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나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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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나의 자존심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1.05.2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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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 (52)_ 이름은 나의 자존심

 

앞서 태국 북부 산악지대나 라오스, 베트남, 미얀마, 중국 남서부 운남성, 귀주성 일대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아카족의 특이한 전통 중 하나를 소개하였다. 족보 암송이 그것이다. 아카족도 여러 하위 집단으로 이루어졌는데, 길을 가다 동족으로 보이는 남자를 만나면 서로 마주보고 조상의 이름을 첫 대부터 순차적으로 암송하기 시작한다. “스미오, 오뗄레, 뗄레즘, 즘모예, 모에차, 차띠씨, 띠씨라, …….” 이렇게 어려서부터 외우고 있는 선조들의 이름을 말하다보면 어디선가 달라지는 이름이 나온다. 그러면 둘 사이의 관계를 알 수 있게 된다. 

우리도 같은 성의 사람을 만나면 본을 묻고, 항렬을 따진다. 그래서 나이와는 다른 차원에서 위아래가 정해지며 자연스레 말투도 달라지는 경우를 흔히 본다. 유교 전통의 한국 사회에서는 특히 남자들 간에 이런 서열 정하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나이 어린 할아버지뻘 꼬마에게 공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월 따라 풍습도 달라진다. 

조선 시대만 해도 귀족들은 대개 외자 이름을 써서 신분을 과시하기도 했다. 왕족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신왕조를 개창한 조선 태조와 그의 아들들은 두 글자 이름이었으나 그 아랫대부터는 외자 이름을 썼다. 세종은 도(祹), 그의 형인 양녕대군은 제(禔), 효령대군은 보(補), 광해군은 혼(琿), 숙종은 순(焞)이다. 고종의 아명은 명복(命福), 초명은 재황(載晃), 임금이 된 후에는 희(㷩)로 개명하였다. 우리가 잘 아는 조선조의 인물로는 퇴계 이황, 율곡 이이, 권율 장군, 남이 장군, 원균, 황희 정승 등이 있다. 

자신의 위상을 드높이려는 의도 외에 이름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도 쓰였다. 그래서 전투에 임하는 장수는 상대편 장수를 향해 자신의 가계를 당당히 밝혔다. 일본서기에 고구려와 백제 사이의 전투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양국 군대가 들판에서 마주치자 두 진영은 먼저 자기 군대의 장수를 앞으로 내보낸다. 갑주로 무장한 채 말을 타고 앞으로 나아간 두 진영의 장수는 각자 4대조부터 자신에 이르기까지의 계보를 밝혀 자신이 어떤 집안 자손인지를 상대에게 알린다. 이렇게 통성명을 하고 두 장수는 일대일의 결투를 벌인다. 대개의 경우 두 진영은 이 결투의 승패 여부로 전투의 승패를 결정짓는다. 물론 한 진영이 결투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경우에는 전체 진영이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전호태, 1999).    

삼실총의 공성도 중 기마전 장면: 투구와 갑옷으로 중무장한 두 장수가 긴 창을 휘두르며 벌이는 공방전을 묘사하고 있다. 삼실총은 중국 길림성 집안 여산(如山) 소재 삼국시대 고구려의 고분이다.

고대 로마시대에도 남자들은 이름으로 자신의 위신을 세우고자 했다. 보통의 로마시민은 3개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개인 이름에 해당하는 프라이노멘, 일족 이름인 노멘, 그리고 가문의 이름인 코그노멘이 그것이다. 이 3개의 이름 뒤에 별명을 붙여 자신의 업적을 강조하거나 능력을 과시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아프리카의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격파한 스키피오는 아프리카를 정복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아프리카누스를 이름 뒤에 붙여 사용했다.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Publius Cornelius Scipio Africanus)가 그의 풀네임이다. 그의 형 Lucius Cornelius Scipio 또한 아시아티쿠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제4차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활약하여 마케도니아를 로마 속주로 합병하는 데 공을 세운  메텔루스는 마케도니쿠스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의 풀네임은 퀸투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 마케도니쿠스(Quintus Caecilius Metellus Macedonicus)로 기원전 143년의 집정관이었다. 

폼페이우스도 위대하다는 뜻의 마그누스를 마치 성처럼 사용하여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라고 서명을 할 정도였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Gnaeus Pompeius Magnus, 기원전 106년~기원전 48년)는 로마 공화정 말기의 위대한 장군이자 정치인이었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함께 삼두정치체제를 이끌었다. 카이사르의 딸 율리아와 결혼하며 한때 카이사르와 동맹을 맺기도 했지만 종국에는 카이사르와의 내전에서 패하고 이집트로 달아나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하던 길에 살해당했다.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흉상(좌)와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의 스키피오 흉상(우)

후대에 이르러 마피아 같은 조직이나 UFC 등의 스포츠선수들이 별명을 덧붙이는 것도 자신의 용맹함을 과시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의 격투기 선수 코너 매그리거는 이름 앞에 The Notorious(악당)를 붙인다. 한국의 파이터 정찬성 선수는 코리안 좀비다. 우리나라 최고의 싸움꾼이라는 시라소니 같은 별명도 있고 Scarface(흉터)를 자랑스레 별명으로 삼은 미국의 전설적인 마피아 대부 알폰스 가브리엘 알 카포네도 있다. 별명으로 불리길 좋아하는 그에게는 Big Al, Big Boy, Public Enemy No. 1, Snorky(코골이)와 같은 별칭이 많이 따라붙었다.

알 카포네(1899~1947) / 영화 대부의 포스터, 말론 브란도가 대부 역을 맡았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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