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인스와 하이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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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와 하이에크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5.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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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문화정전 제 44강>_ 김균 고려대학교 명예교수의 「케인스와 하이에크」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일곱 번째 시리즈 ‘문화정전’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인류 문명의 문화 양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 전통, 사회적 관습으로 진화하며 인류 지성사의 저서인 '고전'을 남겼다. 이들 고전적 저술 가운데, 인간적 수련에 핵심적이라 받아들여지는 저술을 문화 정전(正典)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52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가 쌓아온 지적 자산인 동서양의 ‘문화 정전(正典)’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6. 서양 근대 문명과 그 세계적 영향’ 제 44강 김균 명예교수(고려대 경제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케인스와 하이에크

김균 교수는 먼저 지난 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케인스(John Maynard Keynes)와 하이에크(Friedrich Hayek)를 같이 살펴보는 까닭으로 두 사람의 입장이 “크게 보면 20세기를 지배한 경제사상 그리고 정책적 사고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케인스와 하이에크의 주요 경제 사상을 특히 시장에 대한 생각을 중심으로 논의”를 끌고 가는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 “케인스주의는 케인스의 원래 생각과 다르다”라는 전제 아래 케인스주의가 아닌 “케인스의 시장과 정책에 대한 생각”을, 그와 비교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이는 하이에크의 “시장 이론과, 이의 확장인 그의 자유주의 사상”을 소개한다. 결론적으로는 한 역사가의 입을 빌려 자본주의란 “일직선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economic freedom) 단계와 경제적 규제(economic regulation) 단계를 시계추처럼 왕복하면서 발전해왔다”라고 하며 2020년대 “현재는 신자유주의의 시장주의에서 개입주의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큰 흐름을 전망한다. 

지난 4월 17일, 김균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문화정전>의 44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케인스와 하이에크

케인스(1883-1946)와 하이에크(1899-1992), 이 둘은 서로 대단한 학문적 맞수였다. 케인스주의와 하이에크는 모두 시장이 효율적임을 전제한다. 하지만 케인스주의는 실업, 불황, 경제적 불평등 등과 같은 시장 경제의 실패를 구조적 문제로 파악하고 이를 적극적 정부 개입을 통해 보완ㆍ치유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 하이에크는 시장 실패가 시장의 자기조정 기능에 의해 스스로 치유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 개입은 최소화하고 자유방임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크게 보면 20세기를 지배한 경제사상 그리고 정책적 사고의 원천은 바로 이 두 입장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1920-1930년대 대량 실업과 대공황 시대를 거치면서 고전파 체계는 케인스주의로 대체되고, 1970-1980년대 인플레이션과 스태그플레이션의 시대에는 케인스주의 대신 통화주의, 새고전파, 하이에크, 신자유주의 등 일련의 고전파 전통의 이론이 지배적 사고로 등장하였다. 다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는 고전파적 사고가, 특히 신자유주의의 기세가 꺾이는 계기가 된다. 당시의 ‘월가를 점령하라!’라는 등의 구호가 상징하는 금융자본 반대 운동, 반세계화 운동, 소득 불평등 비판 운동 등은 신자유주의 내지 시장 근본주의 경제 질서에 대한 비판이자 거부 운동이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탈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 적극적 재정 및 산업 정책으로의 개입주의적 전환이 뚜렷해지고 있으며, 이와 함께 케인스 또는 케인스주의 정책이 부분적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2. 케인스

케인스의 시장 경제에 대한 생각은 개인주의가 시장을 전제로 한다는 점, 20세기 초 영국의 자유방임적(laisse-faire) 시장이 확산 원리(principle of diffusion)의 둔화와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아 대량 실업, 불황 및 경제 불평등의 구조적 늪에 빠지게 되었다는 점, 따라서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점 등을 지적한다. 그의 ‘논증의 무게(weight of argument)’, ‘도덕적 위험(moral risk)’ 등의 확률 철학은 정책이 단기적이고 또 점진적일 것을 요구한다. 

