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근대를 보는 ‘공통의 언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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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를 보는 ‘공통의 언어’를 찾아서
  • 강상규 방송통신대·동아시아 정치사상 및 외교사
  • 승인 2021.06.13 17: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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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칼럼]

흩어진 퍼즐 조각들 전체를 보는 눈을 찾아 동아시아 근현대를 관통하는 내러티브를 어떻게 설정해 나가야 할까? 동아시아 근대에 관한 보편적인 이해와 상호영향 관계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려면 동아시아라는 차원에서 19세기 후반 이후 나타난 주요한 ‘역사적 전환기들’ 각각의 ‘결정적인 장면’을 입체적으로 포착하는 여러 프레임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동아시아의 근대는 대체로 네 번의 시기(1기. 19세기 후반: 아편전쟁에서 청일전쟁 직전까지/ 2기. 20세기 전반: 청일전쟁에서 아시아 태평양전쟁 종결까지/ 3기. 20세기 후반: 일본의 패전에서 냉전의 종언까지/ 4기. 21세기 초반: 탈냉전에서 현재까지)로 나누어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는 하나의 사례로서 동아시아 근대의 제2기에 해당하는 20세기 전반(前半)에 대한 큰 그림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우선 20세기 전반 동아시아라고 하면 그동안 어떤 식으로 인식되어 온 것일까? 대체로 이 시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빚어지는 파멸적인 상황과 함께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가 제국주의 전쟁 속에 휘말려 들면서 세계가 충격과 혼돈에 빠져들었던 불행했던 시대로 이해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시대 인식 위에서, 일본처럼 제국주의를 펼친 쪽에서는 혼돈의 상황에 놓인 근대적 세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함께 전체적으로 어둡고 암울한 시대여서 ‘세계적 대세’에 따라 일본 역시 불행한 흐름 속에 불가피하게 휘말려 들어갔다는 상황 논리를 주로 강조하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반면 일본 내부의 비판 세력들이나 제국 일본에 지배당한 쪽에서는 일본이 전체주의적인 초국가주의 성향, 파시즘으로 나아가면서 연합국과 전 세계를 위협하였으며, 이때 일본이 만주사변(1931), 중일 전면전쟁(1937), 아시아 태평양전쟁(1941) 등으로 이어지는 전쟁 속으로 몰입해 들어감에 따라 1930년대와 40년대 일본 국민과 주변 국가의 국민들이 받게 되는 고통에 초점을 맞춰 이 시대를 이해하고 있다.

