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 대중화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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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 대중화의 길을 찾아서
  • 황병익 경성대·국문학
  • 승인 2021.05.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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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노래로 신과 통하다: 향가가 가진 신성한 힘』 (황병익 지음, 역락, 472쪽, 2021.04)

향가鄕歌는 우리나라가 고유한 문자인 훈민정음을 갖지 못하고 동아시아의 공동 문어文語인 한자를 빌려 쓰던 시대의 문화유산이다. 우리말과 한문은 소릿값과 문장의 순서가 다르기에, 나려시대 사람들은 때론 한자의 뜻을 빌리고 때론 한자의 음을 빌리는 차자표기법借字表記法 향찰鄕札을 활용하여 향가의 노랫말을 기록했다. 향찰은 베트남의 자남字喃(chanom), 일본의 가명假名(kana)에 견줄 수 있는 차자표기법이다. 현재 전하는 향가는 기원후 600년 즈음부터 1120년까지의 작품 26수에 불과하지만, 전하지는 않지만 향가 모음집 『삼대목(三代目)』의 실체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고, 고려시대 윤언민(1095~1154)의 묘지명에도 깊은 불심으로 살다가 죽기 전에 향가 1 결을 지었다고 나왔으니, 전하지 않는 향가까지 치면 작품 수가 상당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향가는 나려시대에 신분을 뛰어넘어 소통하는 수단이었고, 국가적 재난 상황에는 부처나 하늘을 향해 집단의 소망을 빌고 평소에는 개인적 일상과 애환과 기원을 담아내던 대중의 다라니였다. 향가는 찬양과 찬미, 염원과 기도, 제의와 추모, 그리고 다양한 개인적 서정을 담아 천지의 신, 부처와 통하려 했으므로, 그들에게 향가는 노래이자 생활이었고, 신앙이면서 소망이었다. 이에 당시 사람들은 향가를 천지귀신은 물론 부처까지 감동시킬 만큼 마력을 가진 노래로 숭상하여, 담벼락에다 향가를 붙여 백성들에게 불교이론을 전하고 세상 사람들을 교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렇듯 예전에는 대중들의 마음을 지키는 든든한 주춧돌이자 버팀목이었던 향가이지만, 천 년이 훌쩍 지난 지금의 향가는 그렇지 못하다. 향가 해독과 연구는 학자들의 손에 놓이고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학문 분야가 세분화, 전문화되면서 향가는 극소수 전공자에게만 관심 대상으로 남았고, 중등 교육 현장에서나 겨우 명맥을 잇고 있으니, 서둘러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면 앞으로 향가는 아예 잊히는 장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오래전부터 중등 국어, 문학 시간에 단골로 다루어짐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한 향가를 이렇게 놓쳐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한문인 듯 한문 아닌 낯선 문자 향찰로 표기한 데다, 역사와 설화적 내용이 얽히고설키어 쉽게 풀어서 설명하기가 무척 어려운 향가 텍스트를 두고, 대중서 『노래로 신과 통하다』를 내고자 맘먹은 까닭은 대중들이 향가를 아예 잊을까를 저어하기 때문이다. 또한 흔히 미래 문화시대에서 1,500여 년 전의 향가와 그 스토리텔링이 새로운 관광산업과 문화콘텐츠산업을 주도할 황금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또한 한몫을 했다.

이제 양주동, 김완진 박사 이후, 향가 연구 100년의 성과 가운데 보편타당한 내용을 추리어 쉽게 정리한 후, 향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회복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국악, 춤과 공연, 대중음악, 시와 소설과 연극, 각종 공연 등 향가 기반 대중예술 콘텐츠를 보면, 향가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는 매우 높다. 앞으로 산재한 향가 콘텐츠를 한데 모으고 새롭게 다듬어 향가 아카이브(Archive)를 구축하고, 박물관, 전시관, 기념관의 기능을 총합한 테마파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아동과 청소년에게 화랑의 일상과 수련이나 활동, 사고방식 등을 소개하고, 불교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향가와 관련된 불교미술이나 조각, 불교음악 등에 대한 교양을 갖추게 한다면, 우리의 문화콘텐츠와 관광문화 산업은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필자는 중학교 국어 선생님에게 처음으로 향가에 대해 들었다. 아니 향가에 대해 들었다기보다는 양주동 교수에 대해 들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차가 귀하던 시절에, 버스를 타고 가시다가 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당신의 몸이 비틀거리자 국보 다친다고 불호령을 내리셨다는 양 교수님의 일화를 듣고,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자신감, 대중들과 격의 없이 지내던 그 소탈함과 유머러스함, 노학자의 유머를 알아듣고 그를 귀하게 여기며 웃음 짓던 버스 안의 분위기, 이 인간적인 장면을 떠올리면 인문학의 가치를 알던 때인 것 같아 흐뭇한 맘이 생긴다. 대학 1학년 때에 향가 스터디를 할 때는 특히 <서동요>의 알卵과 몰卯乙의 해독에 대한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향가의 구절구절을 명쾌하게 해독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하지만 누대에 걸쳐 여러 학자들이 노력하신 까닭에, 현재 신라향가 85%, 고려향가 90% 정도를 온전히 의미 파악했다고 진단한다(박재민 교수). 이 정도라면 이제는 향가의 대명사로 지칭하는 양주동, 김완진이라는 양대 산맥을 넘어, 이후의 성과까지 집약하여, 지금에 맞는 향가 표준 해독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는 향가의 구절 해독에만 얽매이지 말고, 신라와 고려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역사적 애환을 이해하고, 향가에 담아 전하고자 했던 그들의 소망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향가를 신라와 고려의 문화 문맥에서 이해하고, 문학 작품으로 감상하려는 노력은 지금 당장 시도해야 한다. 여전히 미진한 10% 내외의 해독 논쟁에 매진하는 일은 앞으로도 학자들의 몫이다. 여러 학회에서 빼어난 학자들이 향찰과 이두吏讀, 구결口訣 자료를 탐독하며 검증해왔으니, 눈과 귀를 열고 살피다 보면 기존의 독법 중에서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이 대중 도서를 세상에 내놓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1980년의 해독에서 멈춘 채 이후의 수많은 성과들을 수렴하지 못한 향가 교육의 현실을 꼬집고, 향가는 더 이상 새롭게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없고 구절풀이의 난독증에서 벗어날 뾰족한 방안도 없다고 공공연하게 되뇌는 무기력한 패배주의에 파문을 던지기 위함이다.    


황병익 경성대·국문학

부산대학교 대학원에서 고려가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줄곧 향가 연구를 해 왔다. 현재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전시가론’, ‘한국문학의 역사’, ‘고전문학 이야기 문화유산’, ‘한국인의 놀이문화’ 등을 가르치고 있다. 고대시가·향가·고려가요·시조 장르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한국의 고전문학과 전통문화유산에서 대중문화콘텐츠를 발굴하고 가공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저서로 『고전시가 다시 읽기』, 『고전시가 사랑을 노래하다』, 『고전시가의 숲을 누비다』, 『고전시가 시대를 노래하다』, 『신라향가 천년의 소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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