1) 확산 원리

『일반이론』의 마지막 장에서는 시장 경제(Manchester System)의 이득을 개인주의와 연결시켜 논의하고 있다. 시장은 개인이 주도하고 자기 책임 하에 행동하는 영역, 즉 개인주의의 영역이다. 이 개인주의 이득의 첫째는 효율성 이득이다. 둘째로 개인주의는 “다른 체제와 비교할 때 개인 선택의 행사 영역을 크게 확장한다는 점에서 개인의 자유(personal liberty)를 지키는 최고의 보호 장치”이며, 또한 “바로 이 개인 선택 영역의 확장에서부터 나타나는 삶의 다양성(variety of life)을 지키는 최고의 보호 장치”이다. 

이처럼 시장을 상품 거래가 이루어지는 단순한 경제 조직이 아니라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문명을 지탱하는 중요한 역사적 사회 제도의 하나로 파악하기에, 케인스는 당시의 고전파와 달리 시장을 협애한 효율성 기준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시장 평가의 준거를 효율성과 자유에 두는 일종의 제도(주의)적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황과 대량 실업에 시달리는 20세기 초의 영국 자본주의에서는 자유방임적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평가하고는 케인스는 미국의 제도주의 경제학자 코먼스(J. R. Commons)의 일종의 경제 발전 단계론을 빌려와 영국 자본주의를 역사적 시각에서 분석한다. 첫 번째는 비효율성, 폭력, 전쟁, 관습 또는 미신 등으로 말미암은 결핍의 시대(epoch of scarcity)이다. 그 다음은 풍요의 시대(era of abundance)이다. 20세기 초부터 영국은 세 번째 단계인 안정화 시대(period of stabilization)에 들어선다. 케인스가 굳이 코먼스의 시대 구분을 원용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마도 19세기 영국의 자유방임 경제가 20세기로 건너오면서 겪는 급격한 제도적 변화일 것이다.

이렇게 19세기와 20세기 영국 경제를 제도적 차원에서 구분해놓고 케인스는 그 분석을 위해 ‘확산의 원리’(principle of diffusion)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 원리는, 경제 유기체에 어떤 교란이 발생하면 이 교란이 새로운 균형점에 도달할 때까지 유기체 전체에 걸쳐서 상당히 빠르게 확산되어 결국 소멸된다는 원리이다. 19세기 자유방임 시장은 충분한 유동성과 이동성을 지녔기에 확산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된다. 그래서 가격 신축성과 개인의 자유를 가정하는 고전파 모형을 적용시킬 수 있으며 국가의 시장 개입도 불필요하다. 반면 20세기 초의 영국 자본주의는 각종 경제 조직체의 등장이 가격 기능의 정상적 작동을 저해하는 등 경직적 시스템으로 변모해버렸다. 즉 이 경제 시스템은 ‘확산’이 약화되어 외적 교란을 신속하게 흡수ㆍ소멸시키지 못하는 경직적이고 불안정한 시스템으로 후퇴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전파 논리에 따라 시스템의 불안정성 해소를 시장의 가격 기능에 맡기고 국가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면, 경제 시스템은 더욱 더 불안정해져버릴 것이다. 바로 이것이 1920년대 영국이 불황과 대량 실업의 늪에 빠지게 된 첫 번째 근본 원인이다. 적절한 국가 개입을 통해서만 이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며, 그래야만 시장 효율성과 자유도 보존 가능하다는 것이 케인스의 일관된 주장이다.

2) 불확실성

유효수요 이론에 의하면 고용과 총산출은 유효수요의 크기에 좌우되고, 이는 다시 투자의 크기에 좌우된다. 단순 모형은 이 투자와 총산출 간의 수식적 관계를 승수로 표현한다. 여기서 투자는 이자율과 자본의 한계 효율성(marginal efficiency of capital, MEC)에, 또 MEC는 자산의 공급 가격과 미래 수익에 좌우된다. 따라서 예상 미래 수익이 클수록 MEC가 클 것이고, MEC가 이자율보다 클수록 투자가 증대하고 고용과 총산출도 증가할 것이다.

