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內張)의 귀환…내장과 팽창의 변증법으로 분석한 근대세계사 5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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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內張)의 귀환…내장과 팽창의 변증법으로 분석한 근대세계사 500년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5.17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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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장’과 ‘팽창’ 개념과 관점으로 풀어낸 동아시아 주역의 근대 세계사이자 문명사
- 동서·고금의 ‘대전환’을 종합 분석하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문명전환의 방향 제시

■ 깊이 읽기_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팽창문명에서 내장문명으로』 (김상준 지음, 아카넷, 968쪽, 2021.04)

이 책은 근대 500년 역사의 대전환을 밖으로 확장하는 서구의 팽창문명과 안으로 성장하는 동아시아 내장문명의 변증법으로 풀어낸다. 이 책이 제시하는 문명전환의 방향은 서양 근대의 팽창문명 질서로부터 후기 근대의 내장, 공존, 평화 문명 질서를 향한 거대한 흐름이다. 그리하여 서양 우위의 ‘동서(東西) 대분기’는 사라지고 동아시아와 서양이 대등한 관계로 만나는 ‘동서 대수렴’의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부상과 그 마지막 10년 이래 중국의 급속한 굴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미중 관계가 과거 미소 관계와 본질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인가? 세계 속에서 동아시아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계가 경탄한 한국의 촛불혁명과 K방역의 저력은 어디에서 왔는가? 자본주의-사회주의 대립 이후의 체제는 어떠한 것이 될 것인가?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문명전환의 핵심고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은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이러한 질문에 해답을 제시하며, 다양한 문명전환의 담론이 쏟아지는 현실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새로운 문명의 상에 대한 선명한 비전을 제시한다. 인류사의 과거와 미래를 통찰하는 상징으로 제시된 『장자(莊子)』 속 ‘붕새’는 내장적 문명화의 전환력이다. 수평적 협력을 통한 생활력, 생산력의 확장을 이룩한 동아시아 문명의 특성은 글로벌 기후위기, 불평등의 심화, 신냉전과 냉전과학, 무한생산·소비로 불거지는 ‘대전환’의 양상과 함의를 밝혀 현 인류가 맞은 위기를 극복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또한 동아시아의 후진성과 한반도의 주변성을 걷어내고 냉전의 청산과 남북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한다.

높아진 동아시아 위상과 새롭게 조명된 ‘대분기’의 실체

‘붕새의 날개’가 보여주는 문명전환의 진로는 ‘내장(內張)의 귀환’이다. 정복과 지배의 팽창성이 우위에 섰던 기존 인류 문명의 근본적 속성이 협력과 우애를 바탕으로 하는 내장의 공존과 평화의 문명으로 수렴된다는 전망이다. 근대사, 문명사, 인류사 3중의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인류의 존망이 걸린 작금의 대전환에서 동아시아 근대 세계가 보여준 내장 문명의 뿌리를 깊이 인식하고 문명의 행동 원리로 삼자는 것이다.

저자는 17~18세기 동아시아 ‘200년의 평화’ 동안 유럽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19세기 들어 ‘유럽의 100년 평화’ 시기에 동아시아는 전란에 빠져든 역(逆)의 상관관계에 주목한다. 이 시기는 외부의 포식을 바탕으로 팽창적인 문명 원리로 나아간 서양과 동아시아의 내장 문명이 극명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서구의 팽창근대를 여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대항해’가 모종의 종교적 적대감을 바탕으로 하는 침탈적 성격을 드러낸 것과 달리 정화의 남해 원정은 식민지화 없이 조공의 망을 넓히는 데서 동아시아 내장적 문명의 성격을 드러낸 것도 두 문명 간 차이를 나타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대분기(The Great Divergence)’는 19세기에 벌어진 동서양의 우세 역전과 격차 심화를 일컫는 역사학계의 용어다. 문명화를 이끈 서구 세력이 근대 이후를 주도했으며, 이러한 ‘서구주도근대’에 대한 인식은 20세기까지 표준적인 세계관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들어 ‘동아시아의 기적’이라 불리는 ‘동아시아의 부상’이 가져다준 관점의 전환은 대분기 현상을 새롭게 주목하게끔 했다. 

