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에서 배우는 시대를 뛰어넘는 삶의 지혜와 통찰력
상태바
열국지에서 배우는 시대를 뛰어넘는 삶의 지혜와 통찰력
  • 김준태 성균관대·한국철학
  • 승인 2021.06.06 2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저자에게 듣는다_ 『열국지의 재발견』 (김준태 지음, 세창출판사, 296쪽, 2021.05)

“『열국지(列國誌)』를 읽어보셨습니까?” 동양고전이나 중국 역사에 관심이 많지 않은 이상,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 아예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병상련, 백발백중, 와신상담, 의기양양, 낭중지추 같은 고사성어는 어떤가? 아마 상당수는 안다고 대답할 것이다. 단지 이 말들이 『열국지』에 나온다는 것을 모를 뿐이다.

『열국지』는 『삼국지연의』나 『수호지』처럼 유명한 책도 아니고, 소설적 재미가 뛰어나지도 않다. 시대 배경이 춘추전국시대 550여 년에 걸쳐 있는 데다, 등장인물도 수백 명이어서 정신이 없다. 어떤 인물에게 애정을 가져볼라치면 금방 퇴장해 버린다. 지명, 관직명, 옛날 용어 등 단어들도 낯설고 어렵다. 완독하려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왜, 지금 굳이 『열국지』를 이야기하는가? 소개했다시피 『열국지』는 고사성어의 보고(寶庫)다. 오리지널 버전도 있고, 기초자료가 된 『사기』, 『전국책』 등에서 유래한 예도 있지만, 아무튼 우리가 지금껏 사용하는 고사성어의 상당수가 여기에 담겨있다. 『열국지』를 통해 고사성어가 만들어진 맥락과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동양적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우리의 언어생활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아울러, 『열국지』는 춘추전국시대의 종합 안내서와도 같다. 동양의 춘추전국시대는 서양 정신사에서 그리스시대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견된다. 제자백가(諸子百家)라 불리는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등장해 합을 겨뤘고, 이후 동아시아 국가들의 기틀이 된 이념과 제도들을 쏟아냈다. 거대한 문명의 전환기, 무한 경쟁시대를 겪으며 각 분야에서 역동적인 변화가 이뤄지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생명력 있는 교훈을 줄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춘추전국시대다. 『열국지』는 이 시기를 다룬 역사서들을 모두 집약한 데다, 소설 형식으로 서술되었다는 점에서(소설이라서 허구가 포함되어 있지만 그리 많지는 않다)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런데 『열국지』의 가장 큰 값어치는 수많은 나라의, 수많은 인물이, 수많은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에서부터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 자기 계발, 인간관계, 처세술, 음모와 책략, 전쟁의 기술, 국가 경영과 리더십 등, 시대라는 옷만 달리 입었을 뿐 현대사회에도 교훈을 줄 수 있는 내용이 망라되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온갖 시련을 딛고 나이 일흔이 되어서야 포부를 펼치게 된 백리해, 19년 동안의 망명 생활을 견디고 춘추시대의 패자(霸者)가 된 진문공을 통해 우리는 저마다 꽃피는 시간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고,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오나라의 명재상 오자서는 복수심에 눈이 멀었을 때 어떤 문제가 생겨나는지를 보여준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면 판단력을 잃고 악수(惡手)를 두게 된다. 이는 결국 자기 자신마저 무너뜨리게 되는데, 오자서의 비극적인 죽음이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밖에도 철부지 군주를 바른 길로 이끌고 국제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던 안영을 통해선 말의 기술을 배울 수 있다. 범려는 버리고 떠나기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오기는 올바름을 상실한 재능은 위태롭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 외 제환공, 초장왕, 자산, 공자, 손빈, 위앙, 범수, 여불위 등도 곱씹어볼 만한 교훈을 전해 줄 것이다.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리더의 인재등용이다.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첫 번째 군주인 문후(文侯)는 정성과 믿음, 전폭적인 지원으로 인재의 마음을 샀다. 인재가 아무런 걱정 없이 자신의 능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었다. 덕분에 신생국가인 위나라는 일약 전국시대의 강대국으로 떠오른다. 반면에 그의 손자인 혜왕(惠王)은 좋은 인재를 제대로 쓰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인재를 박대하고 탄압하여 위나라에 등을 돌리도록 만들었다. 제나라의 군사(軍師)가 되어 위나라 군대를 대파했던 손빈, 위나라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던 상앙은 본래 위나라에서 벼슬살이했던 인물들이다. 위나라를 찾았던 맹자, 순우곤, 추연 같은 명사들도 오락가락하고 무책임한 혜왕의 언행에 실망하고 이내 떠나버렸는데, 혜왕 대에 위나라는 영토의 상당 부분을 빼앗긴 약소국으로 전락한다. 망국과 부국의 갈림길은 ‘인재’, 결국 사람에 달려 있다는 것, 이 일에 소홀하면 짧은 시간 동안에도 국가의 운명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 그 준엄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졸고 『열국지의 재발견』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인물과 키워드 중심으로 30장에 나눠 담았다. 워낙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빠진 인물도, 생략한 사건도 많지만, 열국지의 대략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열국지』를 읽고, 『열국지』로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도움을 얻기 위한 길라잡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정조 임금의 말을 소개한다. 필자가 열국지를 ‘재발견’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세상은 변화가 무궁무진하여, 옛날과 오늘날 사이의 차이점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그 이면에는 서로 비슷한 데가 있다. 사람의 타고난 본성과 감정의 작용이 같고, 시대가 융성하고 쇠퇴하는 흐름도 대개 유사하다. 그러므로 잘 관찰해보면 오늘의 일은 옛사람이 일찍이 겪었던 일이요, 옛 사람이 남긴 말은 지금도 마땅히 되새겨야 할 가르침이 된다.”


김준태 성균관대·한국철학

성균관대학교에서 한국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같은 대학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이코노미스트≫의 필진으로 활동 중이며, 현대경제연구원 CreativeTV를 비롯한 다수의 기관에서 강의했다. 역사 속 리더십과 정치사상에 대한 연구와 집필을 계속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왕의 공부』(2020), 『마흔, 역사와 만날 시간』(2020), 『논어와 조선왕조실록』(2019), 『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2017), 『탁월한 조정자들』(2017), 『군주의 조건』(2013), 『왕의 경영』(2012)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