그런데 미래 수익 추정을 위한 지식의 근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박약하고, “몇 년 뒤의 투자 수익을 좌우하는 요소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보통 매우 보잘것없고 하찮다.” 우리가 사는 세계, 특히나 경제 세계는 불확실성의 세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의 인간은 이 불확실성을 건너갈 다양한 기법을 고안해낸다. 그중 중요한 세 가지는 다음과 같다. ① 과거 경험보다 현재가 훨씬 더 미래에 대한 유용한 길잡이라고 가정한다. ② 현재의 의견은 미래 예상들의 올바른 합계에 기초한 것이라고 가정한다. ③ 우리 자신의 개인적 판단이 보잘것없음을 알기에 우리는 어쩌면 우리보다 뭔가 잘 알 것도 같은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의지하려 한다. 이제 이런 세 가지 원리에 기초한, 미래에 대한 실제적 예상은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을 갖는다. 관행에 기초한 미래 전망은 너무나 그 근거가 박약하기 때문에 급격히 변화할 수 있고 또 언제든지 붕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확실성 하에서 먼 미래의 투자 수익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래서 투자의 경우에도 불확실성을 건너뛰는 여러 기법들이 존재한다. 그 첫째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다. “우리의 적극적 행위들은 수학적 예상이 아니라” 바로 이 “자발적 낙관주의” 때문인 것이다. 기업가의 동물적 충동은 불확실성 하의 투자를 감행케 하는 한 요인이지만, 이는 비합리적 심리이므로 투자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 다음은 관행인데, 관행의 핵심은, 변화를 예상할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현재 상황이 무한정 지속될 거라는 가정에 있다. 또한 현재 상황의 무한정 지속이라는 이 가정은 현재 주가가 먼 미래의 투자 수익을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가정을 내포한다. 그러나 일견 안정적 투자를 보장하는 듯한 이 관행 역시 그 근거가 박약하다. 

요약하자면 불확실성은 투자 미래 수익 예측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투자의 변동 폭을 확대하여 고용과 산출량의 변동을 가져온다. 20세기 초 영국의 대량 실업과 불황을 초래한 요인 중 하나가 불확실성으로 인한 투자의 부족과 변동인 것이다.

3) 정책

『일반이론』 마지막 장에서 케인스는 완전 고용 달성을 위한 정책 수단으로 ‘다소간 포괄적인 투자의 사회화(a somewhat comprehensive socialisation of investment)’를 제시한다. 『일반이론』의 유효수요 이론의 핵심이 대량 실업과 불황은 투자의 부족과 불안정성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이라면 『일반이론』의 정책적 결론은 당연히 투자의 확대와 안정성이 확보되는 정책의 제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안정적 투자확대 정책의 하나라는 의미에서 ‘투자의 사회화’는 타당하다. “소비 성향과 투자 유인 간의 조정을 위한 중앙 통제”라는 “경제생활의 사회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국가 개입을 지시하는가는 매우 불명확하다. 투자의 사회화는 사적 부문과의 협업을 배제하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제생활을 포괄하는 국가사회주의와 다르며, 국가의 생산수단 소유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더구나 “필요한 사회화 수단은 점진적으로, 사회의 일반 전통과의 단절 없이 도입될 수 있다.” 이것이 자유방임 정책은 아니고, 국가사회주의 정책도 아니고, 대략 그 중간에 놓인 어떤 정책임은 분명하다. 

