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의 안과 밖, 삶과 죽음을 가르다…장벽 안에서는 안정을, 밖에서는 고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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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의 안과 밖, 삶과 죽음을 가르다…장벽 안에서는 안정을, 밖에서는 고통을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5.03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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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벽의 시간: 결국 현명한 자는 누구였을까 | 안석호 지음 | 크레타 | 384쪽

저자는 국제 분쟁 전문기자로서 많은 분쟁지역을 방문하고 취재했다. 분쟁이 있는 곳에는 그가 있었고, 그곳에서 그는 분쟁지역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장벽들을 만났다. 그는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세력과 세력 간의 분쟁과 위기 상황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바로 장벽이라고 말한다. 한쪽은 장벽을 쌓고 다른 한쪽은 장벽을 넘어가거나 없애려 한다. 이 장벽은 누가 만들고 누가 넘어가는 걸까? 저자는 거대한 장벽들의 벽돌 하나, 철조망 한 가닥마다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수많은 갈등과 분쟁의 역사, 주민들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이 책은 20세기에 만들어진 다섯 개의 장벽에 관한 이야기다.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분리장벽, 미국의 멕시코 국경 장벽,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만들어진 철책과 장벽,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장벽’인 무역 장벽이다. 이들 장벽은 건설 주체는 서로 다르지만 만들어진 배경에는 미국과 소련, 영국, 독일, 중국 등 강대국의 이해와 역학 관계가 복잡하게 작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미국과 소련의 냉전 등 유럽과 아시아, 중동,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난 가장 굵직한 사건들과도 연관돼 있다. 위기와 갈등의 순간 탄생한 이들 장벽은 때론 갈등 확산을 막고 충돌을 막았지만 또 다른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다. 20세기에 건설된 다섯 개의 장벽, 그 되풀이되는 장벽의 시간을 통해 누가 현명했고 누가 어리석었는지, 또 그들은 우리 삶의 궤적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살펴본다.

냉전의 상징 베를린 장벽은 무너져 내렸다. 그 후의 독일은? 한때 두 개의 독일이 있었다. 이들 사이를 가르던 베를린 장벽은 냉전의 상징으로 굳게 버티고 있었지만, 자유를 갈망하던 동유럽 변화의 바람을 거스를 수 없었다. 40여 년간 분단의 역사를 끝내고 독일은 다시 하나가 되었지만, 독일 국민에겐 현재까지도 커다란 숙제가 남아 있다. 통일 이후, 독일은 서독의 시스템으로 국가를 정비했고 자연스레 서독 엘리트 대부분이 국가의 고위직을 차지했다. 서독인은 동독인을 차별했고, 이는 고스란히 동독인에게 상처로 남았다. 2019년, 독일은 통일 30주년을 맞이했다. 동독 주민 10명 중 6명은 여전히 스스로를 ‘2등 국민’이라 생각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장벽은 보안장벽인가, 아니면 분리장벽인가? 소위 ‘이·팔 분리장벽’은 이스라엘이 쌓아 올렸다. 2000년대 초 팔레스타인 과격분자의 테러 공격이 심해지면서부터다. 이 때문에 ‘보안장벽’, ‘테러 방지 장벽’이라고 부르지만, 이 장벽은 테러범만 막는 것이 아니었다. 기존에 정착해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장벽에 갇혔다. 대대손손 땅을 지켜온 사람들이 영주 허가를 받아야 했고, 땅을 잃은 사람들은 노동자가 되어 이스라엘로 나가야 했다. 이렇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가르는 장벽을 직접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손으로 쌓아 올렸다. 생존을 위해. 

미국-멕시코, 두 나라의 경계지대는 왜 죽음의 땅이 되었을까?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선은 3144km에 달한다. 지난 미국 정부는 이 국경선을 따라 장벽을 건설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멕시코 사람이 미국 땅으로 몰려든다는 게 이유다. 세상에서 가장 긴 장벽의 시작은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아직도 수많은 멕시코인이 몰래 국경을 넘는다. 장벽이 세워질수록 밀입국자들은 점점 뜨거운 사막과 험준한 계곡, 깊은 강 등 위험 지역을 거쳐야 하고 국경지대에서는 매년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수많은 불법과 범죄가 저질러지고 사람들은 신음한다.

가장 폐쇄적인 장벽 DMZ, 비무장지대에도 균열과 붕괴는 일어날까?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가장 완벽한 장벽 DMZ. 한반도를 가르는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한은 각각 2km씩 후퇴해 비무장지대를 만들었다. 완충지대를 만들어 무력 도발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긴장도가 높은 휴전지역으로 꼽힌다. 그 어떤 장벽도 비무장지대 장벽처럼 완벽할 정도로 상호 이동을 통제한 장벽은 없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영속하는 장벽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무역 장벽, 다시 갇히고 막힌 것들은 무엇인가? 전 세계 무역 질서에 있어서 장벽을 쌓고 말고는 강대국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결정돼왔다. 강대국이 국내산업 경쟁력이 높아져 상품을 더 많이 해외에 팔아야 할 때면 자유무역을 밀어붙이고, 그렇지 않으면 보호무역을 외쳤다. 전 세계적 경제 위기가 닥치면 각국은 너도나도 앞다퉈 무역장벽을 높여 보호무역주의로 기울었고, 결과적으로 이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미·중 간 무역 전쟁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이상 자리잡아 온 국제무역과 통상 질서를 흔들고 있다. 많은 나라는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선택의 갈림길에서 힘든 시간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건설 동기가 무엇이든 결국 장벽의 존재 이유는 특정 지역의 사람과 물자 등 교류를 단절하는 데 있다. 누군가 잠재적 위협 세력을 규정하고 자신과 이들을 분리하려고 장벽을 만든다. 자연스럽지 않은 장애물, 장벽이 생길 때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기 힘들다. 장벽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가야 한다. 장벽을 세운 자는 이를 자신이 만든 질서와 경계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장벽은 더 높게, 더 튼튼하게 만들어진다. 하지만 장벽을 넘으려는 의지도 쉽게 꺾이지는 않는다.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하지만 장벽을 넘으려는 시도는 끊이지 않는다. 기묘하고 과감한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고 애끊는 사연도 이어진다. 그러는 동안 장벽 주변엔 사람이 모이고 독특한 문화와 경제가 형성된다. 특수 산업과 도시가 발달하기도 한다. 장벽은 주민들의 생활과 경제를 바꾸고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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