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말과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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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말과 사물〉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5.3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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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제 46강>_ 김상환 서울대학교 교수의 「푸코 <말과 사물>」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일곱 번째 시리즈 ‘문화정전’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문화 양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 전통, 사회적 관습으로 진화하며 인류 지성사의 저서인 '고전'을 남겼다. 이들 고전적 저술 가운데, 인간적 수련에 핵심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저술을 문화 정전(正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52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가 쌓아온 지적 자산인 동서양의 ‘문화 정전(正典)’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6. 서양 근대 문명과 그 세계적 영향’ 제 46강 김상환 교수(서울대 철학과)의 강연 중 서론부를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푸코 <말과 사물>

김상환 교수는 “근대성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즉 “지식의 근대성, 사유의 근대성, 문화의 근대성을 밝히고 그 종언을 예고하는 책”으로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세 시기 가운데 ‘지식의 고고학’ 시대를 대표하는 저작인 『말과 사물』을 상세히 소개한다. 아주 간략히 『말과 사물』이 다루고 있는 내용만을 요약한다면, 전반부는 르네상스 시기와 고전주의 시기에 “초점을 두고 거기서 펼쳐지는 학문적 지형을 탐사”하고 있는 반면에 후반부 전체는 “근대의 학문적 지형과 그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규명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 가운데서 “특히 이 책의 마지막 두 장”, 9장과 10장은 “20세기의 그 어떤 철학적 고전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높고 눈부신 성취를 담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거기서 칸트 이후 사상사의 근본 문제와 내적인 논리, 그리고 그 논리에 따른 운명을 읽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달리 이야기해 “푸코의 지식 이론이 칸트의 인식론과 많이 닮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인데, 『말과 사물』이라는 책이 “근대적 에피스테메의 특징을 칸트가 철학의 근본 물음으로 설정했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것과 동시에 “현대 사상사의 근본 과제를 바로 그런 인간학적 물음에서 벗어나는 데에서” 찾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진] 지난 5월 1일, 김상환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46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들어가는 말 

『말과 사물』(1966)은 푸코(1926~1984)의 출세작이다. 푸코는 이 작품과 더불어 단숨에 프랑스 지성계의 기린아로 부상했다. 도대체 이 책을 푸코의 사상 전체, 나아가 20세기 후반기 유럽 철학 전체를 대변하는 저작으로 꼽을 만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일반적으로 공유된 관점에서 말하자면, 사상사 연구 분야에서 전혀 새로운 시각을 도입했다는 데 이 책의 고전적 의미가 있다. 푸코는 자신의 역사 방법론을 지식의 고고학이라 부른다. 푸코의 고고학은 기존의 사상사를 ‘표면 효과’로 바라볼 수 있는 심층적 평면을 열어놓았다. 

여기에 덧붙여 푸코의 고고학은 독창적인 역사 이미지를 구축했다. 과거에 대한 통념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마저 바꾸어 놓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푸코의 저작은 헤겔에서 사르트르 그리고 구조주의에 이르는 역사관에 작별을 고했다. 무엇보다 근대성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말과 사물』은 지식의 근대성, 사유의 근대성, 문화의 근대성을 밝히고 그 종언을 예고하는 책이다. 지난 세기말 20년 이상 지속된 탈근대 논쟁과 포스트모더니즘 열풍을 유발한 기폭제는 그 종언의 예고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두 장(9~10장)은 20세기의 그 어떤 철학적 고전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높고 눈부신 성취를 담고 있다. 우리는 거기서 칸트 이후 사상사의 근본 문제와 내적인 논리, 그리고 그 논리에 따른 운명을 읽을 수 있다. 

