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터 실리콘까지, 세상을 바꾼 차가운 것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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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부터 실리콘까지, 세상을 바꾼 차가운 것들의 역사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6.06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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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과 물질: 물질이 만든 문명, 문명이 발견한 물질 | 스티븐 L. 사스 지음 | 배상규 옮김 | 위즈덤하우스 | 360쪽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물질은 문명과 함께 진보해왔다. 천연자원이나 농산물만으로 인류는 생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또는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해 우연히 발견한 물질, 그리고 물질을 가공하고 응용하는 기술이 있었기에 인류는 생존뿐 아니라 하나의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처럼 고대 인류를 움직였던 동기는 현대의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돌, 점토, 구리, 청동과 같이 고대에 발견한 물질부터 시멘트, 실리콘, 폴리머 등 비교적 현대에 발견한 물질까지, 문명과 물질이 함께 진화해온 방식을 하나씩 살펴본다. 각 물질은 끼니를 해결하고, 무기를 만들고, 건축물을 짓는 기초적인 역할을 뛰어넘어 한 국가의 흥망을 좌우하는 한편, 첨단 기술의 최전선에서 세상을 바꾸는 중요한 재료로 쓰여 왔다. 이 책에서 역사와 과학을 잇는 흥미진진한 물질의 연대기를 확인할 수 있다.

역사에서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등 특정 시대를 지칭하는 용어에 물질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물질과 인류의 문명사는 서로 맞물려 있다. 예컨대 철의 발견은 가마 온도를 높이는 기술을 개발하게 했으며, 가마 온도가 높아지자 유리를 다루는 기술도 같이 개발되었다. 유리는 희귀품에서 일상품이 되었고, 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에 창문을 선사했다. 한편 그리스는 아테네의 은광 덕분에 페르시아가 에게해로 진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으며, 로마의 알렉산더 대왕은 트리키아에서 추출한 금으로 전대미문의 제국을 건설했다. 중국에서 발명한 종이, 나침반, 화약은 무역과 탐험이 가능한 세계로 전환시켰다.

이 책은 “물질은 인류의 문명을 어떻게 형성해왔나”라는 물음에 여러 가지 답을 제공한다. 인류가 발명 혹은 발견하여 사용하고, 변용하고, 남용한 물질들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금, 백금 등의 물질은 풍요로움과 신비로움을 담고 있고, 철이나 고무는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와 얽혀 있다. 16세기 남아메리카는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차지하려던 스페인의 정복 활동에 최적지였다. 근대의 영국은 천연자원이 부족했는데, 이 사건은 산업혁명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금세기에 일어난 물질 혁신의 중심지이자 실리콘, 광섬유 기반의 컴퓨터 및 정보혁명의 본거지로 거듭났다. 이처럼 인류를 더 높은 곳에 오르게 하는 문물이 탄생할수록, 물질과 문명은 더 복잡하고 정교해졌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가 주변에서 쉽게 찾아 쓴 물질부터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 만든 합성 물질까지, 역사가 발전해온 순서대로 하나씩 물질을 연결해 설명한다. 돌은 무기로, 점토는 곡식과 액체류를 담는 용기로 사용되었고, 금과 은은 저장, 분할, 용해가 가능해 새로운 형태로 만들기 쉬워 주요 통화 수단이 되었다. 철과 구리는 탄소와 결합시키는 제련법의 발달로 더욱 견고하고 단단해졌고, 유리는 귀중품에서 일상용품으로 쓰였고, 초석과 황, 숯의 혼합물인 화약은 무기로 쓰이면서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주요 물품이 되었다. 알루미늄, 폴리머, 니켈 합금, 실리콘 등 새로운 합성 물질들은 신소재로서 현대사회를 편리하게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혁신적인 물질의 발명은 인류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는 ‘자본’ 시스템을 가져왔다. 각 물질의 속성과 특성을 이해할수록 인류가 문명에 사용하는 재료 또한 늘어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강철은 1800년대 고층건물의 시대를 열었고, 자동차 제조업 등 여러 산업이 새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유리섬유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미국의 과학자에 의해 개발되었는데 폭격기용 항공 레이더의 덮개인 레이돔 재료로 제작되었다. 특히 복합 재료는 특성이 복잡해서 제작하거나 적용하는 데 다양한 어려움이 따르고, 개발하는 데 위험 부담이 크지만, 성공할 경우 보상도 확실하기에 철강이나 항공 등 현대의 상업 회사는 큰 비용을 들여서라도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오늘날 경제와 자본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산업이 된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사서 이른 아침 라디오를 끼고 앉아 다정하게 다이얼을 돌리며 지구 반대편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라디오 신호를 잡기 위해 노력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그로부터 불과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의 모든 소식과 정보를 빠르게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 된 데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도 세상은 크게 바뀐다. 이미 실리콘 트랜지스터는 진공관을, 유리섬유는 구리 전선을, 제트 엔진은 피스톤 엔진을 대체했다. 탄소 섬유로 강화한 테니스 라켓과 낚싯대는 여가 생활을 바꿔놓았고, 세라믹과 금속으로 만든 관절은 인체 관절을 대체하며 의학계를 변화시켰다.

누구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려면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가장 동떨어져 있고 가장 이질적인 것들의 힘”을 하나로 결합시켜야 한다. 문명은 항상 그런 능력에 의지해왔다. 지금 우리는 비행기나 자동차를 만드는 산업에서는 소재의 경량화, 높은 효율 등을 위해 복합 재료를 계속 실험해 신소재를 개발하고 있다. 컴퓨터는 전자 부품을 초소형화해 모터와 센서 같은 기계 장치를 작게 제작하는 작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은 재료공학자, 과학자의 일이겠지만 이 도전에서 해결 방법을 찾고 상용화된다면, 미래 세대가 경험할 역사의 향방을 바꿀 수도 있다. 이 책에서 문명과 물질의 역사를 함께 읽으며, 미래의 물질이 바꿔놓을 새로운 차원의 문명을 상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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