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판결의 족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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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판결의 족쇄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1.05.09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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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_ 논설위원 칼럼

며칠 전 국회의 교육위원회가 마련한 <고등교육재정확충 및 고등교육위기 극복 방안 공청회>에서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대학 위기의 심화를 호소한 대학관계자와는 달리, 국회의원들은 ‘정부의 책임만 일방적으로 얘기하기보다는 대학이 국민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다는 점도 생각’하여야 한다든가 ‘사립대가 비리와 부정, 불투명성으로 학생과 학부모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는 국가 예산을 투여해 대학다운 대학을 만들어보자는 결심이 안 설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몇 달 전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여론조사(KEDI POLL 2020)>의 분석에 따르면 사립대학 지원 확대 정책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54.3%가 반대하였으나 찬성은 22.3%에 불과했는데, 그 이유는 ‘대학경영의 건전성과 투명성’과 관련이 깊다. 이렇듯 한국 사회에서 ‘사학’의 의미는 매우 부정적 인식 수준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교비의 횡령과 배임, 입시나 채용의 비리, 그리고 학사 개입에 그치지 않고, 이사회 회의도 개최한 바 없이 회의록이 작성되는 학교법인의 무단 운영 등 그 위법과 독단이 불러온 불신은 오랜 대학민주화운동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현실적 잔상이 되어 끝내 많은 족쇄를 만들었다.

그런 불법 사학에 철퇴를 내리고 다시 정상화하기 위해 1988년 조선대를 시작으로 그동안 50개 대학 법인에 임시이사를 선임하여왔다. 물론 상당수가 정이사를 선임해 대학 운영을 정상화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고등교육의 경우 10개의 학교법인이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당연히 임시이사는 조속한 시일 내에 임시이사 선임 사유가 해소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사립학교법 제25조 제2항). 그러나 이 엄중한 책무에도 불구하고 법원이나 법률, 그리고 교육부는 임시이사의 권한이 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임시이사가 선임된 소규모 지방 사립대학이나 전문대학이 처한 입시 상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데도 그 사학을 구하는 데 임시이사는 속수무책이다. 임시이사의 권한을 정이사와 다르게 봐야 할 현실적 배경은 전혀 없는 셈이다. 오히려 한시적으로라도 ‘적극적 조치’의 권한을 법률이 보장하는 게 맞다. 난맥상의 대학을 살리라며 선임한 임시이사의 손과 발을 국가가 오히려 묶어놓은 형국이다.

대학의 정상화, 즉 정이사 체제는 임시이사 선임 사유가 해소되어야 가능하므로 임시이사로서는 그들에게 주어진 권한으로써 부정·비리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른바 횡령한 교비를 환수하는 등 주로 대학의 재정 상태를 정상으로 바꿔놓아야 하고 임금 체불 등을 원인으로 하는 소송도 잘 마무리해야 한다. 학내의 다양한 의견을 잘 조율해야 하는 책무는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임시이사에게는 기본재산의 처분권이 전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횡령의 규모가 커서 이를 회수할 수 없는 경우 ‘재정기여자’라는 구원투수를 데려와야 하는 어려움마저 생긴다. 결과적으로 임시이사 선임 사유를 해소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미다. 물론 임시이사의 선임 사유가 가까스로 해소되었더라도 교비의 상황이 매우 어려워 정상화 조치가 이루어질 때까지 회복해야 할 물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에서도 임시이사로서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의 바탕에는 임시이사의 권한에 관한 2007년 ‘상지대 판결’ 후 형성된 교육부와 국회의 ‘소극주의’가 한몫하였다.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임시이사는 그 지위의 한시적·임시적인 특성으로 인하여 그 권한에 내재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적어도 설립목적의 본질적인 변경이나 정식이사 선임과 같이 학교법인의 일반적인 운영을 넘어서는 사항은 임시이사의 권한 밖의 일’이라고 판시하였다. 학교법인의 정체성은 이사의 연속이 아니라 정관의 목적에 따른다는 판시사항 등은 그 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에 의해 극복되었지만, 임시이사의 권한 자체는 ‘한시적·임시적’이라며 정립한 일반론은 거둬들이지 않았다. 즉, 정이사 선임 여부를 둘러싼 임시이사의 권한을 제외한다면 최소한 그밖의 권한은 정이사와 다르지 않다는 학문의 입장이 입법에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된 적이 없다. 이렇게 형성된 족쇄가 벌써 15년이나 흘렀는데, 교육부도 이런 소극주의를 충실히 뒤따랐으니 그 책임은 너무 크다. 구체적으로 교육부는 임시이사체제의 대학이 아무리 어려워도 아랑곳없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며 기본재산 취득과 처분행위를 불허하였다. 

그러나 이런 소극주의는 2007년 판결을 잘못 읽은 결과에 지나지 않기에 조속히 극복하여야 한다고 본다. 먼저, ‘일반적인 학교법인의 운영에 관한 행위에 한하여 정식이사와 동일한 권한을 갖는다’는 2007년 판결에 따르더라도 임시이사라고 해서 재산을 효율적으로 관리·운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므로 정관의 목적을 변경하는 등 그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한, 학교법인의 정상화 또는 학교법인이 경영하는 대학의 운영을 위하여 기본재산을 처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판단은 이처럼 문리해석으로도 충분하다. 더욱이 임시이사로 구성된 학교법인을 정상화, 즉 정이사 체제로 이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사립학교법 제25조의3(임시이사가 선임된 학교법인의 정상화) 등에서 2005년 또는 2007년 이후 입법되었다고 볼 수 있어 ‘임시이사는 정이사를 선임할 수 없다’는 2007년 판결의 역사적 소명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등교육법의 ‘학교의 폐쇄 명령’과 사립학교법의 ‘학교법인 해산명령’이 합헌이듯이 임시이사가 법률에 따라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관할청이 선임하였다면 그 권한은 정이사와 다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2007년 판결이 낳은 족쇄를 벗어버린다는 차원에서라도 국회는 관련 입법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만약 임시이사의 권한에 관한 입법이 긍정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임시이사가 선임된 학교법인일지라도 그 선임 사유가 해소되었는지에 관계없이 임시이사는 학교법인이나 대학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기본재산을 처분함으로써 그 물적 토대를 튼튼히 하여 위기의 대학을 정상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임시이사가 선임된 대학들의 숨은 넘어가는데, 국회와 교육부는 너무 한가하게 지내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대학평의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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