‘투자의 사회화’ 제안이 다소간 의외의 주장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케인스의 정책에 대한 생각이 상당히 일관되게 단기주의적이자 점진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책관은 일찍이 『확률론』에서부터 그 토대가 마련된다. 먼저 『확률론』에 등장하는 무차별 원리(principle of indifference)와 논증의 무게(weight of argument) 개념, 그리고 도덕적 위험(moral risk) 개념을 차례로 간략히 설명해보자. 무차별 원리란 여러 대안들 중 어떤 한 사건(event)이 다른 사건들을 제치고 발생할 것으로 예견할 수 있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이들 대안 각각에 동일한 확률을 부여해야 함을 의미한다. 논증의 무게란 확률적 판단을 지지하는 증거의 크기를 말한다. 증거가 크다고 해서 반드시 확률을 높이는 것은 아니지만 확률적 판단에 대한 신뢰도는 높일 수 있다. 또 도덕적 위험 기준에 따르면, 두 행위가 동일한 기댓값의 선(good)을 가져다 줄 때, 보다 작은 선을 주지만 실제로 획득할 확률이 더 큰 행위를 추구하는 것을, 더 큰 선을 주지만 실제로 획득할 확률이 보다 낮은 행위를 추구하는 것보다 더 선호한다.

도덕적 위험 기준과 논증의 무게 개념은 사회 개혁에 있어서 혁명적이지만 개연성이 낮은 변화보다는, 작으나 확실한 변화를 선호하는 점진적 개량주의 입장을 함의한다. 케인스의 도덕적 위험 개념은 보수주의자 버크(Burke)의 영향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케인스의 단기주의 성향은 무차별 원리와 도덕적 위험 기준과 밀접히 연관된다.

먼 미래에 대해 완전히 무지하다면 어떤 행위가 미래에 긍정적 효과를 낳을지 부정적 효과를 낳을지 전혀 알 수 없다. 이럴 경우 무차별 원리에 따르면, 먼 미래에 대한 고려를 무시한 채 가까운 눈앞의 미래에 발생할 효과만을 고려하여 행위를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 도덕적 위험 기준에 의하면, 확실한 현재의 자잘한 이득이 불확실한 먼 미래의 큰 이득보다 낫다. 

경제학은 현재 세계에 적절한 모형을 선택하는 기법(art)과 결부된, 모형들을 사용하는 사고의 방식(way of thinking)이다. 경제학이 이렇게밖에 될 수 없는 것은, 전형적인 자연과학과 달리 그것이 적용되는 재료들이 너무 많은 측면에서 시간적으로 동질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형의 목적은 일시적이고 변동적인 것들에서부터 준(準)항구적이거나 상대적으로 지속적인 요인들을 분리해서 전자에 대한 논리적 사고 방식과, 이 요인들이 특정 경우에 불러일으킬 시간적 연쇄(time sequence)를 이해하기 위한 논리적 방식을 개발하는 것이다. 고도로 전문화된 지적 기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좋은 모형을 선택하기 위해 ‘빈틈 없는 관찰’을 할 줄 아는 재능이 드물기 때문에 좋은 경제학자는 아주 희소하다. … 경제학은 본질적으로 도덕과학이지 자연과학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내적 통찰(introspection)과 가치 판단을 사용한다.

이렇게 볼 때 케인스에게 경제 이론은 자연과학과는 달리 현실 경제의 변화에 따라 또다시 바뀔 수 있는 임시적이고 잠정적인 모형에 불과하다고 하겠다. 

3. 하이에크

하이에크의 1937년 논문 「경제학과 지식(Economics and Knowledge)」은 그의 학문 이력에서 결정적 전환점이 된다. 전통적으로 신고전파가 시장을 효율적 자원 배분의 차원에서 접근해왔던 데 비해, 하이에크는 이 논문에서 시장을 근본적으로 정보(지식)의 조정(coordination of knowledge) 문제 해결 메커니즘으로 파악하는 새로운 관점으로 나아간다. 그 후 그는 순수 경제 이론에서 사회과학, 사회정치 사상, 철학 등의 광범한 영역으로 연구 지평을 넓히는데, 그 체계의 중심에는 시장 이론이 놓여 있다. 정보 조정 문제가 모든 사회 질서의 핵심 문제이며, 자유주의 질서 역시 이러한 시장 이론의 확장에 불과하다. 그의 반과학주의 방법론과 케인스주의 비판도 정보 조정 문제의 맥락에서 전개되고 심지어 그의 마음(mind) 이론도 예외가 아니다.

