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어문 규범 통일이 왜 통일의 디딤돌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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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어문 규범 통일이 왜 통일의 디딤돌이 될까?
  • 이관규 고려대·국어학
  • 승인 2021.06.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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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남북한 어문 규범의 변천과 과제』 (이관규 지음,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448쪽, 2021.05)

분단 75년이 지난 지금 남북한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할 것 없이 많은 이질화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 하나의 한민족으로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런데 하나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 곧 어문 규범이 안전히 이질적이라 하면 서로 소통하기가 쉽지 않다. 남북 어문 규범은 맞춤법, 띄어쓰기법, 문장 부호법, 발음법, 로마자 표기법, 외래어 표기법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개별 어문 규범이 남북 각각에서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남북한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통일 어문 규범을 모색하여 보았다.   

광복 직후, 남북은 하나의 맞춤법을 사용!

일제강점기 1933년에 조선어학회에서는 ‘한글 마춤법 통일안’을 공포하였다. 우리말이 사라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조선어사전이 필요했고,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맞춤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광복 직후 1946년에 한글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다시 나왔고, 이것을 남북한이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남한에서는 조선어학회 인사들이 어문 정책을 주도했고, 북한에서는 조선어학회와 관련을 지니고 있었던 이극로, 김두봉 같은 사람들이 어문 정책을 이끌었던 것이다. 

본래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에는 맞춤법은 물론이고 띄어쓰기, 문장 부호 같은 규범도 포함하고 있었다. 하긴 2021년 현재 사용하고 있는 ‘한글 맞춤법’(1988, 2014) 규범 안에도 이것들이 들어가 있다. 이에 비해 현행 북한의 ‘조선말 규범집’(1966, 1988, 2010) 안에는 ‘맞춤법’, ‘띄어쓰기규정’, ‘문장부호법’, ‘문화어발음법’이 각각 동일한 중요도를 갖고 들어가 있다. 특히 ‘문화어발음법’이 일찌감치 등장하게 된 것은 무척 흥미롭다. 남한에서는 1988년이 되어서야 ‘표준어규정’ 속에 제2부로 ‘표준발음법’이 처음 들어가는데, 북한에서는 훨씬 이전부터 발음법을 발표하였던 것이다. 말하기, 듣기와 같은 발음법 교육을 강조하고 북한의 국어교육 특징을 이해하게 된다. 

북한은 김일성종합대학교의 총장으로 있었던 김두봉의 영향 아래 1948년에 ‘조선어신철자법’, 이어서 1954년에 ‘조선어철자법’을 공포하였다. 이후 1964년, 1966년 김일성이 언어학자들과 담화를 하면서, ‘조선말규범집’(1966, 1988, 2010)이 나오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맞춤법 차원에서 볼 때 무엇보다 “조선말맞춤법은 단어에서 뜻을 가지는 매개 부분을 언제나 같게 적는 원칙을 기본으로 하면서 일부 경우 소리나는대로 적거나 관습을 따르는 것을 허용한다.”라고 하여 단어의 형태를 밝혀 적는 형태주의를 천명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현재 남한에서는 “한글 맞춤법은 표준어를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하여 음소주의가 우선인지 형태주의가 우선인지 헷갈리게 하는 면이 없지 않은데, 북한에서는 1948년부터 “…일정한 형태를 표기함으로서 원칙으로 삼는다”라고 밝혀 왔던 것이다.

남한은 띄고, 북한은 붙이고… 이것은 가독성 문제일 뿐!!

