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중독된 세계…자본주의의 진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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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에 중독된 세계…자본주의의 진화가 필요하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1.05.03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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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의 종말: 정점에 다다른 세계 경제,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 디트리히 볼래스 지음 | 안기순 옮김 | 더퀘스트 | 296쪽

이 책은 ‘지속적인 기술 혁신에도 왜 성장이 가속화되지 않는가’, ‘무엇이 경제 성장을 정체시키는가’, ‘성장 없이도 경제는 발전할 수 있는가’ 등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경제 성장과 침체의 본질을 방대한 데이터와 논증을 제시하며 탐구한다. 그 과정에서 저성장 또는 성장 둔화는 기존의 고정관념처럼 골칫거리가 아니며 ‘우리가 이룩한 경제 성공의 결과’라고 말한다. 오랫동안 ‘성장 경제(Growth Economy)’를 연구해온 저자는 이 파격적인 주장을 통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진정한 경제 발전을 위해 지금 우리가 무엇을 논의하고 기준 삼아야 하는지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위기는 지났고 침체는 누그러졌는데 경제 성장이 이전 수준만큼 가속화되지 않고 있다. 실제로 21세기의 세계 경제는 20세기와 확연히 다르다. 세계 경제의 바로미터라 할 수 있는 미국 경제성장률은 21세기 평균 1퍼센트대로, 20세기에 기록했던 성장률대로 전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현상은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 경제 선진국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오랫동안 성장 경제(Growth Economy)를 연구해온 저자 역시 경제 침체가 지나갔는데도 예상과 달리 성장이 가속화되지 않는 점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당시 미국 경제학계에서는 이런 성장 둔화 현상을 두고 주로 ‘혁신 또는 정책 실패’가 거론됐는데, 그것이 정말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경제 성장과 침체의 진짜 원인을 알기 위해 인력, 자본, 인구, 기술, 중국, 정부규제 등 흔히 알려진 경제의 핵심 변수를 거시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 연구를 정리한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 생산성: 생산성 위기를 불러온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 산업 구조: 상품에서 서비스로의 산업 전환 흐름이 경제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기술: 지속적인 기술 혁신 없이는 성장 가속화는 불가능한가?
- 정부: 세금 감면하면 경제 성장에 이로울까? 정부 규제가 성장을 둔화시킬까?
- 중국: 대중국 수입의 증가가 성장 둔화를 유발했을까?
- 인적자본: 노동시간, 교육, 삶의 질 등이 경제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 인구: 고령화, 출산율 저하, 소가족 선호 등은 경제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시장지배력: 기업의 양극화, 독과점 등이 기업의 투자와 혁신을 저하시킬까?
- 불평등: 불평등이 성장 둔화를 유발했을까?

방대한 경제 데이터와 기업 자료를 정교하게 분석한 끝에 저자는 “경제 성장 둔화는 기피해야 할 골칫거리가 아니며, 20세기에 우리가 이룩한 경제 성공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주장한다. 성장 둔화의 주요 원인은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기술 혁신과 정부 정책의 실패나 대중국 무역, 불평등이 아니라 ‘생산이 상품에서 서비스로 이동한 현상’과 ‘고령화, 출산율 저하, 소가족 선호로 나타난 인구 변화 현상’임을 밝힌다. 그리고 이 두 가지 현상은 경제가 충분히 성장했고, 그로 인해 생활 준이 향상된 데서 기인한다.

지금까지의 경제는 사람들의 물질적 요구를 놀랍도록 성공적으로 충족해왔다. 이렇게 물질적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소득이 증가하면 출산율이 떨어진다. 부모가 자녀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자녀를 키우기 위해 놓치는 소득과 시간(여가)과 같다. 그런데 경제 성장으로 지속적인 임금 상승이 일어나면서 한계비용(포기한 소득과 시간)이 매우 커져 사람들은 적은 수의 자녀를 원하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출산율 하락은 부분적으로 경제 성장의 한 가지 결과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가전제품의 혁신과 피임 기술의 발달로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게 된 것 역시 출산율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21세기에 노동력으로 유입되던 인적자본의 규모가 줄어들었고, 이것이 다시 성장 둔화에 가장 주효한 원인이 되었다.

생활수준의 향상은 인구 구조의 변화를 넘어 ‘소비 패턴의 변화’ 나아가 ‘경제 산업의 구조와 비중’에도 영향을 미쳤다. 상품 가격이 더욱 저렴해지면서 사람들은 상품으로 집을 가득 채우다가 점차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향으로 지출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 현상은 경제활동의 중심을 물리적인 상품 생산에서 서비스 공급으로 전환되게 만들었고, 구조적으로 상품 생산 산업보다 서비스 산업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의 제약을 가져왔다. 이것이 세계 경제의 성장 둔화를 이끈 두 번째로 주효한 원인이다.

결국 이 책에서 저자는 저성장에 관한 여타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다른 ‘낙관론’을 제시, 기존의 성장 만능주의를 되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정말 이것이 위기인가’, ‘경제 성공을 측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현재의 둔화세는 경제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일까’ 등 경제 논쟁의 방향을 재설정하고 성공적인 경제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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