1) 시장과 정보

시장을 정보 조정의 문제로 접근한다는 것은 한 개인이 보유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의 조건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참여하는 상이한, 독립적인 개인들 간의 상이한 경제 행위들이 어떻게 서로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게끔 조정되는가를 해명하는 것이 시장 이론의 과제라는 것이다. 시장 속의 한 개인은 다른 모든 개인들이 어떤 행위를 계획하고 있는가에 대한 예상을 토대로 자신의 행위를 선택한다. 모든 개인이 각기 이렇게 다른 모든 사람들의 계획을 예상하고 자신의 행위를 결정한다면, 시장 참여자들의 행위가 서로 상충되거나 모순되지 않고 상호 조화적으로(mutually compatible) 되기 위해서는, 달리 말해 개인 행위 간의 조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예상이 상호 조화적이어야 할 것이다. 즉 상호 조화적 예상 상태는 각 개인의 행위 계획의 상호 조화가 동시에 달성되는 상태인 것이다. 이 상호 조화적 예상을 하이에크는 올바른 예측(correct foresight)이라 부른다.

그런데 예상 형성을 위해서 각 개인이 수집해야 하는 정보는 매우 구체적인 것들이어야 한다. 개인이 경제 행위를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구체적인 만큼 그에 필요한 정보 또한 구체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아가 이 구체적 정보는 언어화가 불가능한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을 포함한다. 기술과 숙련, 취향, 습관 등의 암묵적 지식은 개인의 구체적 행위의 상당 부분을 지배한다. 또 이 구체적 정보는 각 개인이 그 대상을 주관적으로 인지함으로써 획득하는 주관적 정보이며, 그래서 반드시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조해야 할 것은 상호 조화적 예상 형성에 필요한 구체적 정보는 시장 속의 모든 개인들이 각자 아주 작은 한 조각씩만 가지고 있어서 시장 전체로 보면 이 정보가 무수히 많은 개인들에게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이에크에 의하면 시장은 바로 이러한 조정 문제를 해결하는 정보 전달 메커니즘 또는 텔레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이다. 그는 시장의 조정 문제를 정보 문제로 보아 가격의 정보 전달 기능과 경쟁의 정보 발견 기능이라는 두 측면에서 접근하는데, 시장을 정보 맥락에서 접근한 것이 하이에크의 획기적 기여이다.

다음으로 경쟁의 정보 발견 기능에 대해 살펴보자. 시장에서 다른 사람과의 경쟁 관계에 놓여 있는 개인들은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자신이 수집 가능한 최대한의 정보를 확보하여 이를 활용한다. 생산자는 자신이 아는 한 최선의 생산 방식을 찾으려 노력하고, 상인은 그가 알아낼 수 있는 국지적 시장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여 이윤을 얻으려 한다. 결과적으로 이 경쟁 과정에서 남이 갖지 못한 정보를 새로 발견해 활용한 개인들은 일시적 이윤을 누리게 될 것이고, 시장 전체로는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고 시장의 효율성도 증대된다.

하이에크의 시장, 또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시장은 경쟁을 전제한다. 하이에크의 시장에서는 경쟁이 시장 참여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발굴하고 수집하는 노력을 하게끔 유인하고 그 과정에서 정보는 가격 변화를 통해 시장 전체로 전달된다. 그러므로 하이에크나 오스트리아 학파의 시장은 “정태적 균형점에서 이탈된, 그러나 그 균형점을 향해 지속적으로 조정되어가는 시장이며, 이와 동시에 이 시장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가 발굴되기 때문에 과거에 지향하였던 균형점은 계속 새로운 균형점으로 바뀌어나가게 된다.” 이 과정을 균형화 과정(equilibrating process) 또는 오스트리아 시장 과정(Austrian market process)이라고도 부른다.

