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연구·학생 지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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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연구·학생 지도비”
  •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 승인 2021.06.0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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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_ 대학직설

표본 실태조사에서 일부 국립대학이 ‘학생지도비’ (언론은 이렇게 썼지만, 원래 이름은 ‘교육·연구·학생 지도비’이고 국립대학에서는 ‘교연비’라고 부른다)를 부당 집행했다며, 교육부가 국립대학 전체에 대해 특별감사를 실시한다. 부동산 투기로 얻는 이득에 비해 액수가 너무 작은 탓인지 금세 수그러들었지만, ‘문자메시지 한 통에 몇만 원’ 식의 표현으로 ‘교직원’에게 몰염치와 탐욕을 덧씌우는 선정적인 언론보도도 있었다.

교육부 보도자료도 적시하듯, ‘교육‧연구 및 학생지도비’는 2015년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에 따라 기존 급여보조성 기성회회계 수당을 전면 폐지하고, 교육‧연구 및 학생지도 활동 실적에 따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지만 밝혀둘 전후 사정도 있다.

그 법은 2010년 11월에 일부 국립대 학생들이 대학을 상대로 기성회비 징수가 법률적 근거가 없다며 제기한 반환소송이 1심과 2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자 교육부가 대법원에서도 동일한 판결이 예상된다면 2015년 3월에 제정과 동시에 시행했다. 직후인 6월에 대법원은 국립대학의 기성회비 징수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국립대학이 독자적으로 운영하던 기성회계를 교육부가 통제하는 대학회계로 바꾼 법령을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음모를 의심할 단서는 없지만. 기묘하게도 이 시기에 이명박 정부는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을 강행하며 그 하나로 ‘국립대학 재정‧회계법 제정과 기성회계 제도 개선’(?)을 집요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그 법의 시행에 따라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은 이름만 달라졌을 뿐 금액은 그대로인 채) 교육부는 국립대학의 모든 재정 운영을 감독하게 되었고, 여기에 더해 모든 국립대학의 인사와 재정을 통합 괸리하는 ‘코러스’ 시스템을 통해 손바닥 들여다보듯 감시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회계의 일부인 교연비의 지출도 해마다 교육부에서 연초에 ‘가이드라인’을 ‘하달’하면 대학들은 그것에 맞춰 지급기준을 만들어 교육부의 ‘승인’을 받아 집행한다. 집행 내역은 코러스 시스템에 고스란히 기록된다. 대학이 교연비를 부당하게 집행했다고 교육부가 특별감사를 실시한다지만, 모든 자료가 코러스에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히 감사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 법의 시행이 ‘교직원’에 미친 적나라한 영향은 기성회계 시절에 지급받던 보조성 급여가 ‘교직원’의 동의는커녕 통보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국립대학 교수들은 일반직 공무원이나 연구직 공무원의 급여와 비교해 초라한 수준의 급여를 받고 있었고, 기성회계에서 ‘정액연구비’ 등의 이름으로 이를 보전했었다. 그런데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은 ‘경비’(!)인 교연비를 실적에 따라 차등지급하되 교직원의 통상 업무는 실적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나는 교수에게 통상의 업무 이외의 어떤 실적이 가능한지 상상할 수가 없다), 특히 “종전 기성회회계에서 지급되던 급여보조성 경비로 지급할 수 없음”이라고 못박고 있다. 이런 교연비 집행의 한 가지 결과는 국립대학 교수들을 실적에 따라 한정된 성과금을 빼앗고 빼앗기는 ‘영합경기(zero-sum game)’에 몰아넣음으로써 ‘만인에 대한 늑대’로 만든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대학에서는 교육부 ‘가이드라인’을 앞장서 따르던 초창기에 어떤 탁월한 교수는 4천여만 원을, 어떤 고지식한 교수는 200여만 원을 차등 지급받았다).

이 때문에 국립대학 교수들은 교연비는 이름에 맞게 ‘경비’로 사용하고, 교수들에게는 법령에 정한 ‘연구수당’을 지급하라고 교육부에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물론 교육부는 이런 요구에 무성의와 무반응으로 일관해 왔으며, 교육공무원법, 교육공무원보수규정, 교육공무원수당규정 등의 법령에 흩어져 있는 상충하고 누락된 조항들조차 정비하지 않을 만큼 무관심하다. 예컨대, 2011. 9. 30에 개정한 교육공무원법은 교원에게 교직수당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으나, 교육공무원수당규정은 1973. 3. 23. 일부개정의 상태로 남아 있다. 그 규정은 교수 및 부교수에게 연구수당인 ‘교원교재연구비’로 월 23,000원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나는 국립대학에 3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급여 명세에서 그런 항목을 구경한 적이 없다. 교육부는 특별감사 운운하기에 앞서 교육부가 할 일이 무엇인가부터 돌아봐야 한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강원대 교수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숫자를 믿는다: 과학과 공공적 삶에서 객관성의 추구』,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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