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 치하에서 가장 번성한 실크로드, 그 길을 일군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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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제국 치하에서 가장 번성한 실크로드, 그 길을 일군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5.3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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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 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 장군, 상인, 지식인 | 미할 비란·요나탄 브락·프란체스카 피아셰티·플로렌스 호두스·사라 누르 이을드즈 저 외 13명 | 책과함께 | 520쪽

13∼14세기에 칭기스 칸과 그의 후손들은 땅덩이가 끊어지지 않은 것으로는 인류사에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다. 동서로는 한반도에서 헝가리까지, 남북으로는 이라크·티베트·미얀마에서 시베리아까지 뻗쳐 있었다. 구세계의 대략 3분의 2를 지배했던 몽골 제국은 사람과 사상과 물품 들을 지리적·문화적으로 상당히 먼 지역으로 전파할 수 있게 했다.

실크로드는 13~14세기 몽골 제국 시대에 가장 번성했다. 몽골 제국의 성립은 유라시아 대륙에 광대한 안전지대를 창출했고, 이는 물품ㆍ사람ㆍ사상의 교류를 크게 확대시켰다. 그 결과 세계는 (특히 유럽은) 중대한 지적ㆍ상업적 변화와 발전을 경험하게 되었고, 이는 (유럽 중심의) 근대 세계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팍스 몽골리카 시대(13∼14세기) 실크로드 세계에서 물품, 사람, 학문·사상의 교류를 개척·확대한 인물들의 일대기다. 세 주요 집단인 장군(6인), 상인(4인), 지식인(5인) 별로 모은 각각의 전기들은 몽골 유라시아의 흥미로운 모습을 끄집어내어,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변화한 이 시기에 관해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즉, 그들의 개인적 경험은 몽골 치하 유라시아 대륙에서의 문화 간 접촉과 물리적ㆍ사회적 유동성의 양상을 밝혀준다. 

장군들은 몽골 제국의 건설과 팽창에서 직접적이면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들은 군사 원정을 이끄는 책무를 띠고 출정해 흔히 자기네의 작전에서, 그리고 나중에 담당 지역 통치에서 상당한 재량권을 행사했다. 군 지휘관들은 그들의 군사적 능력만이 아니라 칭기스 왕조에 대한 불굴의 충성심 때문에도 귀중하게 여겨졌다. 그들의 충성심은 친위대인 케식의 발탁을 통해(그곳에서 장래의 장군들은 장래의 황제들과 함께 훈련받는 경우가 흔했다), 황실과의 혼인을 통해 확보됐다. 군대는 사회 이동성 및 통합과 함께, 유라시아 대륙 각지의 개인과 집단과 기술을 동원하는 촉매제이자 통로였다.

몽골인인 바이주(제2장)와 몽골에 항복한 한족 장수의 후예인 곽간(제1장)은 몽골의 서아시아 정복 전쟁에서 활약했다. 이들의 이력을 통해서 몽골사 가운데 서아시아 정복 과정의 일부를 살펴볼 수 있다. 사이프 앗딘 킵착(제5장)의 무대 역시 서아시아였다. 몽골계 일 칸국과 그 적국인 맘룩 술탄국 사이를 왔다 갔다 한 특이한 이력이 있다. 또 다른 한인 장수 양정벽(제4장)은 중국에서 동남아시아와 인도 쪽으로 가는 해상 무역로 개척을 위한 외교 전선에서 활약했다. ‘색목인’(킵착인) 툭투카(제6장)는 황제의 친위대 지휘관으로서 칭기스 칸 후예들 사이의 권력 다툼에서 특정 세력을 위해 싸웠고, 그 자손들은 더욱 궁정 투쟁에 개입해 활동했다. 이들의 이력은 몽골 정치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원서

상인들은 지역 내, 지역 간, 대륙 규모의 여행로 및 교역로를 연결한 주체다. 유라시아 대륙의 지형, 언어, 회계 방식에 대한 상인들의 지식은 칭기스 칸의 시대 이후로 그들이 제국의 대리인으로서 특히 유용한 존재가 될 수 있게 했다.

바그다드를 본거지로 해서 인도와 중국에 이르는 거대한 해상 무역 네트워크를 건설했던 앗티비 가문의 자말 앗딘(제9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일 칸국 지배자들과 손을 잡고 진주와 말의 장거리 무역 사업을 벌였으며, 그 동생은 남인도 한 왕국의 신하로 들어가 이 무역 사업을 번창하게 하는 데 한몫했다. 몽골에 보낸 사절인 보두앵 드 에노(제8장)는 흑해 무역로 개척의 선구가 됐다. 아라비아 출신의 상인 자파르 화자(제7장)는 상업적 혜택을 노리고 칭기스 칸의 초기 정복 사업에 동참했다가 아예 몽골의 행정 관료가 된 경우다.

지식인들, 특히 의약, 천문, 역사, 언어 등 몽골인들의 문화적 기호에 맞는 분야의 전문가들이 흔히 제국의 민간 행정 분야에 발탁됐다.
일 칸국의 대신이자 역사가인 라시드 앗딘(제11장)은 그의 저작 활동으로 동방과 서방 사이 상호 이해에 기여한 부분이 조명된다. 부맹질(제12장)이라는 중국인은 일 칸국의 건설자 훌레구를 따라 이란으로 가서 중국의 학문, 특히 천문학을 서방에 소개한 점을 중심으로 다루어진다. 캅카스 지역 출신으로 몽골 궁정의 통역 겸 이슬람 천문학·의학 전문가였던 이사 켈레메치(제13장)는 중국에서 일 칸국과 로마 교황청으로 가는 사절로 활약했다. 중앙아시아 출신의 알아하위(제15장)는 25년에 걸친 여행 끝에 이슬람교의 본향인 메디나에 정착해 이슬람 학자로서 일생을 보냈다.

중세 몽골 사회가 가부장적이고 부계적이긴 했지만, 그 엘리트층의 여성들은 사회 최상층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장군, 상인, 지식인 세 부류에는 여성도 한 명씩 들어 있다. 일 칸국 지방 정권 군주의 딸로 일 칸국 황후가 되는 파드샤흐(제14장)는 활발한 정치 참여와 문화·종교 후원의 행적을 보여주고, 금장 칸국 황후 타이둘라(제10장)는 기독교 세력의 후원자를 자임하며 상업 활동에도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몽골 세계에서 여성이 정치·경제·문화 측면에서 남성에 못지않은 힘을 부여받고 실제로 활동했음을 예시해준다. 군사 부문에서는 칭기스 칸의 고손녀인 ‘전사 공주’ 쿠툴룬(제3장)이 독자적으로 부대를 이끌며 남성과 대등한 활약을 했다. 자신과 ‘힘’으로 맞붙어 이기는 남자와 혼인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던 쿠툴룬이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모델이었을 가능성도 논의된다. 이처럼 몽골 제국 시기에 여성들도 제국의 군사 및 대외 정복 활동에, 종교적·문화적·지적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고 관여한 사실을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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