2) 자생적 질서와 자유주의

이상과 같은 하이에크의 시장 이론은 시장을 정보 처리의 맥락에서 접근했다는 점에서 경제학사상의 의의를 갖지만, 시장을 행위 조정의 문제 즉 질서의 문제로 관점을 전환시킴으로써 사회 질서 일반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케 하는 연구 지평을 열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시장 이론이 사회 질서 내지는 제도 이론의 하나로 다뤄지게 되면, 시장은 당연히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의 한 대표적 유형이 되고 시장의 속성과 생성은 자생적 질서론과 문화적 진화론의 테두리 안에서 새롭게 이론화되면서 그 내용이 풍성해진다.

하이에크는 질서를 인간이 의식적으로 만든 인위적 질서와 인간이 스스로 기획한 것은 아니지만 인간 행위의 산물인 자생적 질서로 구분한다. 전자가 특정 논리나 개인에 의해서 창출되었다는 점에서 인위적이라면 후자는 인간 행위의 산물이긴 하지만 행위 주체인 개개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저절로 생겨났다는 점에서 자생적이다.

질서란 개인들의 행위가 상호 조화적으로 조정된 상태를 말하며, 질서의 문제는 곧 정보의 문제이다. 여기서 질서 이전의 세계를 상정해보자. 이 세계에서 모든 개인은 자신의 행위를 계획하고 실행하기 위해서 다른 모든 개인과 외부 환경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구조적으로 무지하다(constitutional ignorance).

이제 이러한 복잡 세계에 질서가 형성되어 개인들 간의 행위가 상호 조화적으로 조정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자생적 질서는 각 개인이 일련의 행위 준칙(rule of conduct)을 따를 때 저절로 생성된다. 이 행위 준칙은 추상적(보편적)일 수밖에 없다. 복잡 세계에서는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행위 지침을 일일이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행위 준칙은,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행위 지침이 아니라, 범용 도구(general purpose tool)처럼 다양한 상황에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추상적 준칙인 것이다. 그러면 질서 속의 각 개인들은 추상적 준칙을 범용 도구로 삼아 자신만의 무한한 구체적 목적을 추구하게 된다.

다음으로 하이에크는 행위 준칙이 문화적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고 설명한다. 예상치 못한 환경 변화에 따라 새로운 행위 준칙 후보들이 생겨나게 되고, 이들 중 하나가 선별(selection) 메커니즘에 의해 선택되면서 새로운 질서가 생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적 진화는 주로 집단 선별(group selection)을 통해 작동한다.” 집단 선별 과정에서 특정 준칙이 해당 집단에 보다 유익한 효과를 가져올 때 그 준칙은 다른 준칙과의 경쟁 속에서 선별된다. 하이에크가 문화적 진화론에서의 선별 메커니즘으로 집단 선별을 내세우긴 하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의 견해가 명쾌하지는 않다. 때로는 그는 개체 차원의 선별 메커니즘을 제시한다. 특정 준칙에 따라 행동하는 개체가 환경에 더 잘 적응하게 될 때, 이 준칙이 모방과 학습의 과정을 거쳐 다른 개체들에게 확산되어 자생적 질서를 구성하는 준칙으로 자리 잡게 된다. 개체 차원의 선별 메커니즘은 하이에크를 비롯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방법론적 개체주의(methodological individualism)에 충실하다 하겠다. 하지만 이 경우 개체 선별에 의해 생성되는 자생적 질서가 반드시 최상의 질서라는 보장은 없다. 반면에 집단 선별은 다분히 기능주의적 설명 방식이며, 무임승차(free rider)의 문제를 내포한다. 

