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욕자와 탐닉자…자본주의적 이중 인간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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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자와 탐닉자…자본주의적 이중 인간의 출현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5.30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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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 | 다니엘 벨 지음 | 박형신 옮김 | 한길사 | 628쪽

이 책은 현실을 파악하고 보다 나은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회학의 야망에 대한 보고서로 출간 20주년 기념판으로 다시 나왔다. 저자 벨은 근대사회의 두 가지 충동, 즉 자본주의의 경제적 충동과 근대성의 문화적 충동이 금욕주의에서 쾌락주의로의 이행을 이끌었다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이중적인 모습(낮에는 금욕자, 밤에는 쾌락 탐닉자)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무엇이 다시 전체 사회를 하나로 결합할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한다.

제1부의 제1장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은 이 책의 핵심부에 해당한다. 제2장 「문화담론의 분리」는 자본주의 문화의 한 축을 형성하는 ‘모더니즘’의 특징을 개괄하고, 제3장에서는 모더니즘의 한 사례로서 ‘1960년대의 감성’을 분석한다. 이 과정을 통해 벨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한 문화가 어떻게 금욕주의에서 쾌락주의로 이행했는지를 밝힌다. 그리고 제4장에서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의 교정책으로서의 종교를 검토한다. 제2부 제5장에서는 그러한 문화적 모순을 배양해온 사회구조적 특징을 검토하고, 제6장에서는 그러한 모순 속에서 정체(政體)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딜레마에 빠지는지를 ‘재정사회학’이라는 이름으로 검토한다.

자본주의 세계는 16세기 이후 군사적ㆍ종교적 관심보다 경제활동을 통해 근대세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켜온 상업과 제조업에 종사한 길드, 즉 중간계급과 부르주아계급에 의해 창출되었으며, 이것이 바로 이 사회의 핵심적 특징이다. 따라서 이 경제체계가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 및 성격구조가 필요하다.

벨은 자본주의가 처음부터 이중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중 하나의 원천이 청교도주의에서 구체화되었으며 베버가 강조했던 금욕주의라면 다른 하나는 물욕이었다. 벨에 따르면 금욕주의가 타산적인 계산정신의 경제적 기반을 이루었다면 물욕의 배후에는 끊임없는 파우스트적 충동이 자리하고 있다. 물욕의 특징은 ‘무한성’이다. 벨에 따르면, 두 충동의 뒤얽힘이 근대 합리성의 개념을 틀지었다. 이 둘 간의 긴장이 초기 정복시대를 특징짓던 사치적 과시에 도덕적 제약을 가했다. 벨은 막스 베버의 말대로 근대자본주의는 노동을 소명으로 찬양하고 욕구충족을 지양하고 절약을 권하는 칼뱅주의와 초기 프로테스탄트 사상을 통해 가능해졌다고 본다.

하지만 시간이 경과하며 금욕적 요소, 즉 자본가적 행동의 도덕적 정당화 방식이 사라졌다. 즉 시간이 경과하며 물욕에 대한 충동이 승리해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가. 벨은 이에 답하기 위해 문화 영역에서 작동한 또 다른 대립적 충동에 주목한다. 벨은 이런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이 발생하는 과정을 자본주의의 경제적 충동과 근대성의 문화적 충동의 대립으로 설명한다. 서구의 이상은 자유를 성취하는 인간이었다. 이 ‘새로운 인간’에 의해 기존의 여러 제도가 거부되었다. 새로운 지리적ㆍ사회적 미개척 영역들이 열렸고, 또한 자연을 지배하고 옛 뿌리를 버림으로써 자신을 전적으로 개조하려는 욕망이 일어났다.

경제적 충동과 문화적 충동은 과거의 권위를 거부하는 데 연원했지만, 그 둘 사이에 적대적 관계가 급속히 진전되었다. 경제적 충동은 자유방임주의로써 ‘자유분방한 개인주의’로 발전한다. 문화적 충동은 교회와 군주의 후원자에게 벗어난 독자적인 예술가들이 자신을 만족시키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들은 ‘구속받지 않는 자아’(untrammeled self)라는 관념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부르주아 사회가 경제에서 자유분방한 개인주의를 용인했지만, 문화에서의 자아의 과잉을 억제하고자 했다. 도덕과 문화적 취향에서는 보수적이었던 것이다. 반면, ‘구속받지 않는 자아’는 반(反)부르주아적이 되었고, 그 운동의 일부 분파들은 정치적 급진주의와 동맹했다.

벨에 따르면, 문화의 이러한 반항적 충동의 구현체가 바로 모더니즘이다. 전통적인 모더니즘은 종교나 도덕을 대신해 삶을 심미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했다. 예술작품의 창조, 즉 예술작업만이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에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1960년대에 강력한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이 발전해 모더니즘의 논리를 그 극단으로 몰고 갔다. 벨은 자신이 현대 자본주의 속에서 파악한 모순들은 이처럼 한때 문화와 경제를 한데 묶어놓고 있던 실(프로테스탄트 윤리의 금욕주의)이 풀어진 것에서, 그리하여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가 되어온 쾌락주의에서 파생한다고 본다.

벨의 논리에 따르면,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부르주아 사회로부터 단절되었을 때 쾌락주의만이 남았고 자본주의 체계는 그것의 초월적 윤리를 상실했다. 이제는 쾌락주의가 자본주의를-도덕적으로는 아니지만-정당화하고 있다. 벨은 이 쾌락주의가 부르주아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철학적으로 정당화해준 것은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의 철학이었다. 벤담에게 공동체는 하나의 ‘허구’였고, 개인만이 사회의 단위였다. 사회의 복리는 그러한 쾌락주의적 계산의 총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관념상의 변화가 자동적으로 쾌락주의적 생활양식을 출현시킨 것은 아니다. 사회구조 자체의 변화가 쾌락주의를 촉진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청교도 기질은 노동, 절제, 검약, 금욕이었다. 미국에서 이는 농업적인 소도시의 상인과 장인들의 생활양식이었다. 그러나 대량소비 사회가 출현해 지출과 물질적 소유를 강조했고 전통적 자치체계(노동, 절제, 검약, 금욕)를 훼손했다. 그리고 ‘자유시장’은 이런 부르주아적 가치체계를 붕괴시켰다. 과거의 사치품은 계속 필수품으로 재정의되었고, 마케팅과 쾌락주의가 자본주의의 원동력이 되었다.

벨은 일상생활의 세속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정체에 주목한다. 벨이 볼 때, 현대 세계의 대부분의 경우에서 사회의 진정한 통제체계가 된 것은 시장이 아니라 정체다. 왜냐하면 부르주아 가치체계를 붕괴시킨 것이 바로 시장이기 때문이다. 정체는 개인적 목적을 증진시키기 위해 수립된 자유주의 사회에서 집합적 목적을 추구해야 하는 모순적 과제에 직면한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벨이 제시하는 개념이 바로 ‘공공가계’다. 벨에 의하면, 공공가계의 관념은 정체의 영역에서 사회를 하나로 결합시키는 것, 즉 사회적 시멘트를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좋은 재산 상태’가 아니라 ‘좋은 인간 상태’를 사회적 목적으로 삼는다.” 벨은 이를 위한 공공철학이 요청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벨이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듯이, 현실은 다르다. “현실의 욕구는 자신을 규제하고자 하는 공공철학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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