20세기 전반기를 바라보는 엇갈리는 두 개의 상반된 입장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보는 ‘공통된 시선’이나 ‘공통의 언어’를 추출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는 역사서술의 주체가 일국사적 관점에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거나 혹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시대를 이해하고 주장하려고 하는 경향이 존재하기 때문이겠지만, 각자가 제시하는 이 시대의 퍼즐 조각이 매우 협소하거나 지엽적이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제국 일본의 행보에 대한 이해가 갖춰지지 않은 채로는 20세기 전반기 동아시아 역사 또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시기 일본제국주의와 동아시아는 어떤 식으로든 떼려야 뗄 수 없이 맞물려 있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20세기 전반 인류의 역사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의해 얼룩졌다. 인류사에서 가장 비극적이었던 이 시기에 세계는 그동안 경험한 바 없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대전과 처절한 형태의 총력전으로 전쟁에 몰입해 들어갔다. 인류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애국심과 증오로 들끓었으며 600만 명의 유대인 학살과 원자폭탄의 비극을 체험했는가 하면, 세계사의 새로운 실험으로 사회주의 혁명에 매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프레임에만 의지하여 20세기 전반부의 아시아를 조명하게 되면 동아시아의 실상은 사각(死角)지대에 들어감으로써 좀처럼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다. 요컨대 다분히 서양 중심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진 내러티브에 묻혀 동아시아의 실태는 두 차례 세계대전의 포성과 짙은 포연으로 가려지게 되고, 동아시아는 타자화(他者化)되고 허구적으로 추상화되면서 ‘스스로의 체험과 시선으로 역사를 서술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좀처럼 포착되지 않는 20세기 전반 동아시아 상황을 드러내려면, 제국 일본의 행보에 주목하면서 이 시기를 바라보는 새로운 프레임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동아시아는 19세기 후반 ‘서양의 팽창’과 그로 인한 ‘서양의 충격’ 이래 ‘문명 기준의 역전’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의 연장선상에서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경합에서 제국으로 급격히 부상한 해양세력 일본은 기존의 중화 질서의 패권국이던 대륙의 청국과 새로이 도전해 오는 러시아를 차례로 제압하면서 부국강병 정책의 유효성을 확인하고 전쟁에 열광해 들어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유구왕국과 대만, 조선/대한제국을 차례로 병합하였다. 유구왕국은 오키나와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편입되면서 내부 식민지가 되었고, 대만과 한반도는 제국 일본의 외부 식민지가 되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20세기 전반부 동아시아의 전체상을 보다 입체적이면서도 섬세하게 포착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사실들에 대해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동아시아의 관점에서는 제국 일본이 1894년 청일전쟁 이후부터 1945년 종전에 이르는 50년의 시간 동안 전쟁 중이었거나 혹은 사실상의 준전시(準戰時)체제라고 부를만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1889년 일본제국헌법의 선포와 제국의회의 설립 이후 체제를 정비한 제국 일본은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을 일으키며 본격적인 제국주의로 나서게 된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시베리아 출병(1918~1922), 1931년의 만주사변부터 1937년의 중일 전면전쟁, 나아가 아시아태평양전쟁(1941~1945)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전쟁으로 돌진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쟁은 모두 일본의 선제공격으로 이루어졌으며, 일본열도가 아닌 일본 열도 밖에서 치러졌다. 일본의 승전고가 울리고 일본국민의 열광적인 환호가 퍼져나가는 순간 어딘가에서는 어김없이 동아시아 민중들의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반면 일본 본토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연합국의 공격에 노출된 것은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50년 전쟁의 끝자락인 1945년에 이르러서였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해보면,  동아시아에서 반세기에 걸쳐 진행된 전쟁을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50년 전쟁’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일련의 덩어리로 조감(鳥瞰)하게 되면 그동안 보이지 않고 안개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동아시아의 전체상황이 훨씬 명료하게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왜냐하면 청일전쟁 이후 일본 제국이 패망할 때까지 50년간의 궤적을 기존방식과 같은 파편화된 퍼즐 조각이나 부분적인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는 한계를 극복하면서 일관된 시야로 일본제국주의의 전체상을 직시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제국 일본의 억압 하에 들어가게 되는 유동하는 동아시아의 전체상황을 동시에 입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제국주의는 서양제국주의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동시에 서양제국주의에 대한 대항논리적 성격을 지닌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일본제국주의가 서양제국주의에 대해 저항하면서 아시아를 해방시킨다는 논리로 전쟁을 수행해나갔다는 사정을 고려하게 되면,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50년 전쟁’이라는 프레임은 제국 일본의 전쟁을 서양제국주의의 행보와 별개의 것, 혹은 관련 없는 것처럼 이해하는 일반화된 통념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 따라서 일본제국주의와 서양제국주의 상호 간의 영향 관계를 동시에 포착하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뿐만 아니라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50년 전쟁’이라는 시각의 또 하나의 장점은 기나긴 전쟁이 끝난 뒤의 앞뒤 맥락을 계기적으로 연결해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다. 그동안 오래도록 진행된 길고 긴 전쟁으로 동아시아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가던 일본제국은 미국의 두 차례의 원자폭탄 투하-히로시마(1945.8.6.)와 나가사키(1945.8.9.)-와 소련의 대일전 참전(1945.8.8.)이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 봉착하면서 마침내 항복을 결정하게 된다. 반세기에 걸친 기나긴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를 질식시켜오던 제국 일본이 마치 증발하듯 갑자기 사라지게 되면서, 여기에서 비롯된 권력 공백 상태를 전후 동아시아 냉전 질서가 빠르게 채워나가게 된 것이다. 그동안 기나긴 세월을 총력전으로 돌진하던 제국 일본이 맥아더와 연합국사령부의 지휘 하에 놓이게 되면서 이제는 ‘평화헌법’을 가진 ‘전쟁하지 않는 국가/ 전쟁할 수 없는 국가’라는 완전히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변신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아시아를 파국으로 몰아갔던 격렬했던 전쟁은 갑자기 신기루처럼 사라지게 되고 전전과 전후 세계는 완전히 단절되어 버린 것처럼 말이 바뀌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와중에 빠르게 확산되는 ‘냉전’의 압박 속에서 긴박하게 동아시아의 새로운 틀이 짜지게 된다. 동아시아에 속하는 여러 나라 사람들의 기억의 강물이 급하게 봉쇄되면서 단기적이고 칸막이에 갇혀버린 일국사적 입장에서 ‘독백의 역사’가 만들어지게 되는 배경이 이렇게 이어지며 형성되었던 것이다.

21세기 동아시아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단기적인 사고를 넘어 ‘불편한 진실’과 만나는 역사를 굳이 살피는 것은 우리가 역사의 그늘 위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제시한 ‘제국 일본의 동아시아 50년 전쟁’이라는 또 다른 새로운 거울을 다른 프레임들과 함께 적절하게 활용하게 되면 반세기 동안 지속되던 ‘제국 일본’과 제국주의의 활극장이 되어버린 ‘동아시아’의 모습이 좀 더 선명하고 보다 입체적으로 시야에 들어올 것이다. 아울러 제국 일본이라는 동아시아 권력의 구심축이 무너진 자리에서 연쇄적으로 펼쳐지는 전후 동아시아 냉전 질서를 보다 입체적이고 계기적으로 포착하는 단서를 마련하기가 용이해질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성찰들이 동아시아 구성원들 서로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축적되고 확산될 때 비로소 “과거의 잘못된 선택들이 ‘지금 여기’에서 반복적으로 확대 재생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새로운 각성과 더불어 진정성 담긴 ‘상생과 협력을 모색하는 대화’의 가능성이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강상규 방송통신대·동아시아 정치사상 및 외교사

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총합문화연구과에서 국제관계론 분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의 건강하고 의미 있는 소통과 상생의 길, 동아시아 역사의 새로운 해석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19세기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변환과 제국 일본』, 『조선정치사의 발견』, 『동아시아 역사학선언』(근간) 등이 있다. 최근 논문으로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신화와 일본의 전후체제”, “주권개념과 19세기 한국 근대사”, “역사적 전환기 한반도의 국제정치 경험에 관한 연구: 류큐왕국/오키나와 및 대만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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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2021-06-15 10:42:15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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