동아시아의 뿌리 깊은 공화·민주의 전통 위에 탄생한 협동·우애 공동체

내장 문명의 원리는 유교에 대한 창조적 재해석에 바탕을 두며, 철저한 비판적 대면을 통해 그 정수를 걸러내고 재구성된다. 동아시아 내장근대의 가치에서 놓칠 수 없는 것이 ‘평화’에 대한 지향이다. 동아시아에서 유교는 문(文)으로 무(武)를 통제했고, 성왕론(聖王論)을 통해 세습 군주의 권력을 순치하는 기능을 했다. ‘국가의 기본이 오직 민의 복리와 안녕에 있다’는 민유방본(民唯邦本) 전통의 바탕에서 비롯한 대중유교로서의 동학(東學)은 ‘생명과 평화의 가르침’ 사상으로 주목된다. 동학혁명 당시 혁명군의 기율로서 전봉준이 제시한 ‘4대명의(四大名義)’는 억압된 농민들의 혁명이 평화주의로 잘 규율된 것임을 예증한다. 저자는 이러한 평화적 공(公)사상이 3·1운동, 반독재민주화운동, 4·19혁명, 6월항쟁, 광주민주화운동, 촛불혁명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협동과 우애의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이러한 자발성에 기초한 사회적 협력의 강화가 팬데믹 이후 문명전환의 방향이자 행동 지침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동아시아에서 고유한 방식으로 발전해온 공화제와 민주제의 전통은 서구 사회보다도 뿌리 깊어 사회의 단단한 토대가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프랑스와 영국이 공화제 혁명의 성공 이후에도 여러 차례 ‘왕정복고’가 반복된 것과 달리, 동아시아에서 ‘민(民)의 수평화 현상’이 장기간 지속된, 곧 군현제(중앙집중적 군주제)의 역사가 긴 나라들에서의 공화제 혁명은 ‘역류 현상’ 없이 오래도록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정부와 국민이 보여준 성공적인 방역 대응(K방역)은 전 세계에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는 K방역의 저력은 한국인들의 자발적 참여와 협동 정신의 결과이며, 이는 촛불혁명에서 보여준 사회적 협력 의식, 민주적 참여 의식이 바탕이 된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전체주의적 감시사회’나 ‘유교적 순응주의’로 낮춰보는 유럽 발 시각은 뿌리 깊은 오리엔탈리즘의 소산이라고 진단한다. 

자본주의-사회주의 대립 이후의 체제…평등과 효율을 결합한 혼합체제로 수렴

이 책에서 동아시아와 서양(유럽)이 만나면서 벌어진 힘의 상호관계는 형(形)-류(流)-세(勢)-형 다시(形′)라는 하나의 순환적 흐름이 교차하는 변화 과정으로 풀이된다. 내장적 사회의 원형(形)이 되는 초기 근대의 동아시아 소농체제에서 서구 팽창성이 세계를 압도하는 시기를 거쳐(流-勢) 후기근대의 세계는 내장형 사회로 수렴된다는 것이 ‘붕새의 날개’가 전망하는 인류사 전체의 흐름이다.

형 다시(形′)로 설정된 후기근대는 서구 패권의 200년이 저무는 미·소 냉전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다. 내장문명이 세계적 차원에서 완성되는, 세계가 근대의 역사를 ‘되감는’ 역사적 이력(hysteresis)의 시간대이자 문명사적으로는 ‘두 번째 축의 시대’이다. 저자는 팽창근대가 팽창의 극한에 이르는 후기근대에는 팽창근대와 내장근대의 분열선이 사라지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분열선도 함께 사라진다고 전망한다. 자본주의는 순수한 경제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사·정치·경제적 권력이 결합된 권력체제인 ‘권력자본주의(power capitalism)’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경제성장 지상주의, 대결적 대외관계 등에서 팽창근대의 성격을 공유하였고 내장적·생태적 가치를 지향하는 사회주의 사조나 운동과 ‘선한’ 자본주의 흐름들도 존재하는 만큼 팽창근대/내장근대로 인류의 문명사에 접근하는 일은 자본주의/사회주의 구분을 넘어서 ‘대수렴’의 인식과 전망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대수렴’의 방향은 내장성의 강화이며 그 형태는 혼합경제이다. 후기근대에는 수평적·개방적이며 평등적·평화적 힘이 상대적으로 강하게 작용하여 수직적·대립적이며 차등적·대립적인 힘을 약화하는 만큼 내장성이 강화된다. 혼합경제는 시장경제와 재분배경제, 호혜경제가 공존하는 체제이며 주류 경제학 내부에도 이러한 추세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혼합경제로의 경로를 통해 진화 중이며 이러한 내장형 사회의 본보기가 되는 것은 북구 노르딕 국가들이다. 