푸코의 세 시기

푸코의 학문적 생애는 예비기를 거쳐 크게 세 번의 주기를 거쳐간다. 예비기는 교수 자격시험 통과(1951) 이후 박사 학위 논문 『광기의 역사』(1961)를 출간하기에 이르는 기간이다. 이후 첫 번째 주기는 『광기의 역사』에서 『지식의 고고학』(1969)에 이르는 고고학의 시기다. 두 번째 시기는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취임(1970) 이후 10여 년간 지속되는 계보학의 시기다. 세 번째 시기는 1980년 전후부터 시작된 윤리학의 시기다. 이상 세 시기의 여정은 아래와 같이 간략히 정리해볼 수 있다. 

a/ 고고학의 탐구 대상은 지식, 정확히 말해서 근대 학문과 사상이다. 지식의 고고학은 기존의 사상사나 과학사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방법론을 제시하여 주목을 받았다. 근대 지식의 구조적 특징과 역사적 변화 과정을 재구성하는 방식이 기존의 어떠한 역사책과도 닮지 않았다. 근대 학문의 다양한 영역을 종횡무진하는 박식함, 기존의 논쟁 구도를 무효화 해버리는 철학적 통찰력, 전통적인 역사관과 작별하고 새로운 역사 이미지를 구축하는 참신성이 돋보인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말과 사물』(1966) 외에도 『임상의학의 탄생』(1962)과 『지식의 고고학』(1969)이 있다. 

b/ 계보학의 탐구 대상은 근대 권력이다. 권력의 계보학은 기존의 권력 개념과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권력 개념을 제시했다. 즉 근대 권력은 폭력적이거나 억압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산적이고 조형적이다. 어디에나 편재하되 누군가 소유하거나 어딘가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근대 권력은 보고 말하기의 차원 배후에서 작동하는 미시물리학적 전략이다. 푸코는 근대 인간 관련 학문의 유래가 이런 근대 권력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감시와 처벌』(1975), 그리고 성의 역사 1권인 『지식의 의지』(1976)가 있다. 

c/ 푸코 윤리학의 탐구 대상은 개인이 자기 자신을 자유로운 주체를 만들어 가는 문제에 있다. 그 출발점은 그리스적 통치 개념에 포함된 자기 통치 혹은 자기 돌봄의 계기다. 역사 속에 파묻힌 ‘비열한 인간(l’homme infâme)’을 옹호하고 권력에 저항할 가능성을 찾는 문제도 푸코의 윤리적 전회를 가져온 중요한 계기를 이룬다. 고고학과 계보학이 근대의 문턱(특히 1800년 전후에 일어난 단절)에 초점을 둔다면, 윤리학은 고대에 초점을 맞춘다.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에서 기원후 4세기 로마에 이르는 시기까지가 연구 범위다. 이 시기의 대표작은 성의 역사 2~3권에 해당하는 『쾌락의 활용』(1984)과 『자기 돌봄』(1984), 그리고 사후에 출간된 강의록 『주체의 해석학』(2001) 같은 것이 있다. 

푸코의 지식 개념 

『말과 사물』은 지식의 고고학을 대표하는 저작이다. 그렇다면 ‘지식의 고고학’이라 할 때 ‘지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문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다. 푸코는 우리말로 모두 앎이라 옮길 수 있는 두 용어 savoir와 connaissance를 엄격히 구별한다. 국내 푸코 번역자들은 전자를 지식으로, 후자를 인식으로 옮기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a/ 인식(connaisance)은 분과 학문에서 생산된 실증적인 앎을 가리킨다. 그러나 지식(savoir)은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거칠게 말해서 그것은 특정 시대의 분과 학문 사이에 공통된 인지적 태도나 그에 상응하는 앎을 가리킨다. 

b/ 푸코 지식 개념의 두 번째 특징은 그것이 보기와 말하기의 결합체라는 데 있다. 이때 본다는 것은 넓게는 빛의 차원으로, 좁게는 구체적인 사물로 이어진다. 반면 말한다는 것은 넓게는 로고스 일반으로, 좁게는 구체적인 언표로 이어진다. 책의 제목을 장식하는 두 용어 ‘말과 사물’은 지식을 구성하는 두 요소를 가리킨다. 푸코가 이 저작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시대에 따라 지식 개념이 달라지는 모습인데, 그것은 곧 말과 사물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달라지는 모습이다. 

