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환경은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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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환경은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5.30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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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의 전염: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다 |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424쪽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인가, 환경인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우리의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때로는 좋은 쪽으로, 하지만 좀더 흔하게는 나쁜 쪽으로 말이다. 좋은 식습관이나 규칙적인 운동처럼 건강을 증진하는 행동은 대개 습득하기가 어렵다. 이런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지금 당장이 아니라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드러나며, 인간 역시 대다수 동물과 마찬가지로 근시안적 경향성을 띠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즉각적 보상과 처벌은 턱없이 강조하고, 적잖은 시간이 흐른 뒤 나타나는 보상과 처벌은 지나치게 등한시한다. 사회심리학자들은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지적하는 바는 남들이 하는 일을 설명할 때 흔히 성격이나 인성 같은 내적 요인은 과대평가하고, 외적(즉 상황적) 요인은 과소평가한다는 사실이다. 반면에 경제학자들은 상대적 비교의 역할을 간과한다. 즉 사실상 모든 인식과 평가가 준거 틀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저자는 반복이 효과적인 학습의 중요한 핵심이라면서 몇 가지 표현을 되풀이한다. 그중 이 책의 주제를 가장 집약적으로 담아낸 표현이 “사회적 환경은 우리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이다. 이는 사회심리학과 경제학의 교차 지점에 놓인 행동경제학의 주된 탐구 주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평생에 걸쳐 사회적 행동과 경제적 행동에서의 경쟁과 협력에 주목해 연구해온 행동경제학자로서 이른바 ‘행동 전염’ 개념을 통해 그와 관련한 현상을 개괄적으로 조망한다(2부). 3부에서는 흡연, 비만, 문제적 음주, 성 문화, 상호 상쇄적인 낭비적 소비, 에너지 집약적 활동 등 행동 전염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4부에서는 행동 전염 논의의 통찰을 반영한 공공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개인에게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치는 좀더 지원적인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자고 촉구한다. 여기서 저자의 핵심 논리는 과세 제도가 규제 제도보다 지시적이거나 계몽적인 성격은 덜하고 효과는 더 낫다는 것이다. 즉 현재 세수의 대부분을 조달하는 소득세나 지급 급여세처럼 바람직한 행동에 대한 과세는 줄이고, 흡연이나 설탕 든 탄산음료 소비 같은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과세는 늘리는 식의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현상을 유지하고자 하는 완강하고 비타협적인 세력이 여전히 버티고 있음에도, 때로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미국에서 성인 인구의 흡연자 비율이 단 몇십 년 만에 60퍼센트 넘게 떨어졌으며, 동성 간 결혼에 대한 태도는 그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화했다. 또 정치적 소요의 가시적 기미도 거의 없이 수십 년을 보낸 옛 소련 회원국 정부들은 1년도 되지 않는 기간에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이러한 사건들 각각에서, 그 변화를 추동하는 가장 중요한 힘은 바로 ‘행동 전염’이다. 흡연의 경우, 새로운 세금과 규제가 최초 교란자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힘은 역시 행동 전염이다. 즉 한 사람의 흡연자가 금연을 택하면, 그의 동료 집단에 속한 또 다른 한 사람도 담배를 끊거나 아니면 흡연을 삼가게 될 거라는 말이다. 동성 간 결혼은 남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언론인 앤드루 설리번의 설득력 있는 주장은 그 주제에 대한 전국 차원의 대화를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지만, 여론의 급격한 변화에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다름 아닌 행동 전염이다. 즉 몇몇 사람이 공개적으로 마음을 바꾸었다고 밝히면,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좀더 안전하다고 느끼는 식이다.

원서 & 저자 로버트 프랭크

우리가 자신의 선택을 바꾸게 되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우리와 비슷한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느냐이다. 이웃이 지붕에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면 우리 역시 그렇게 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들이 플러그인 전기 자동차를 구매하면, 우리 역시 그것을 고려해볼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 그리고 동료들이 환경적 관심에 따른 반응으로 식생활을 바꾸면 우리 역시 그들을 모방할 가능성이 훨씬 많아진다. 따라서 행동 전염이 우리 선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면, 개인들로 하여금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한하도록 독려하는 정책의 효율성을 우리가 얼마나 과소평가해왔는지 알 수 있다. 또한 행동 외부성은 너무나 막강하기 때문에 개인의 에너지 사용을 직접적으로 바꿔주는 정책은 어떤 것이든 그 직접적 효과를 뛰어넘는, 흔히 상당 배수의 파급 효과를 낳을 것이다.

개인의 소비 결정만으로는 온난화 위협을 저지할 가망이 거의 없으므로 공공 정책의 대담한 변화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의식적 소비도 정책 전선의 진보를 촉진할 수 있다. 태양 전지판을 설치하는 행위, 전기 자동차를 구입하는 행위, 혹은 좀더 기후 친화적 식이법을 선택하는 행위는 비단 다른 사람이 그와 비슷한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 가능성만 키워주는 게 아니다. 그 행위자의 기후 변화 옹호론자로서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해주기도 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그 행위자가 강력한 기후 관련 입법에 찬성하는 후보들을 지지하고, 그들이 당선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이웃을 설득하러 나서도록 이끈다.

행동 전염의 힘을 더욱 깊이 인식하면 가장 시급한 두 가지 당면 과제, 즉 경제적 불평등과 기후 위기를 해결하는 정치 전략에 대해 생각해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린 뉴딜 지지자들은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지 못하면 현재의 교착 상태를 뚫고 나가기 위한 폭넓은 정치 연합체를 꾸리기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자들은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다루는 것은 너무 감당하기 벅차고 돈도 많이 들기 때문에 두 영역 다에서 실패할 게 뻔하다며 반박한다. 하지만 불평등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필요한 누진세가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부유한 유권자에게 고통스러운 희생을 요구한다고 가정하는 이러한 비판은 ‘모든 인지적 착각의 어머니’를 간과하고 있다. 즉 정치 지도자들이 유권자에게 높은 최고 세율을 부과해도 입찰 경쟁에서 성공할 수 있는 부자들의 상대적 능력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해준다면, 유권자 대다수는 아무런 실질적 희생도 따르지 않음을 이해할 것이다. 한마디로 양면전이 올바른 길이다. 경제 불평등을 가장 효과적으로 완화해주는 바로 그런 정책들이 동시에 탄소 중립을 성취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 비용을 줄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 행동 전염의 정책적 함의에 대해 들려주면서, 자신의 제언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채택하기란 어려울 거라며 회의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숱한 시도와 좌절을 거치긴 했지만 끝내 채택되기에 이른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 제도,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진척을 보인 ‘동성 간 결혼’ 합법화 사례를 들면서, 행동 전염이 대단히 논쟁적인 정책적 제안들에서도 급격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위력적인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요컨대 행동 전염은 주로는 나쁜 쪽으로 그러나 더러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치므로, 공공 정책이 그 영향의 물꼬를 좋은 쪽으로 틀고자 노력한다면 모두에게 이로운 사회적 환경이 창출될 거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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