이상과 같은 자생적 질서의 대표적 유형이 시장 질서이다. 시장이 풀어야 할 개인 행위 간의 조정 문제는 달리 말하면, 상이한 선호(preferences)에 따라 상이한 목적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어떻게 하면 서로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느냐는, 일종의 홉스(Hobbes)의 문제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시장에서는 가격의 정보 전달 기능과 경쟁의 정보 발견 기능에 근거해서 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럴 때 시장 속의 개인은 일정한 행위 준칙을 지키면서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과 의사 결정에 따라 행동하며, 그 행위의 결과로 자신의 선호와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경제적 수단 즉 화폐(소득)를 확보한다. 나아가 각 개인은 시장 행위의 결과인 화폐적 수단을 이용해서 자신만의 (비경제적인 것을 포함하는) 고유한 목적을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으며, 시장 사회 전체로는 제각기 다른 목적을 추구하는 개인들의 다양한 삶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는 곧 자유주의 사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간의 개인적 삶이 추구하는 구체적 욕구와 목적들은 거의 비경제적인 것이겠지만, 그러한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은 대체로 경제적인 것이며 이 경제적 수단은 시장에서 확보된다. 따라서 시장에서의 개인의 성패가 비시장적 영역에서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구체적 목적의 성취 여부를 좌우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장에서의 개인의 지위가 그의 개인적 삶과 사회적 지위를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수단에 불과한 시장 가치가 목적인 비시장적 가치를 종속시킨다. 비시장적 가치는 시장에서 평가되는 정도와 수준에 따라 즉 교환가치의 크기만큼 승인되고 그 자체의 고유성은 거의 상실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의 모든 영역이 시장 영역으로 환원되는 강력한 경향성을 띠게 된다. 이는 다름 아닌 시장주의 사회 내지는 신자유주의 사회인 것이다. 또 하나 개인이 시장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그가 시장에서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시장에서 확보한 화폐적 수단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유를 동시에 의미한다. 하지만 시장은 본질적으로 비시장적 가치 범주이어야 하는 개인의 욕망을 효율성과 교환가치 기준에 따라 평가하고 서열화한다. 그러면 개인이 누리는 욕망 충족의 자유는 시장이 이미 서열화해놓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자유인 것이다. 시장 경쟁에서 확보한 교환가치라는 수단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달성되는, 이미 상품화되고 가격이 매겨진 욕구를 충족(소비)하는 자유인 것이다.

4. 맺는 말

프랑스 아날 학파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벨기에 역사가 앙리 피렌(H. Pirenne)은 일찍이 자본주의는 일직선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economic freedom) 단계와 경제적 규제(economic regulation) 단계를 시계추처럼 왕복하면서 발전해왔다고 주장한 바 있다. 르네상스 이후 경제적 번영기를 구가한 지중해 도시 국가들은 경제적 자유를 중시했고, 16세기 이후가 되면 네덜란드 등의 중상주의라는 경제적 규제 단계로 대체된다. 다시 18세기 말, 19세기 초가 되면 영국 및 유럽 대륙 국가들은 경제적 자유의 단계로 나아간다. 피렌은 그 후 자신의 시대인 20세기 초가 되면 다시 경제적 자유주의가 쇠퇴하면서 국제적 규제와 사회 입법이 강화된다고 본다. 이처럼 피렌은 유럽 자본주의가 경제적 자유와 경제적 규제 사이를 왕복하면서 발전해왔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하는데, 피렌의 시계추 이론을 경제사상의 역사에 적용하고 또 시간적으로도 좀 더 연장해보자. (여기서 경제적 자유와 경제적 규제는 각각 시장주의와 개입주의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면 경제사상의 역사는 중상주의-고전파 및 신고전파의 경제적 자유주의-케인스주의-새 고전파 내지는 신자유주의-케인스주의의 부분적 복귀(?) 정도로 전개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계추 가설에 따르면 아마도 현재는 신자유주의의 시장주의에서 개입주의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 중에 해당될 것이다. 그것은 케인스의 복귀일 수도 있고, 새로운 개입주의 경제학의 시작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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