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 이상이고 또 이상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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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 이상이고 또 이상이어야 한다
  • 김창래 고려대·서양철학
  • 승인 2021.06.0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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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과학과 정신과학: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와 정신과학이 갈 길』 (김창래 지음, 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 760쪽, 2021.04)

인간이란 무엇인가? 털 없는 원숭이? 아니면 자유로운 영혼?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대학에 갓 입학해, ‘인간은 땡땡땡 종을 치면 질질질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 씨의 개와 다를 것 없다’는 심리학적 행동주의를 처음 접하고 놀랜 한 청년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물음이다. 약관도 안 되던 청년은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중년 교수가 되어 40년 전의 답 없던 물음에 답하게 되었다. 그 답이 바로 『과학과 정신과학』이다. “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를 드러내어 보여 주고 정신과학이 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 책의 우선적인 목표다. 우선의 목표 뒤에 궁극의 목표가 숨어 있다. 그것은 …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이 책의 첫 단락이다.

왜 인간의 ‘무엇임’에 대해 사유하는 데에 과학과 정신과학에 대한 성찰이 통로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과학 시대를 살고 있고, 이 시대의 과학과 정신과학은 인간이 무엇‘인지’의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인간이 무엇‘이어야 하는지’의 의무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과학 시대의 앎과 무지가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규정하고 자연 이상일 가능성은 삭제한다. 오늘날 (자연)과학은 인간이 ‘실재로’ 종 치면 침 흘리는 개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보여 주지만, 인간은 그 ‘이념상’ 침 흘리는 개 이상의 무엇이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물음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고, 정작 이 물음에 답해야 할 정신과학은 스스로 답해야 할 물음과 답을 찾기 위해 가야 할 길조차 잊고 있는 상황이다. 과학의 힘과 성과에 놀라고 반해 자연과학 흉내 내기에 여념이 없는 정신과학자들에게도 자연과학자의 인간이 인간 자체가 되어 버린 까닭이다. 그렇게 과학 시대의 과학과 정신과학은 인간을 자연으로 만들었다. 자유로운 인간, 영혼으로서의 인간은 이제 없다. 자연 이상이어야 할, 즉 (종소리의 법칙의 강제로부터) 자유로워야 할 인간이 자연으로 축소되고, 자유로운 인간에 대한 학문이어야 할 정신과학이 자연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학문으로 변질되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인간의 위기로서의 정신과학의 위기이다. 『과학과 정신과학』은 이 위기에 대한, 자연 이상이기를 원하는 한 인간의, 자연 이상인 인간에 대해 알기를 원하는 한 정신과학자의 답변이다.

이 답에서 나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과학의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하려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과학이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간주함이 허용되는 조건이 무엇인지는 물었다. 어떤 조건 아래서 인간은 자연의 일부, 보편법칙의 사례로 간주되어도 좋은가? (그 긴 내용을 여기서 상론할 수는 없지만 간추리면) 과학은 궁극적으로는 자연의 지배를 원하고, 이 지배를 위해 자연을 예측해야 하고, 예측을 위해 설명해야 하고, 설명을 위해 자연을 보편법칙의 체계로 구성해야 한다. 과학이 인간을 다룰 때의 상황도 이와 꼭 같다. 보편법칙의 사례로서의 인간만이 설명되고, 예측되고, 지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간주한다. 여기서 지배는 물론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중력 법칙의 한 사례여야만 인간은 줄 없는 번지점프에 도전하는 우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있고, 면역 법칙의 사례로서의 인간만이 예방주사의 도움 아래 역병의 위험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조건 아래서 과학은 인간을 자연법칙의 한 케이스로 간주한다. 물론 정당하게.

