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공리주의는 하나의 해방철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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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공리주의는 하나의 해방철학이었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6.06 22: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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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적 급진주의의 형성 1, 2, 3 | 엘리 알레비 저 | 박동천 역 | 한국문화사 | 각 464, 424, 480쪽

[옮긴이 서문]

엘리 알레비의 『철학적 급진주의의 형성』은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를 중심으로 영국에서 철학적 급진주의가 태어나 형체를 갖춘 과정을 추적한 연구다. 알레비는 1748년부터 1832년에 걸친 벤담의 생애를 세 부분으로 구획하여 철학적 급진주의의 형성을 분석하고 서술했다.
 
제1권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까지 벤담의 젊은 시절을 다루면서, 공리주의의 발상에 그가 도달하게 된 배경에 영국 및 유럽 대륙의 선배들로부터 어떤 영감들을 물려받았는지, 공리주의가 그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해서 법철학과 사법개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는지, 그리고 경제적 문제들에 관해 애덤 스미스에게서 받은 영향을 그가 어떻게 나름대로 응용해서 당대 영국에서 다각적으로 벌어지고 있던 개혁운동의 갈래들 중에서 어떤 위치를 점했는지 등을 해명한다. 

제2권에서는 1789년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1815년까지 벤담의 중장년기이자 유럽이 격렬한 사회변동을 겪기 시작하는 시기에, 버크, 페인, 고드윈, 맬서스 등 정치와 경제에 관해 활발히 주장을 펼친 동시대 개혁가들과 벤담이 주고받은 영향, 그리고 특히 제임스 밀을 통해서 벤담주의가 맬서스의 경고와 결합함으로써 마침내 철학적 급진주의가 탄생하는 사연을 살펴본다. 

그리고 제3권에서는 벤담의 노년기를 배경으로, 벤담과 그 추종자들이 꿈꿨던 사회의 기본 질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리고 정치와 경제와 사회와 교육에 관한 그들의 이념이 정형화되는 바탕에 인간의 지식과 행동에 관한 어떤 견해들이 있었는지, 다시 말해 그들의 인식론과 심리학이 어떠했는지를 탐구한다.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공리주의는, 진지한 논의의 주제로 다뤄지기도 전에 이것이 매우 비인간적이며 무례한 사고방식인 것처럼, 정체가 불분명하지만 굳이 캐내서 확인할 가치조차 없이 불쾌한 대상인 것처럼 배척되는 경향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공리주의에 대한 오해는 대략 네 갈래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벤담의 파놉티콘이 교도소 체제에 그치지 않고 마치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중앙에서 감시하는 사회체제를 시사한다는 듯이 과장해 놓은 투사(投射, projection)가 있다. 푸코의 지적에는, 최대한 선의로 해석하자면, 조직의 고도화가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계속해서 진행되어도 괜찮겠느냐는 중요한 질문이 담겨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제레미 벤담<br>
           제레미 벤담

둘째, 존 롤스가 『사회정의론』에서 그리고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마치 공리주의가 도덕을 무시하고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듯이 그려놓은 이분법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이야말로 벤담이 공리주의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잘못된 사고방식이다. 벤담은 도덕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도덕의 명령이란 이익들을 균형에 맞추면 필연적으로 생성되는 결과”라고 봤다. 

셋째, 공리주의가 사회주의를 배척하고 자본주의를 편든다는 생각이 있다. 제레미 벤담이 로크와 섀프츠베리와 허치슨과 흄과 애덤 스미스 등 영국인 선배들을 깊게 공부했고, 특히 스미스의 정치경제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벤담은 선배들을 추종만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비판도 했다. 

넷째, 대를 위해 소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발상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는 권력의 행사를 공리주의와 혼동하는 풍조가 있다. 한국 사회는 적어도 지난 200년 동안 엄청난 격변을 겪었고, 격변의 와중에 이치를 무력이 짓밟는 처사가 만연했다. 이에 덧붙여 지식인들 사이에는 대를 위해 소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발상을 마키아벨리주의 또는 공리주의로 혼동하는 풍조가 생겼다. 

알레비가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실질적으로 접속하려면 선입견을 먼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이 책에서 논의되는 철학적 급진주의의 풍성한 내용을 음미하면서, 거기에 어떤 이치가 있는지, 또는 어떤 과장이나 모순이나 허점이 있는지를 찬찬히 따져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의 내용을 한국인으로서 꼼꼼히 살펴볼 만한 정황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알레비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역사의 물결들이 아무도 거역할 수 없도록 주류의 자리를 차지한 19세기 후반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1789년의 혁명 이래 그때까지 격렬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던 프랑스에 비해, 영국에서는 어떻게 시대의 변화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점진적인 수준에서 관리될 수 있었는지를 궁금하게 여겼다. 공리주의 또는 철학적 급진주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서 지난 70년 내지 150년 동안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역사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대단히 폭력적인 격변을 겪은 한국 사회에 대해서도 충분히 적실성이 있는 논제다.

도덕적 판단에서 공리주의가 하나의 일반적 지침으로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묻는다면 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도덕의 개념과 일반적 지침이라는 개념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공리주의가 아닌 어떤 다른 도덕이론이라고 해서 올바른 판단을 위한 일반적 지침을 제공하지는 못 한다. 반면에 일반적인 지침을 구하지 않고 특별한 경우에 쓸 수 있는 잣대를 구하는 것이라면, 공리주의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판단의 기준으로서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있다. 경제학, 경영학, 정책학, 행정학, 합리적 선택 이론 등에서 비용효과분석이라는 형태로 공리계산법은 현대인에게 사유의 기본 형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발상의 전환이 어떤 정치ㆍ경제ㆍ사회적 배경에서 어떤 지적인 성찰들을 거쳐서 어떻게 형체를 갖추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알레비의 요약은 훌륭한 안내가 된다. 아울러 벤담의 시대에 영국과 유럽에서 얼마나 많은 영혼들이 정치ㆍ경제ㆍ사회의 문제의 해결 내지 개선을 위해서 지성과 정성을 바쳤는지, 그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조차도 적어도 공론장에서 발언할 때에는 개인적 감정이나 욕구를 표출하기보다는 이치에 맞는 말을 따라가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등도 철학적 급진주의와 관련된 다방면의 논의들을 통해서 엿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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