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정치’에서 ‘코스모폴리틱스’를 거쳐 ‘객체지향 정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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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정치’에서 ‘코스모폴리틱스’를 거쳐 ‘객체지향 정치’로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5.3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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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뤼노 라투르: 정치적인 것을 다시 회집하기 | 그레이엄 하먼 지음 | 김효진 옮김 | 갈무리 | 432쪽

사변적 실재론과 객체지향존재론의 주창자 그레이엄 하먼의 이 책은 진화하는 정치철학에 관한 선구적인 해설서이면서 객체지향 정치학을 발전시키려는 실험적 시도다. 이 책에 따르면 근대성의 정치철학은 정치가 전적으로 인간 행위자들의 영역에 속한다고 상정하고서 시민과 국민국가 사이의 권력관계를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근대성의 정치는, 무지에 대립하는 진리의 이미지에 기초해야 한다는 진리 정치 관념과 어떤 초월적 진실의 심급도 없는 권력투쟁 그 자체가 진리라는 권력 정치 관념 사이에서 동요해 왔다. 이 두 정치 관념의 공통점은 객체를 생략한다는 점이다. 21세기에는 권력에 맞서 진리를 말하자는 지젝과 바디우의 좌파적 진리 정치 관념이 1990년대의 정체성 정치나 사회구성주의적 자유주의의 권력 정치 관념을 대체해 왔다.

저자는 라투르의 사회 이론에 집중한 전통과 단절하고 오히려 초기 라투르의 홉스주의적 기반에서 시작한다. 게다가, 더 최근에 라투르가 월터 리프먼/존 듀이 논쟁에 고무되어 기울인 객체지향 정치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칼 슈미트에 대한 라투르의 지적 관여 활동도 살펴본다. 라투르는 근본적 무지에 대한 건강한 존중심 위에서 진리 정치 전통을 거부하고 홉스의 권력 정치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정치에 대한 사유를 시작하지만, 1991년 중기부터는 권력 정치도 진리 정치만큼 의심스럽다고 보면서 현재의 정치 집합체를 피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탐색하기 시작했고, 2014년 후기부터는 정치를 실재 전체와 동일시한 이전의 경향을 끝내고 정치를 여러 다른 양식들 중의 하나로 정의한다. 그 결과 라투르의 정치 개념은 개체들 사이의 포괄적인 권력 투쟁으로서의 정치에서, 취약한 의회 네트워크 구축으로서의 정치를 거쳐, 다수의 존재양식 중 하나의 존재양식일 따름인 것으로서의 정치라는 관념으로 진화한다. 이것이 진리 정치와 권력 정치를 넘어 사물정치, 객체정치를 탐구해온 라투르의 긴 정치철학적 여정이다.

최근에 그 실상이 극명히 드러난 대로, 기후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인류의 무능력은 서구의 근대성에 기반을 둔 국민국가 체제와 그 체제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 정치철학의 유효기간이 끝나버렸음을 시사한다. 주지하다시피, 서구의 근대성은 문화/자연, 사회/자연, 혹은 인간-주체/비인간-객체 사이의 구분이라는 이분법적 구상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런 근대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정치철학은 국경을 넘어서는 정치적 쟁점들, 특히 생태 문제, 전염병 문제, 이주 문제 등과 관련된 쟁점들을 다루는 데 필요한 이론과 해결책을 결코 제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들 정치철학은 정치가 전적으로 인간 행위자들의 영역에 속한다고 상정하고서 시민과 국민국가 사이의 권력관계를 분석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류를 실존적 위험에 처하게 한 정치적 쟁점들은 비인간 객체의 행위주체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는커녕 분석조차 되지 않는다.

라투르는 서구의 근대적 이항 구조에 바탕을 둔 세계상이 실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한낱 환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세계는 인간과 비인간이 동맹을 결성한 회집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줄곧 견지하고 있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이 ‘공동세계의 구축’이라면, 라투르에게 공동세계란 인간과 비인간의 공동세계(코스모스)이고, 따라서 ‘정치적인 것’은 비인간 객체들이 포함되도록 다시 회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라투르의 정치는 언제나 ‘코스모폴리틱스=코스모스+폴리틱스’이기에 라투르의 정치철학은 자연과 과학, 정치가 서로 관련된 방식을 재정립하고자 한다. 저자인 그레이엄 하먼에 따르면, 라투르 정치철학의 독특한 비근대성은 “인간의 결정이 어떤 유의미한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우리가 연루된 비인간 존재자들의 네트워크가 우리의 정치적 운명을 궁극적으로 결정한다”는 데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라투르는 정치가 인간을 중심으로 공전하지 않고 정치적 쟁점, 즉 정치적 객체를 중심으로 공중들을 공전하게 하는 ‘객체지향’ 정치(라투르는 이를 “급진적인 의미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일컫는다)를 내세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존재론과 정치철학의 관련성에 의거하여, 라투르의 사상적 단계를 세 단계로 구분하며 초기 라투르, 중기 라투르, 후기 라투르를 각각 대표하는 세 가지 저작, 즉 『프랑스의 파스퇴르화』, 『자연의 정치』, 『존재양식들에 관한 탐구』를 정치철학적 견지에서 주의 깊게 검토한다.

저자는 근대의 전통적인 좌익 정치 대 우익 정치 이분법을 진리(하익) 정치 대 권력(상익) 정치라는 두 번째 이원론과 결합함으로써 ‘네겹’의 근대적 정치 유형을 제시한다. 진리 정치는 “정치가 진리의 형상대로 구축되어야 한다는 관념”으로 특징지어지고, 권력 정치는 ‘힘이 곧 정의’이기에 옳고 그름의 초월적 기준이 없는 권력 투쟁으로 특징지어진다.

1991년까지 이어지는 ‘초기 라투르’는, 행위자들의 동맹 결성과 ‘힘겨루기’로 특징지어지는 존재론을 배경으로 하여, 진리 정치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힘이 곧 정의’라는 마키아벨리와 홉스의 권력 정치를 옹호한다. 그리하여 ‘초기 라투르’는, 정치에 있어서 초월적 원리에의 어떤 호소도 불신하는 한편으로 비인간 행위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1991~2007년에 해당하는 ‘중기 라투르’는 마키아벨리와 홉스의 ‘권력 정치’에 대한 이전의 승인을 재고하면서 “자신의 관심을 모두를 위한 공동 공간의 취약한 조성으로 이행한다.” ‘중기 라투르’에게 정치는 “인간들과 비인간들의 어떤 집합체를 하나의 공동세계”로 조성하는 것, 즉 ‘코스모폴리틱스’가 된다.

그 이후의 ‘후기 라투르’는, 실재 전체를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사태로 간주하는 이전의 견해를 수정함으로써 정치를 ‘쟁점’ 또는 ‘객체’를 다루는 일종의 ‘존재양식’으로 제시한다. 이제 정치는 여타 양식과 구분되는 독자적인 적실성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정치적 ‘진리’란 “집합체를 확대하는 데 성공하는 것”이고, 여기서 정치적 투쟁은 어떤 쟁점, 객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요컨대, 언제나 “정치적 권역에 생명 없는 존재자들을 추가하는” 라투르는 결국 ‘사물정치’를 거쳐 정치적 투쟁이 “외부의 자극물”(쟁점 또는 객체)에 의해 촉발되는 ‘객체지향’ 정치에 이르게 된다. 하먼에 따르면, “기후 정치의 시대가 이미 도래하였기에 라투르의 객체 정치는 ... 현대 정치철학 중 어느 것보다도 가이아로 가는 더 유망한 길임이 확실하다”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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