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시공을 채우고 있던 ‘모순 가득한’ 음악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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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시공을 채우고 있던 ‘모순 가득한’ 음악의 얼굴
  • 이경분 한국학중앙연구원·음악학
  • 승인 2021.05.1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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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책, 나의 테제_ 『수용소와 음악: 일본포로수용소, 테레지엔슈타트, 아우슈비츠의 음악』 (이경분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428쪽. 2021. 03)

<수용소와 음악>을 구상할 때 원래 가졌던 가설은 제1차 대전 시기 일본 포로수용소에서 오케스트라 음악을 연주했던 독일·오스트리아 군인들의 경험이 20년 후 나치 강제집단수용소 정책에 흘러 들어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제1차 대전의 독일군 포로 중에는 내셔널리스트가 많았으니, 전쟁이 끝나고 귀향한 후, SS 대원이 되어 출세한 이들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독일군 포로 중에 귀국 후 일본 전문가가 되어 나치독일과 일본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가까워지는 데 기여한 사람도 있었으므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감히 이런 질문을 하면서 그 흔적을 찾기 위해 베를린의 연방 아카이브로 갔다. 그곳에는 제1차 대전 중 일본 포로수용소의 독일군 자료 뭉치가 보존되어 있었다. 포로들이 독일적십자사를 통해 받았던 가족의 송금 영수증부터 편지, 사진, 포로올림픽 포스터, 음악 프로그램과 팸플릿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100여 년 전의 빛바랜 자료 속에 포로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아카이브에서 나의 가설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나의 실수인지 아카이브 직원의 실수인지 알 수 없지만, 착오로 받게 된 제1차 대전 자료들에는 영국과 뉴질랜드, 캐나다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의 문서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서구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도 일본 포로수용소 못지않게 활발한 음악 활동이 전개되었음을 보았다. 그들은 정식 교향악협회까지 만들어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심포니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 흔적을 들여다보니, 포로수용소의 오케스트라는 일본 포로수용소만의 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원래의 가설은 가설로 남기고, 수용소에서 음악의 역할을 탐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 대상은 제1차 대전 중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 활동으로 흥미로운 일본 포로수용소, 제2차 대전 중 나치 수용소 중에서도 음악 활동이 매우 독특한 체코의 테레지엔슈타트 그리고 살인공장으로 악명 높은 나치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로 정했다. 나지막한 포로들의 고통의 목소리가 테레지엔슈타트를 지나 아우슈비츠에 이르자 인간의 귀가 들을 수 없는 주파수로 변한다. 포로들의 음악을 통해 음악이 삶과 죽음, 그리고 자유라는 본질적인 것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탐구하고자 했다.  

지금까지 이 세 수용소의 각각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일본 포로수용소와 나치 수용소를 함께 살펴보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다소 위험한 조합이라 할 수 있는 이 연구대상들을 함께 탐구하면서 기대했던 점은 평상시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음악의 역할과 이용 가치가 거의 최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베드리히 프리타(1906-1944)가 테레지엔슈타트에서 그린 그림: Film and Reality (영상과 현실)<br>
베드리히 프리타(1906-1944)가 테레지엔슈타트에서 그린 그림: Film and Reality (영상과 현실)

책의 I부에서는 제1차 대전 시기 일본의 반도와 구루메 포로수용소에서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 포로들의 음악 활동을 살펴보았다. 포로들에게 가장 폭력적이었던 구루메 수용소에서도 평화적인 수용소로 유명했던 반도 수용소에 못지않게 포로들의 음악 활동은 활발했다. 여기서는 음악=평화의 동일시에 대한 질문을 논의했다. 

II부에서는 제2차 대전 시기 체코에 위치한 테레지엔슈타트 게토 수용소에서 포로들이 어떻게 창의적인 음악 활동을 하였는지 서술했다. 수감자 대다수는 체코 및 독일의 유대인으로서 대부분이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학살되었다. 이곳에서 작곡된 음악 작품들은 죽음이 늘 일상을 지배했던 곳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보기 힘들 정도로 밝고 명랑한 음악이다. 죽음과 절망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밝은 것을 추구하는 심리를 엿볼 수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20세기 체코 음악사의 중요한 수준 높은 음악이 여기 수용소에서 탄생했다는 점이다. 이 음악의 작곡가들은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학살되었지만, 음악은 지금도 연주되며 생명력을 증명하고 있다. 

베드리히 프리타(1906-1944)가 테레지엔슈타트에서 그린 그림: Temporary Living Quarters for New Arrivals to the Ghetto (테레지엔슈타트의 수감상황)<br>
베드리히 프리타(1906-1944)가 테레지엔슈타트에서 그린 그림: Temporary Living Quarters for New Arrivals to the Ghetto (테레지엔슈타트의 수감상황)

III부에서는 아우슈비츠에서 음악이 이용된 다양한 역할을 서술하였다. 일본 포로수용소에서 음악은 포로들의 자발적인 음악 활동이었고, 테레지엔슈타트에서는 나치의 강제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음악가들의 자발성이 펼쳐졌다면, 아우슈비츠에서 음악 연주는 명령에 복종하는 행위였다. 명령하는 측은 나치 SS사령관이었고, 연주로 살아남은 수감자들은 다양한 국적의 음악가들이었다. 음악은 직업적 살인자들에게도 심리적 위안을 주는 매체일 뿐 아니라, 수감된 음악가들에게는 생존의 기회를 던져주는 생명줄이었다. 강제 이송된 90% 이상의 유대인이 불구덩이에 던져진 지옥의 아우슈비츠에서도 소수의 음악가들은 음악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음악을 아름다움의 상징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여기는 단순한 생각은 이 책을 읽은 후 의문으로 변할 것이다. 음악이라는 매체가 폭력과 살인의 ‘백그라운드 뮤직’이 될 수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이 아니다. ‘음악=밥’의 생존 수단이 될 수 있었고, 동시에 처참한 지옥 바깥에 자유로운 세상이 있음을 알게 해주는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었다. 수용소에서 음악은 거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수용소와 음악>은 다시 세상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나치들에 의해 이름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뛰어난 음악가들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썼다. 유례없는 나치의 유대인학살은 제2차 대전이라는 전쟁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비극이다. 이 책을 통해 전쟁의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는 한반도에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6·25와 같은 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도 함께 전달하고 싶었다.


이경분 한국학중앙연구원·음악학

독일 마르부르크대학에서 「나치 시기 독일의 망명 음악과 문학」이라는 논문으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안익태와 일본의 관계뿐 아니라 한국ㆍ일본ㆍ독일의 음악 문화 교류 전반으로 연구의 지평을 넓혀나갔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포로가 된 독일ㆍ오스트리아 군인들의 놀라운 음악 활동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이후 수용소 음악에 대한 관심은 한국전쟁 시기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옮겨 갔고,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학술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거제 포로수용소의 음악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술로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망명 음악, 나치 음악』, 『프로파간다와 음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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