『말과 사물』의 핵심 논제: 근대적 인간의 등장과 소멸 

이 책은 인간의 종언을 예언하는 충격적인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핵심 논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유의 고고학이 분명히 보여주듯이 인간은 최근의 시대에 발견된 형상이다. 그리고 아마 종말이 가까운 발견물일 것이다. (…) 인간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려 놓은 얼굴처럼 사라질지 모른다.”(MC 526) 

『말과 사물』에 등장하는 주제와 이론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의 고고학적 서사가 그토록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초점을 맞추는 궁극의 주인공은 인간이다.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근대적 지식 세계의 핵심에 위치하는 인간이고, 그런 의미에서 근대적 인간이다. 근대적 인간은 어떻게 역사 속에 등장하고 다시 사라질 예정인가? 이것이 이 책에서 푸코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물음이다. 이것은 당연히 근대성의 기원과 미래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종언을 예언하는 푸코의 문장은 지난 세기말에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탈근대 사상이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하는 것은 그런 논쟁을 도화선으로 작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종언이 예언되는 근대적 인간은 말하는 인간도, 노동하는 인간도, 생명체로서 살아가는 인간도 아니다. 그것은 정확히 지식의 발생과 가능 조건을 묻고 그 답을 자기 자신 안에서 찾는 인간이다. 칸트적인 의미의 초월론적 주체가 그런 인간에 해당한다. 『말과 사물』에서 칸트의 비판 철학은 근대의 에피스테메로 넘어가는 문턱을 대변한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의 에피스테메는 1800년 전후 형성되기 시작했다. 거기서 인간은 중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인간은 유럽의 지식 세계에서 처음으로 특권적인 지위를 부여받았다. 칸트 같은 철학자가 구축한 근대적 인간의 형상은 언어의 파도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생긴 해변에 누군가 그려 놓은 얼굴과 같다. 그러나 짧았던 근대의 태양이 어느덧 저물어 가고 있다. 그리고 황혼빛 노을과 더불어 언어의 파도가 다시 밀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밀물과 더불어 모래사장에 그려져 있던 인간의 형상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근대적 지식 세계 전체가 과거의 시간 속에 잠길 것이다. 

근대성의 종언은 이미 헤겔, 니체, 하이데거의 역사철학을 통해 주제화된 바 있다. 그러나 푸코는 관념적인 사변의 차원을 떠나 실증적인 지식의 차원에서 근대성의 본성과 한계를 세밀하게 파헤쳤다.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는 근대적 에피스테메의 내적 구조와 조건을 다양한 인간 관련 학문에 대한 방대한 분석을 통해 밝힌 것이다. 본격적인 탈근대 논쟁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말과 사물』의 중요한 논점은 근대의 지식 세계가 언제 어떻게 끝나는가의 문제 못지않게 그것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의 문제에 있다. 

근대의 지식 세계는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가? 근대성의 문턱과 탈근대의 문턱, 이것이 핵심 물음이다. 푸코는 인간의 등장과 소멸을 가리키며 그 주요 물음에 답한다. 그러나 인간이 근대 학문과 더불어 한두 세기 존속했다 사라질 형상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미리 밝혀두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근대 이전의 지식 세계에는 인간이 부재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때의 인간은 자신의 지식의 가능 조건을 묻고, 그것을 자기 자신 안에서 인간, 다시 말해서 표상을 표상하는 인간이다. 

『말과 사물』의 부제: ‘인간 과학의 고고학’ 

『말과 사물』은 그 도입부가 암시하는 것처럼 인간이 왕의 자리를 차지하는 근대의 에피스테메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인간은 말하고 일하면서 살아가는 동물이다. 언어, 노동, 생명이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근본 범주다. 푸코가 탐사하는 학문은 이 세 범주와 관련된 학문이다. 언어와 문학에 관련된 학문, 노동과 경제적 활동에 관련된 학문, 육체적 생명뿐만 아니라 사회적 삶과 심리적 삶에 관한 학문을 망라한다. 

