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는 어떻게 만들어져서 우리에게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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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孝)는 어떻게 만들어져서 우리에게 왔는가?
  • 김진우 경북대학교·사학
  • 승인 2021.05.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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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동아시아 고대 효의 탄생: 효의 문명화 과정』 (김진우 지음, 평사리, 320쪽, 2021.04)

2021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효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진부한 전통 윤리로 화석화된 과거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어떠한 시대 변화에도 보편적인 도덕으로서 존재하는 것인가? 아무래도 근대 이래로 전통적인 효의 가치는 퇴색되어 갔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효는 한국인의 심성 구조에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효의 가치체계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지고, 결국 우리 내면에 각인되어 가는 긴 여정을 거꾸로 더듬어 가려는 시도이다. 특히 효가 중국 고대 전제 군주 권력의 이념형[Ideology]으로 확립되는 데 주목해서, 이를 장기적인 역사 과정 속에서 확인하는 방법으로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의 문명화 과정이라는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 

엘리아스에 따르면 사회 속 개인은 상호 의존적인 사회적 결합태에 구속되면서 인간의 동물적 본성 즉 야만을 억제하는 각종 일상 의례를 통해 내면의 통제를 자율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는 일상의 장기적이고 특수한 변화인 문명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엘리아스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유럽중심주의나 문화제국주의라는 비판도 있고 분석하는 자료의 해석에서 오독의 여지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특정 문명의 고유한 양식과 집단 심성이 장기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에는 나름 유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 

엘리아스가 묘사한 유럽 중세에서 근대로의 문명화 과정과 비교해서, 서주이래 진한제국까지 중국 고대의 역사적 전개도 일상 의례의 확립을 통해 개인의 내면이 자율적으로 통제된다는 의미에서 문명화 과정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볼 만하다. 특히 효는 정치권력의 중앙집권화와 그 아래 상호 의존적인 사회적 결합태의 분화라는 역사적 변화상에 조응하는 중국 고대의 가장 대표적인 자율적인 내면 통제의 가치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엘리아스의 문명화 과정 개념을 중국 고대의 효에 적용하면서, 더 나아가 효가 그 가치체계를 갖추어가는 역사적인 탄생의 과정에 사상화-법제화-제도화-이념화-사회화-종교화라는 각각의 단계를 설정하여 그 전후의 역사적 맥락에 조응하는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다. 이는 인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면서도 추상적이고 모호해서 실체화하기 어려운 사상·관념·이념·심성 등을 역사적으로 유형화해서 이해하고자 하는 나름의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은 먼저 선사 이래 부계 혈연집단의 형성과 조상숭배의 원시종교에서 효의 기원을 찾고, 효(孝)자의 글자 모양을 분석하여 살아있는 부모에 대한 ‘봉양’과 죽은 부모에 대한 ‘제사’의 의미로 효의 본뜻을 확인한다. 다만, 효 관념에 선행해서 부모와 자식 간 친애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어서 상주 시기 효 관념의 형성을 살펴보는데, 상대 갑골문에 효라는 글자는 존재했지만 아직 효 관념이 형성되기에는 역사적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보았다. 기원적으로 효 관념의 성립은 서주 시기 종족질서의 형성과 맞물려 있으며, 특히 서주의 효 관념은 주나라 왕에 대한 충성의 표시에 다름 아니었다. 즉 효는 그 기원에서부터 정치적 복종의 수사였던 것이다. 주나라 왕과 자기가 속한 종족의 수장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의 수사로서 형성되었던 효 관념은 서주 멸망 이래 춘추 시기 종족 질서의 변화와 맞물려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가 바로 공자였다. 공자는 효를 궁극적 목표인 인의 실천 윤리이자 수양의 출발점으로 강조했고, 이후 증자·맹자·순자 등 선진(先秦) 유가들은 체계적이고 추상적인 사상화의 틀을 갖추어가는데 결국 효의 정치사상으로까지 나아간다. 

유가 외에 묵가·법가 등 다른 제자들도 나름의 효에 관한 언설들을 제시했는데, 대개 부모와 자식 간 친애의 감정을 인정하면서도 유가처럼 효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특히 한비자 등 법가 계열은 군주 권력의 기반이 되는 향촌 공동체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살아있는 부모에 대한 순종과 봉양이라는 효의 기능적인 역할만을 긍정했다.  

