소멸한 민족이다. 청나라가 이룩했다고 자부하는 대승리가 자기 민족의 소멸을 초래한 대실이다. 

청나라의 대실수는 이것만이 아니다. 위협을 없애고 위력을 과시하려고, 중원의 한족만 다스리지 않고, 몽골, 티베트, 위구르 등 여러 독립국을 닥치는 대로 정복해 지배를 받도록 했다. 그 결과 중국의 판도를 역사상 전례가 없게, 너무나도 넓게 만들었다. 이것이 청나라의 영광이고, 청나라의 뒤를 이은 오늘날 중국의 자랑이라고 할 것은 아니다. 너무 넓은 판도를 지키려고 청나라가 한 수고를, 오늘날의 중국은 더 많이 하면서 진땀을 뺀다. 

만주족이 국권을 장악한 청나라에서, 한족은 보조자 노릇이나 했다. 과거에 급제해 관직을 얻으면 지배 신분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되지만, 경륜을 펼 수는 없게 했다. 입신출세를 위해 과거 공부에 매달리는 극소수의 예외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은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돈 모으기에 온갖 노력을 바치는 배금주의자가 되었다. 좋아서 학문을 하면서 박해를 각오하고 정치를 비판하는 전통, 다른 문명권 어디에도 없는 동아시아의 자랑이 청나라 시기 중국에서는 사라졌다. 이것은 청나라가 중국을 망친 대실수이다.

내가 직접 가서 가르쳐본 오늘날 중국의 대학원생들은 만 리나 떨어진 곳들에서 왔으면서 모두 하나같았다. 국정교과서 이외의 책은 전연 읽지 않아, 아는 것은 다 알고 모르는 것은 다 몰랐다. 지식이 모두 중첩되어, 너무나도 많은 인구가 엄청난 낭비이다. 확고한 이념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교육을 일사불란하게 진행하다가 엄청나게 큰 짐을 질 수 있는 역량을 기르지 않는 차질은 청나라가 중국을 망친 대실수보다 더욱 심각하다. 짐은 너무 무겁고, 질 수 있는 힘은 아주 모자라는 것이 오늘날 중국의 크나큰 불운이다.

돌아다녀보면 중국 전역을 ‘和諧’라는 말로 도배를 했다. ‘和諧’(화해)는 두 글자이지만, 뜻이 같다. 화합한다는 말을 거듭한다. 전국 어디서나 같은 말을 거듭하면 불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자(孔子)는 일찍이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하고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한다고 했다. 같아서 불화하지 않고, 다르므로 화합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오늘날 중국에 화해(和諧)만 있고, 부동(不同)은 어디 갔는가?” 내 책 <<동아시아문명론>>에서 이렇게 한 말을 중국어 번역본에서는 사전에 아무 상의도 없이 삭제했다.

청나라 시기에는 광대한 영역의 수많은 민족을 무력으로 누르면 다스릴 수 있었다. 거대한 제국이 위엄을 보이는 것만으로 이탈을 막을 수 있었다. 오늘날은 무력이 더 강해졌으나, 이탈을 막는 힘은 더 약해졌다. 중화인민공화국이 하나이게 하는 정당한 이유가 분명하게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사회주의 혁명을 일제히 실현해 역사 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긴다는 것이었다. 시장경제로 나아가면서 빈부차가 격심해져 사회주의 명분은 퇴색되었다. 한족은 부유해지고, 소수민족은 빈곤해졌다. 

지금은 중국의 모든 민족을 중화민족이라고, 중화민족의 영광을 일제히 실현하는 것이 중화인민공화국이 하나이게 하는 이유라고 한다. 중국의 모든 민족이 중화민족이라고 하는 말은 허구이고 관념이다. 소비에트연방에서는 연방의 구성원은 누구나 러시아민족이라는 말을 전연 하지 않았다. 민족의 개념을 부당하게 확대하지 않고, 공산주의 이념의 과학적 타당성을 유지한다고 했다. 중화민족의 영광에 동참하라는 이유를 내세워 소수민족의 반발을 막으려는 것은, 한족 중심주의의 무리한 확장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낡은 민족주의로 회귀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역사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긴다는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청나라를 계승한 국가이고자 해서 너무나도 많은 짐을 지고 지나친 수고를 한다. 청나라의 대실수를 그래도 이어받고 대폭 추가해 괴로움을 겪는다. 민족주의를 대국주의로 확대하고, 패권주의 반대를 패권주의의 방식으로 진행해, 대외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국경이 맞닿은 모든 나라를 영토분쟁을 하면서 밀어낸다.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길을 열어 멀리까지 뻗어나가려고 하다가, 반발을 사고 갈등을 빚어낸다. 중국과 온 세계가 맞서게 되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로마제국, 몽골제국, 소비에트제국 등은 모두 지나치게 강성한 힘으로 판도를 너무 넓히다가 망했다. 청나라가 망한 것도 같은 이유인 것을 알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중국이 청나라를 계승한 국가가 아니고, 청나라의 대실수를 시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방향을 바꾸면 살 길이 있다. 너무나도 큰 짐을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몸집을 줄이면 수고를 덜고, 온 세계와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바람직한 관계를 가지기 시작한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을 근거로 삼고, 자연사와 인간사가 일치한다고 일깨워준 것이 동아시아 사상의 아주 소중한 유산이다. 공룡은 체구가 너무 커서 멸종되었다. 호랑이는 존속이 의심스럽지만, 고양이는 어디서나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것을 누구나 본다. 사람은 공룡이나 호랑이가 아니므로, 강성하기만 한 것은 자멸하게 마련이라는 이치를 알고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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