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지식인, 일제 강제징용 손배소 각하 판결에 규탄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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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지식인, 일제 강제징용 손배소 각하 판결에 규탄 성명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6.1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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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인권회복과 소송 지원을 위해 활동하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단체. 사진=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법원이 모두 각하하자 시민사회 비판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일 지식인들이 10일 판결을 규탄하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4부(김양호 부장판사)는 지난 7일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소송을 모두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요건에 흠결이 있거나 적법하지 않아 본안심리를 하지 않는 재판을 말한다. 재판부는 다양한 논거를 들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재판상 행사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청구권'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청구권 협정에 의해 양 체약국이 서로에 대한 외교적 보호권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소송으로 개인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을 제한하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일본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자료가 없고 국제법으로도 그 불법성이 인정된 자료가 없다"며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이에 터잡은 징용의 불법성은 유감스럽게도 모두 국내법적인 법해석"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대한민국이 여전히 국제법적으로 청구권 협정에 구속된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위자료청구권을 인정한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등은 국내 최고 재판소 판결이지만 식민지배와 징용 불법성을 전제로 하고 있어, 이러한 국내법적 사정만으로 식민지배의 불법에 대해 상호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일괄해 청구권 협정의 불이행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만약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할 경우 '국제법상 금반언 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금반언 원칙이란 국가의 책임있는 기관이 특정의 발언이나 행위를 한 경우 나중에 그와 모순, 배치되는 발언이나 행위를 할 수 없고, 그러한 발언이나 행위가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하는 국제법상 원칙을 말한다.

또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인정돼 재판에서 확정되더라도 판결 집행 자체가 권리남용에 해당돼 청구이의 소나 그 잠정처분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 사건 강제집행은 권리남용 요건을 충족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피고 일본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본다면 헌법상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및 공공복리와 상충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며 "손해배상청구권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및 공공복리를 위해 국내법적으로 법률 지위에 있는 조약에 해당하는 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권이 제한된다"는 판결 이유도 제시했다.

‘각하 판결을 규탄하는 한일 지식인’은 10일 성명을 내고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각하 판결을 “역사적 퇴보”라고 비판하면서 “한국 사법부 최종심 주체인 대법원에서 재판부가 2018년 선고한 강제징용 피해자 승소 판결을 무시하고 한일의 진보적 시민과 법조인이 연대해 이룬 결과를 어찌 뒤엎을 수 있단 말인가”라며 한탄했다.

이번 성명에는 △박맹수 원광대 총장 △김춘식‧한승훈 동신대 교수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 △형진의 한남대 교수 등 한국 대학 총장‧교수들이 이름을 올렸다. 또한  리명한 소설가(광주·전남작가회의 고문), 김준태 시인 등 문학계 인사들과 나야 마사히로 전 아이치교대 교수,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야마카와 슈헤이 작가 등 일본 지식인도 참여했다. 야마카와 슈헤이 작가는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를 지원하며 최근에는 피해자 유족과 교류한 경험을 담은 책 ‘인간의 보루’의 저자다.

 

* 이들이 6월 10일 공개한 성명문은 다음과 같다.

각하 판결을 규탄하는 한일 지식인 성명

2021년 6월 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 34부 김양호 부장판사 판결은 한일의 진보적 역사를 무시한 것으로 본다. 한국 사법부의 최종심 주체인 대법원에서 재판부가 2018년 선고한 강제징용 피해자 승소 판결을 무시하고, 한일의 진보적 시민과 법조인이 연대해 이룬 결과를 어찌 뒤엎을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역사의 퇴보에 다름 아니다. 

징용피해 소송 건과 관련해서는 우여곡절의 역사가 있다. 같은 이국인 노동피해에 대해서 일본은 엄연히 사죄와 배상을 한 바 있지 않던가. 해방 후인 1990년 중국인 생존자와 유족들은 하나오카 사건의 가해 기업인 가시마구미 측에 진심 어린 사죄를 요구했다. 하지만 가시마가 사죄하자 피해자들은 사죄 성명으로는 부족하다며 배상을 요구, 1995년 도쿄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중국인 피해자들은 도쿄고등재판소 판결을 이끌어 냈고, 2000년 가시마구미는 피해자 측의 대리 주체인 중국적십자회에 5억 엔을 배상하고 화해한 바 있다. 

2010년에도 일본 니시마쓰(西松)건설사는 일제강점기 니카타에서 노역에 시달리며 피해를 입은 중국인 징용자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배상금을 지불했다. 이처럼 같은 피해자 입장의 중국인들도 배상과 사죄를 받은 투쟁의 역사가 있어서 우리도 그런 예를 참고로 끊임없이 피해배상을 요구해왔고 드디어 대법원의 승소 판결도 이끌어내지 않았는가. 

미쓰비시중공업이 자세를 바꿔 근로정신대 할머니 피해자 측과 2010년부터 도쿄와 나고야 등에서 16차례나 협상을 진행한 것은 한일시민단체의 연대와 노력의 결과였다. 어찌 이러한 징용피해 해결의 역사, 그리고 그 해결 과정과 선례를 무시하고, 1965년으로 되돌아가 일본 측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청구권 협정에 근거한 판결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일본 내에서 징용피해자를 지원하는 양심적 일본 시민단체에는 너무나 면목이 없는 판결이다. 

징용피해자를 지원하는 양심적 일본 시민단체의 활동과 근로정신대 역사를 밝힌 야마카와 작가의 기록을 보고 의견을 모은 몇몇 한일지식인들은 이번 판결을 주시,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음을 밝힌다. 

나아가 이러한 판결의 배경에 어떠한 의혹이 있는지를 철저히 규명하고자 한다. 한국의 선례가 일본의 북한에 대한 배상에도 영향을 끼침을 사법부 관계자들은 인식하고 구시대적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며, 민족 동질성과 주체성 회복 문제로 인식하기를 촉구한다. 

몇몇 한일지식인들이 발신하는 이 성명서가 이 문제에 관심 있는 국내외 모든 이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촉매제가 되길 바란다. 다시 한번 이번 국내 판결을 규탄하며, 관련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호소한다.  

외교 보호권에 관한 한 개인의 청구권까지 포기 상태가 아니라는 점은 일본을 비롯한 세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개인의 청구권마저 인정할 수 없다는 인식이 등장하는 자체가 역사 퇴보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이번 판결을 내린 판결 주체의 책임을 묻고, 엄중히 대처하고자 한다. 

       
2021년 6월 10일 

각하 판결을 규탄하는 한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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