문제는 과학 시대의 소시민들이―이들은 말하자면 과학이라는 신흥 종교의 바리새인들인데―‘자연의 지배라는 목적 아래서 과학이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관찰함이 정당화된다’라는 사실에서 ‘인간은 단적으로 자연이다’라는 사실을 도출해 낸다는 점이다. 과학을 신격화하는 이들에게 과학이 자연으로 ‘간주하는’ 인간은 곧 인간 자체이고 인간은 결코 그 이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더 이상 인간의 사랑과 기쁨과 흥분에 대해 말하지 않고 도파민과 엔도르핀과 아드레나린의 분비에 대해 말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비로소 ‘참된 방식으로’, ‘과학적으로’ 인간에 대해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과학 시대의 소시민들의 자부심이 존립한다. 그런데 만약 이 자부심도 특정 호르몬의 분비로 설명한다면, 그들은 이 설명 역시 관대하게 받아들일까? 그래야 할 것이다. 참된 바리새인이라면 남들뿐 아니라 자기 자신도 자연의 일부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고, 진짜 자연이라면 자신의 신체 안에서 일어나는 ‘자부심의 호르몬’, ‘관대함의 호르몬’의 분비에 대해 반대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 논리에는 뭔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 들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묻게 된다. ‘나는 자연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대한 긍정도 정말 개가 흘리는 침처럼 자연 현상에 불과한 것인가? 정말 침 흘리는 자연도 그런 긍정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나는 자연이다” 또는 “자연 이상이다”라고 말하는 인간은 많이 보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개는 본 적이 없다. 물론 인간도 종소리의 자극에 흐르는 침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개와 같은 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간은 침만 흘리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침을 긍정하거나 부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없이 침만 흘리고 있는 개와 다르고, 이 점에서 이미 자연을 능가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인간이 자연임을 인위적 실험을 통해 증명하고 긍정하는 파블로프 씨 자신이고, 의지에 반해 흐르는 침을 옷소매나 손수건으로 잽싸게 훔치며 위장하는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이 자연 이상이어야 한다는 바람을 보여 주는 피험자들 자신이다. ‘종소리에 대한 침 흘리는 인간의 관계’는 물론 자연이다. 그러나 ‘침 흘리는 인간에 대한 인간 자신의 관계’는 자연 이상이다. 인간은 침 흘리는 자연을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평가하며 이미 그 자연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인간은 침 흘릴 뿐 아니라 침을 훔치며 침 흘리는 자신을 위장하기도 한다. 이 위장의 이유를 자연 안에만 머무는 개는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물론 자연에 속한다. 누구도 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자연 이상이어야 한다. 누구도 이 ‘의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자연 안에 갇힌 영혼이다. 자연 안에 갇혀 있기에 자연인 것이 아니라, 자연 안에 갇혀 있기에 거기서 구해 내야 하는 영혼이다. 그래서 칸트는 인간을 자연과 자유의 세계, 두 세계의 시민(Bürger zweier Welten)이라 칭했다.

동물의 몸에 인간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가, 몸 안에 갇힌 혼이라는 인간의 두 얼굴, 즉 수수께끼의 답을 몸소 보여 주며 인간들에게 인간이 답인 수수께끼를 던진다. 인간은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믿고 답한 자는 스핑크스의 몸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잡아먹힌다. 인간은 털 없는 원숭이라고 믿고 답한 자는 스핑크스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잡아먹힌다. 수수께끼의 답은 수수께끼를 내는 자, 스핑크스 자신이다. 스핑크스가 스핑크스들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그리고 누구여야 하는가?” 나의 책은 앞의 물음에 대한 과학의 답과 뒤의 물음에 대한 정신과학의 답에 대해 숙고하면서, 이 ‘하나’의 물음에 답했다.


김창래 고려대·서양철학

고려대학교 철학과와 대학원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하여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본대학에서 현대 독일 철학을 공부하여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의 교수로 재직하며 딜타이, 니체, 하이데거, 가다머를 중심으로 현대 유럽 철학의 여러 문제들에 대해 강의해 왔다. 주된 철학적 연구 분야는 해석학, 정신과학론, 인간학, 존재론이고, 해당 분야에 20편이 넘는 논문을 썼다. 현재의 철학적 관심은 ‘니힐리즘으로서의 철학’에 집중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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