이렇게 다종다양한 학문을 굵직굵직하게 묶는 범주도 여럿이다. 처음에 그것은 ‘경험과학’이란 범주로 묶인다. 여기에는 생물학, 경제학, 문헌학(역사언어학)이 속한다. 그다음에 등장하는 것은 ‘인간 과학(sciences humaines)’이다. 여기에는 심리학, 사회학, 문학비평이 속한다. 그다음에 등장하는 것은 구조주의다. 정신분석(라캉), 인류학(레비스트로스), 언어학(소쉬르)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 외에도 칸트 이래 메를로퐁티에 이르는 근대 철학의 기본 갈래와 성격에 대한 분석이 추가된다. 

『말과 사물』은 이런 복잡한 학문적 지형의 탐사다. 그런데 그 복잡한 지형에서 우리가 일단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인간 과학(심리학, 사회학, 문학비평)이다. 사실 『말과 사물』의 부제가 바로 ‘인간 과학의 고고학’이다. 푸코는 왜 근대의 다종다양한 학문 중에서 굳이 인간 과학을 표제어로 끌어올렸을까? 이것은 그의 저작 전체의 서사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물음이다. 일차적으로는 근대의 학문적 지형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결정적인 중요성을 부각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한마디로 그것은 근대 에피스테메에서 인간의 지위가 절정에 이르는 지점이자 곧 몰락이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몰락은 구조주의와 더불어 완성된다. 인간 과학이 구조주의 시대에 들어서 근대 철학과 경험과학을 종합 및 완성하지만, 근대 지식 세계를 구조화하는 중심에서 인간이 사라지면서 에피스테메 자체의 변동이 일어난다는 것이 푸코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그것은 인간 과학이 칸트가 서막을 연 초월론적 계획을 자체 내에 흡수하여 철학과 경쟁한다는 데 있다. 실증 학문의 영역에서 철학의 근본 문제(유한성 분석)를 풀어가고, 급기야 구조주의에 이르러 철학을 완전히 능가한다는 것이다. 

사실 푸코가 처음 생각했던 『말과 사물』의 부제는 ‘구조주의의 고고학’이었다고 한다. 푸코의 의중에는 당대에 한창이던 구조주의의 역사적 위상과 인식론적 지위를 자리매김하려는 의도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말과 사물』의 마지막 부분은 라캉의 정신분석,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소쉬르의 언어학이 지닌 위력과 특권적인 위상, 그리고 거기에 감추어진 문화적 편향성을 서술하는 데 받쳐진다. 구조주의에 의해 근대 지식 세계의 근본 문제가 해결되는 동시에 탈근대의 문턱이 그려지기 시작했음을 부연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부제가 최종적으로 ‘인간 과학의 고고학’으로 바뀐 이유는 어디 있을까? 

아마 원래의 부제가 『말과 사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내용은 대부분 르네상스 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인간 관련 학문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점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표제어로서 가장 적합한 것이 ‘인간 과학’일 것이다. 그 외에도 인간 과학이 지닌 독특한 특징도 한몫했을 것이다. 인간 과학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인간 과학은 근대의 에피스테메를 구조화하는 세 축 전체와 관계한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이때 세 축이란 철학(칸트의 비판철학과 그 이후), 수리과학(논리학과 형식과학), 경험과학(생물학, 경제학, 문헌학)이다. 근대의 온갖 인간 관련 학문은 이 세 축 사이의 어딘가에서 성립한다. 가령 철학은 한편으로는 수리과학을, 다른 한편으로는 경험과학을 파트너로 해서 변화를 꾀한다. 수리과학은 경험과학에 방법론적 엄밀성을 제공한다. 그런데 인간 과학은 어떤 두 변 사이가 아니라 세 변 사이, 그 사이의 입체적 공간에서 성립한다. 거기에는 철학, 수리과학, 경험과학이 모두 들어와 있다. 이 점에서 인간 과학은 근대 지식의 종합이되 과학의 규범을 벗어난 ‘유사-과학’ 혹은 ‘하위-과학’이다. 