띄어쓰기는 북한에서 무척 중요하게 다루어 왔다. “단어를 단위로 띄여쓰는것을 원칙으로 하되 글을 읽고 리해하기 쉽게 일부 경우에는 붙여쓴다”라는 ‘띄여쓰기규정’(2010)의 총칙에서도 볼 수 있듯이 남한과 마찬가지로 단어별 띄어쓰기를 원칙으로 하면서도 가독성을 위해서 붙여 쓰는 경향이 많다. 예컨대 의존 명사와 보조 용언을 언제나 붙여 쓰도록 한다거나 명사들이 이어져 나올 때 붙여 쓰도록 하고 있다. 남한에서는 보조 용언을 붙여 쓸 수도 있다거나 전문 용어 차원에서 명사를 붙여 쓸 수 있다는 허용 규정을 갖고 있다. 1933년 및 1946년 통일안에서는 북한 방식을 제시하고 있었다. 최근 들어 인공지능시대를 맞이하여 띄어쓰기가 아주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북한의 ‘조선말 띄여쓰기규범’(20002)에서 대개 띄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규범을 발표했다가 다시 ‘조선말 띄여쓰기규정’(2003)으로 바꾸곤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고민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문제는 결국 원칙과 허용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하는 근본적인 논란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띄어쓰기법과 함께 문장 부호법도 북한에서는 무척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조선말규범집’(2010)에서 맞춤법과 대등한 큰 범주로 띄어쓰기법을 설정하고 있다. 광복 이전에 문장 부호법은 1933년 세로쓰기, 1940년에 세로쓰기+가로쓰기 체제이었다. 남한 ‘한글 맞춤법’(1988)에서는 역시 두 가지를 제시하였고 2014년에는 세로쓰기 하나만 제시하였다. 1964년에 세로쓰기용 띄어쓰기 13개를 교육부 내부용으로 갖고 있기는 하였으나 공식적 규범은 아니었다. 이에 비해 북한에서는 1948년, 1954년, 1966년, 1988년, 2010년 모두 세로쓰기 체제만을 담고 있다. 남북한의 문장 부호는 각각 21개와 16개로 이루어져 있으나 16개로 통일시킬 수 있다.

1992년, 남북학자들은 통일 로마자 표기법에 합의하기도!!! 

로마자 표기법은 통일은 더욱 필요하다. 1984년에 ISO에서는 남한과 북한에 한글의 로마자 표기안을 내 달라고 요청했는데 1985년 4월에 북한이, 1986년에 남한이 안을 제출했고, 이후 남북한과 프랑스 및 기타 참가국 대표들이 협의를 하기도 하였다. 이후 1992년에 남북한 학자들은 잠정적이긴 하지만 합의안을 도출해 내기도 하였다. 남한의 로마자 표기법은 1948년, 1959년, 1984년을 지나, 현재는 2000년에 발표되고 2014년에 수정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 규범을 준수하고 있다. 이것은 인공지능시대에 맞게 반달표(˘)나 어깨점(´) 등 일체의 특수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북한은 1956년, 1969년, 1985년 것을 지나 현재는 1992년에 나온 ‘조선어의 라틴문자표기법’을 규범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2012년에 유엔에 제출된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이 바로 1992년 것인 데서 알 수 있다. 북한의 현행 모음 로마자 표기법은 특수 기호를 사용하는 매큔 라이샤워(MR) 표기법(1939)과 완전히 일치한다. 결국 북한은 전사법, 남한은 전자법에 기운 이질성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서는 자음은 북한 것, 모음은 남한 것을 주로 따른 통일 로마자 표기법을 제안하였다. 

남북한은 광복 후 각각 접하는 언어들이 많이 다르다 보니 외래어 표기법에서 이질화를 경험하게 된다. 남한은 몇 차례 변천 과정을 거쳐서 현재 ‘외래어 표기법’(1986)이 유지되고 있음에 비해서, 북한에서는 『조선어 외래어 표기법』(1956)이 나온 이래로 이후 『외국말적기법』(1969, 1982, 2001)이 사용되어 왔다. 북한은 외래어 표기법이 아니라 외국말 적기법이라 하여 남한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실 국어의 하나로서 외래어는 사전에 등재되면 되는 것이고 인·지명 같은 것은 외국어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은 외국말 표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조선어든 남한의 한국어든 모두 동일한 하나의 언어이다. 같은 언어를 다른 어문 규범으로 다르게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민족어를 올바로 표기하고 소리 내는 방법을 정한 어문 규범, 곧 맞춤법, 띄어쓰기법, 문장 부호법, 발음법, 로마자 표기법, 외래어 표기법이 통일되는 날, 이미 남북한은 통일을 경험하고 있는 상태일지 모른다. 조선어학회에서 1933년에 통일안을 처음 냈을 때 우리는 최소한 남북 분단 상태는 아니었다.  


이관규 고려대·국어학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 공부를 했다. 부산여자대학교(현 신라대학교)와 홍익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지금은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재직 중이다. 국어교육학회와 한국문법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국립국어원 자문위원과 문화관광부 국어심의회 위원을 맡는 등 여러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학교 문법론》, 《학교 문법 교육론》, 《문법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교사를 위한 문법 이야기》 등 주로 문법 교육 분야의 저술을 집필하였으며, 최근에는 《북한의 학교 문법론》을 집필하고 《체계기능언어학 개관》을 발간하는 등 연구 영역을 새로이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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