적이 사라진 세계와 팽창근대의 종식…내장적 공존

내장형 사회로 ‘대수렴’이 이루어지는 후기근대는 여러 다극적 힘들이 서로 복합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균형을 이루어가는 세계이다. 강대국 간의 ‘힘(power)’의 관계도 분산적이 되고 그 ‘힘’도 더는 과거처럼 ‘팽창적’이지 않고 ‘내장적’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는 ‘패권다툼 논리’에 불과한 기존의 지정학에 근거한 사고도 종식되리라 전망한다. 또 이른바 미중(G2) 간의 ‘신(新)냉전 시나리오’는 실제 세계의 움직임과도 다르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기존 체제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다고 분석한다.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권과 교류 확대를 원하는 유럽연합뿐만 아니라 러시아, 라틴 아메리카, 이슬람권, 인도권, 동남아시아 등 비서구권 전반의 국가들이 접면 확장에 훨씬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일례로 중국이 주도하여 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경제벨트로 묶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은 유라시아 지역의 ‘중간지대’에 속한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합치되어 지금껏 무력충돌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중국의 ‘굴기’가 지금까지 성공적인 까닭은 서양의 제국주의가 장밋빛 ‘문명화’를 약속한 팽창적 패권의 길과 다른 내장적 경로를 택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중국이 이러한 내장적 공존 노선을 흔들림 없이 견지하여 미중 관계가 안정된다면 세계의 내장화는 큰 걸림돌을 걷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냉전의 종식은 적이 사라진 세계를 뜻한다. 미국에게는 소련이라는, 소련에게는 미국이라는 ‘절대적인 적’이 존재함으로써 냉전체제는 존립 가능했다. 이러한 적대는 16세기 종교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종교전쟁이 유럽내전으로 그리고 세계내전(세계대전)으로 확대해간 500년 팽창근대의 역사를 이어온 심리적 동기는 팽창 대상에 대한 모종의 적대감에서 비롯한다. 이 강력한 힘은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가 서로를 ‘적그리스도’로 규정하던 것에서 ‘최종 심판’이라는 성스러운 과업에 저항하는 세력을 적으로 삼고 비유럽 세계의 식민지화를 수행한 동력으로 이어진 ‘심리적이면서 신학적인 메커니즘’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문명전환의 핵심…길항 관계 전체를 살피는 기후변화 대응 주문

기후위기는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고 심각하며 여러 문제가 중첩해 나타나는, 대전환과 대파국의 귀결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기후위기는 지구가 보내는 엄중한 경고로 전문가들은 ‘여섯 번째 대멸종’을 예고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IPCC의 보수적 예측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20세기까지 지구온도가 1도 상승한 데 반해 2100년에는 4도 올라 인류의 존망을 위협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이 자기회복과 순환할 틈을 주지 않는 인간의 과도한 약탈에서 비롯한 것으로 인간에 대한 자연의 우위(낙차)가 인정되고 자연은 가장 근원적인 타자로 머물던 팽창근대의 사고법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러한 인식의 변화로 신자유주의 이후 끊긴 반핵, 환경운동의 흐름이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그린 뉴딜’에 대한 요구가 전방위로 모이면서 자연과 생명에 대한 공감이 널리 확장되었다. 이는 일부의 뛰어난 스승, 사상가와 철학자들의 특별한 영혼과 사고 속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적 차원에서 수많은 다수의 마음속에서 동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반적 현상이다. 이제 서구와 비서구가 공히 봉착한 문제는 과거의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지키려는 힘을 어떻게 약화시키고 해체하여 내장화할 것이냐다. 저자는 기후변화 대응운동 일각에서 “이미 늦었다”고 자포자기하는 비관적인 분위기를 걷어내고 여러 힘이 묶여 길항하는 관계 전체를 살피자고 제안한다. 탄소배출의 실제적 감축도 이런 관계의 전체 구조를 바꿔 갈 때 비로소 본격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 김상준 경희대 공공대학원·사회학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대를 졸업했으며 미국 뉴스쿨에서 석사학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사회학, 2000)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맹자의 땀 성왕의 피: 중층근대와 동아시아 유교문명』, 『미지의 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이후의 사회를 구상하다』, 『유교의 정치적 무의식』, 『진화하는 민주주의: 아시아·라틴아메리카·이슬람 민주주의 현장 읽기』, 『코리아 양국체제: 촛불혁명과 체제전환』 등이 있고, 시민의회론, 성찰윤리론, 중층근대론, 중간경제론, 비서구 민주주의론, 후기근대론, 동아시아 내장근대론, 내장적 문명전환론 등의 새로운 학술 담론을 제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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