인간 과학의 두 번째 특징은 칸트와 그 이후의 철학이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핵심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한다는 데 있다. 어떤 문제인가? 유한한 인간 존재의 두 측면을 통합적으로 설명하는 문제다. 인간은 경험과학에 의해 탐구되는 대상이다. 과학이 그 비밀을 밝히는 생명, 노동, 언어는 인간의 유한성을 구성하는 실증적 요소다. 그러나 인간은 그 실증적 요소에 대한 설명의 원리를 자기 안에 지닌 반성의 주체이기도 하다. 인간이 자신의 내면에서 체험하는 언어, 생산력(욕망과 노동), 생명은 세상 만물을 설명하는 선험적 요소이기도 하다. 인간은 대상으로서의 경험적 측면과 주체로서의 선험적 측면을 동시에 지닌 이중적인 존재다. 그렇다면 인간 존재의 두 측면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푸코에 따르면 칸트와 그 이후의 철학은 근대적 인간의 이런 두 측면을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반면 그 문제의 해결 기미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인간 과학이 등장할 때다. 그리고 인간 과학이 구조주의 시대에 이르러 정신분석, 인류학, 언어학으로 변형될 때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다. 그러나 그 해결과 더불어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다. 그것은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이제까지 학문적 지형의 중심에 있던 인간이 그 주변으로 밀려 나가는 사건이다. 이것이 인간 과학의 세 번째 특징이 있다. 구조주의와 더불어 근대적 인간의 형상은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드러내는 동시에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때는 이미 근대가 저물어 가는 시기가 되었다. 

리쾨르는 구조주의를 ‘주체 없는 칸트주의’라 했다. 푸코의 구조주의 인식도 이와 거의 유사하다. 『말과 사물』에서 근대 철학과 인간 관련 학문(경험과학, 인간 과학, 구조주의)은 모두 칸트의 인간관을 공유한다. 게다가 칸트의 인간학적 계획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끌고 간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이런 점에서 이것들은 모두 칸트의 그늘 밑에 있다. 그러나 그 계획의 마지막에 오는 구조주의에 이르러 초월론적 주체로서의 인간은 지식 세계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주체 없는 칸트주의의 시대가 온 것이다. 

세 시기의 에피스테메 

『말과 사물』 후반부 전체는 이상과 같이 근대의 학문적 지형과 그 안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를 규명하는 데 바쳐진다. 반면 전반부는 그 이전의 두 시기에 초점을 두고 거기서 펼쳐지는 학문적 지형을 탐사한다. 두 시기란 르네상스 시대(16세기~17세기 초)와 고전주의 시대(17세기 중엽~18세기 중엽)를 말한다. 분량을 보자면, 르네상스 시대에는 한 장(2장)이, 고전주의 시대에는 네 장(3~6장)이 각각 할애되어 있다. 

이는 『말과 사물』 전반부의 목표가 주로 고전주의 시대의 학문적 지형을 서술하는 데 있음을 암시한다. 사실 푸코는 후반부에서 근대의 에피스테메를 주로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와 비교하면서 서술해간다. 특히 1800년 전후 일어난 학문 역사의 단절을 밝히는 것이 이번 저작의 주요 과제에 속하므로 당연히 고전주의적 에피스테메를 비중 있게 다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르네상스적 에피스테메에 관한 서술은 고전주의적 에피스테메의 특징을 비교적인 관점에서 부각하기 위한 포석일 것이다. 

『말과 사물』이 다루는 세 시기 전체를 고려하여 이 책의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지식은 유사성 중심의 질서이고, 고전주의 시대의 지식은 표상 중심의 질서이며, 근대의 지식은 인간 중심의 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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