養老圖(한대 성도 曾家包 漢墓 석각)

이러한 법가류의 기능적인 효는 진에서 한초 시기 국가권력의 틀 내로 법제화되고 제도화된다. 이 시기 효의 법제화는 부모가 자식을 불효로 고소하면 국가가 사형이라는 엄중한 형벌로 처벌하는 ‘부모고자불효(父母告子不孝)’라는 율령 조문이 핵심이었다. ‘부모고자불효’는 자식이 부모의 교령(敎令)에 순종하지 않거나 부모를 봉양하지 않을 때 부모의 고소로 죄가 성립되는 조문이었다. 기능적인 효의 역할만을 긍정했던 전형적인 법가류의 효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진·한초 시기 효의 제도화도 법가의 기능적 효가 제도적으로 실현된 것이었다. 특히 진시황이 시호를 폐지한 것이나 한제국이 다시 시호를 부활하여 황제 시호 앞에 효자를 덧붙인 것은 서로 상반된 제도로 인식되어 왔지만, 법가류의 효인식에서 본다면 양자는 모두 순종이라는 효의 기능적 역할에 충실한 동질적인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진·한초의 삼로·효제 등 향관(鄕官) 설치나 양로 정책 등은 모두 법가류의 효가 구현된 결과였고 아직은 효가 국가통치의 대강으로 이념화되어서 반영된 것은 아니었다. 

이에 비해 효의 이념화는 한 무제 유술독존(儒術獨尊) 이후의 상황이다. 즉 한제국의 통치이념인 ‘이효치천하(以孝治天下)’는 한 무제 말에서 소·선제 시기, 제국이 확장의 시대에서 수성의 시대로 접어드는 특정한 시대 맥락에 조응해서 표방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효의 이념화는 무제 말 최종 성립하는 효경을 통해 구현된다. 효경은 왕조의 영속을 추구하는 강력한 이념적 도구로, 무제 말부터 황실에서 기층사회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전면적으로 교육·보급된다. 그 결과 국가로부터 이념화된 효가 사회 전반에 각인되면서, 제 질서를 규율하고 일상의 모든 삶을 지배하는 효의 사회화가 전한 중후기 전면적으로 진행된다. 또 더 나아가 심지어 효를 신비화하고 주술적 효과까지 기대하는 종교화가 진전되기에 이른다. 

이처럼 효는 중국 고대 각 시기의 역사적 맥락에 부합해서 각각 사상화-법제화-제도화-이념화-사회화-종교화의 단계를 거쳤는데, 그 결과 최종적이면서 종합적인 효의 문명화의 완성태는 이른바 후한 예교사회의 성립일 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모든 삶을 지배하는 문명화된 효는 결국 그 핵심 가치인 효의 본 모습에서 벗어나는 허례·허위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이에 현학·도교·불교 등 새로운 사조의 유행과 맞물려 문명화된 효에도 일정한 균열이 생기게 된다. 위진남북조 시기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문명화된 효가 유지되고 있었지만, 효의 이념성은 현저히 약화되었고,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문벌 사족의 이해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효의 강조점은 변하게 된다. 아울러 위진 이래로 확산되던 외래 종교 불교는 그 교리가 전통적인 효에 위배된다는 격렬한 공격을 받았지만, 이를 변호하기 위해 나름 중국의 효와 불교 교리를 접목하는 과정이 있었다. 불교의 효는 어머니 쪽의 은혜와 불사(佛事)를 통한 사후 부모와 조상의 구원을 강조해서 효와 종교적 구원이 결합하는 특징이 있었다.   

중국 고대 효의 문명화 과정은 상층 국가권력에서 기층 사회로 내려가는 수직적인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공간적으로 효는 문명화 과정의 중심에서 수평적으로 확산되면서, 각 지역별로 다양한 변주가 만들어지는 또 다른 방향성도 존재했다. 이러한 수평적 확산의 한 방향으로 중국 고대의 문명화된 효는 삼국시대 한반도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이후 전통시대 한국에서의 또 다른 효의 문명화 과정을 통해 효는 오늘날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 책에 이어서 저자는 한국에서의 효의 문명화 과정을 다루는 후속작을 준비할 계획이다.  


김진우 경북대학교·사학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방문학자, 고려대학교 사학과 BK21 연구교수, 한국국학진흥원 전임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연구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중국의 지역문명 만들기와 역사 고고학자료 이용사례 분석』(공저), 『천성령 역주』(공역) 등이 있고, 논문은 「잊혀진 기억, 사라진 역사들, 그리고 각인된 하나의 역사」, 「진한대 주언문서(奏?文書)의 피고 진술을 통해 본 기층사회의 실상」, 「진한시기 호적류(戶籍類) 공문서의 운용과 그 실태」, 「진한률(秦漢律)의 ‘불효’에 대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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