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디외 사회학이 해석하는 하이데거 철학…“모든 존재론은 정치적 존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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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디외 사회학이 해석하는 하이데거 철학…“모든 존재론은 정치적 존재론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1.05.10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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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 |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 김문수 옮김 | 그린비 | 192쪽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가 그의 철학과 필연적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책, 빅토르 파리아스의 『하이데거와 나치즘』이 출간된 것은 1987년. 이 책의 출간으로 하이데거 철학과 나치즘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독일뿐 아니라 하이데거 철학에 깊게 의존하고 있던 유럽 지성계를 들끓게 했다. 이러한 소위 ‘하이데거 스캔들’이 본격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던 1975년, 부르디외는 이미 하이데거를 고발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방법론적 탐구를 담은 독일어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파리아스의 출간으로 시작된 논쟁 이후, 부르디외는 하이데거 저작 자체에 대한 독해의 시도와 함께 하이데거 철학이 지닌 정치적 함의를 드러낸 자신의 논문을 책의 형태로 출간함(1988년)으로써 ‘하이데거 스캔들’에 개입하게 된다.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L’Ontologie politique de Martin Heidegger)으로 출간된 이 책은, 단행본 출간을 위해 논문이 쓰인 시점과 당대의 시간적 공백에 따른 역사적 정보가 추가되었고, 원래의 논문에서 하이데거 언어에 대한 분석과 하이데거가 요구하는 독해에 대한 분석을 다룬 장들을 뒤로 보냄으로써 하이데거 철학에 대한 부르디외 본인의 입장을 보다 체계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하이데거 스캔들’이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지성계를 흔들었다는 것은 그 당시 유럽의 철학장이 하이데거의 신화와 필연적인 관계였음을 방증한다. 부르디외는 본인 또한 그 영향력에서 예외가 아니었음을 인정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하이데거 철학의 사회적 진리를 보여 줄 뿐만 아니라 하이데거 신화에 의존적인 당시 유럽 철학계까지 겨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지식사회학의 분석 대상으로서 하이데거 철학이 갖는 독특함 때문이었다. 일명 ‘순수 철학’의 대표자 하이데거는 철학적 사유가 시대 상황이나 철학자의 개인사와 함께 이해되는 것마저 꺼린다. 그러나 부르디외가 보기에 하이데거의 철학은 순수 철학이 아니라 당대의 정치적 보수주의와 함께 작동하는 ‘정치적 존재론’이다. 하이데거 자신이 나치당에 가입한 이력과 그의 철학의 논의 구조나 용어가 당대의 보수혁명가의 논의와 공명한다는 것 등이 그 증거다. 부르디외는 하이데거를 “철학적으로만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애매성을 지닌 철학자로 바라본다. 바로 이 ‘애매성’ 덕분에 하이데거 철학은 철학과 정치, 권력장 간의 관계를 밝혀 주기에 적합하게 된다.

“하이데거의 사유가 슈펭글러나 윙거 같은 에세이스트들의 사상과 가깝다는 이유로 하이데거를 정치적 공간에만 위치시키는 것은, 가령 신칸트학파에 대립했다는 점을 들어 하이데거를 ‘고유하게’ 철학적인 공간, 즉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철학사 안에 자리매김하는 것만큼이나 잘못이다. 오히려 이와 같은 준거의 이중성이야말로 하이데거 사유의 가장 특수한 성격과 그 사유가 낳은 가장 특수한 효과의 원리이다. 이를 적합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입장을 오로지 철학적으로만 진술하는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이 실천적으로 작동시키는 이중의 연관을 방법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작동시켜야 한다.” (15쪽)

하이데거 스캔들에서 하이데거의 비판자들은 그의 텍스트를 성급하게 사회적으로 환원하여 읽는 반면, 하이데거의 옹호자들은 그의 텍스트에 대해 오직 내적 독해만을 추구한다. 그러나 부르디외가 보기에 하이데거는 순수하게 정치적인 관점에서만 또는 순수하게 철학적인 관점에서만 다룰 수 없다. 그는 두 지점 모두 하이데거가 본인의 정치적·윤리적 원리들을 철학장이 부과하는 형식적 제약 때문에 철학적으로 승화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간과한다고 지적한다. 결론적으로 부르디외는 하이데거 철학을 정치적으로만 혹은 철학적으로만 독해하는 것을 거부하고 소위 ‘이중의 독해’를 통해 이를 넘어서고자 한다.

“그의 하비투스야말로 정치장과 철학장의 상동을 토대로 정치적 위치와 철학적 위치의 상동을 수립하는 실천적 연산자다. 이 하비투스는 실상 서로 다른 장에서 그가 점유하는 서로 다른 위치들(예를 들어, 사회적 공간에서는 중간 계급이면서 이 계급 중에서 대학 계파라는 위치, 대학장의 구조에서는 철학자라는 위치 등)과 결부된, 마찬가지로 이러한 위치들로 이어지는 사회적 궤적, 즉 지식장에서는 성공을 거두지만 여전히 불안한 지위에 있던 제1세대 대학교수의 궤적과 결부된 성향들 및 이해 관심들 전체를 통합하고 있다. […] 지성계와의 곤혹스럽고도 긴장된 관계 덕분에 하이데거는 좀처럼 있을 법하지 않은 희귀한 사회적 궤적을 밟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이러한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철학장에서의 그의 특수한 위치를 이해할 수 없다.” (85쪽)

부르디외는 본인 사회학의 핵심 용어인 하비투스(habitus), 장(champ) 등을 활용하여 하이데거를 분석한다. 따라서 이 책은 하이데거 철학의 독특한 '애매성'을 활용해 철학과 정치 간의 관계, 철학장의 상대적 자율성 등을 밝힘과 더불어 부르디외 사회학을 하이데거 철학이라는 정전에 적용한 방법론적 예제라고 볼 수 있다. 하이데거 철학의 독특함이 생성된 사회적 조건을 밝힘으로써 하이데거의 저작을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연 것이다. 그는 하이데거 스스로도 사회적 구조의 산물인 행위자이며 그가 사회적 공간들의 필연성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하이데거 철학의 맹목성을 지적한다. 이는 소위 ‘자기 정초성’을 지닌다고 여겨졌던 철학에 대한 사회학의 반격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부르디외는 하이데거 철학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순수한 존재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론은 정치적 존재론일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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