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을 통해 ‘우리 안의 원시인’을 직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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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을 통해 ‘우리 안의 원시인’을 직시하다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5.03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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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염병 인류: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 | 박한선·구형찬 지음 | 창비 | 360쪽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사회문화적 갈등이 첨예하게 깊어지고 있다. 국경 봉쇄와 이동 제한 등으로 발생한 불안과 공포, 증오의 감정은 아시아인 등 타자에 대한 혐오 범죄로 이어지기도 했다. 감염병은 단순히 의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경제, 종교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전방위적인 해결을 모색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간 숨겨져 있던 인류의 민낯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균과 인류가 공진화해온 역사, 감염병과의 투쟁이 낳은 심리적 기제와 사회문화적 관습들을 구체적 사례를 통해 면밀하게 짚어봄으로써 감염병을 둘러싼 여러 상황을 인간 본성(human nature)과 인간다움(humanity)의 차원에서 접근하며 팬데믹을 이해하는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감염병 상황에서 발생하는 혐오의 심리, 타자에 대한 배제의 행동이 질병에 맞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행동면역체계에서 비롯한 것임을 진화사적인 관점에서 되짚어봄으로써 팬데믹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갈등들을 이해하는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의 팬데믹을 선언한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를 둘러싸고 벌어진 상황들을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인식하겠지만 감염병을 둘러싼 여러 재난 상황은 인류가 수없이 겪었던 사건의 재방송이다. 여전히 매년 150만명이 결핵으로 사망하고, 40만명이 말라리아로, 70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한다. 감염성 질환은 전체 사망의 약 25퍼센트를 차지하지만 인류는 백신과 항생제 등의 의료기술로 감염병에 대해 승리를 거두었다고 믿어왔다. 그 신화의 장막을 코로나19가 거침없이 젖혀버린 것이다. 과학기술과 의료산업이 이토록 발전했음에도 왜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손을 씻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어찌해서 인류는 아직도 감염병의 공포에 시달리는 것일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득한 옛날로 돌아간다. 태초에 생겨난 직후부터 인류는 끊임없이 외부의 병원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했다. 지난 500만년간의 진화사 전체가 인류가 감염균에 맞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기록으로 가득하고, 그 진화적 기억은 우리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지금의 우리는 다름 아닌 ‘감염병 인류’인 것이다. 

저자들은 인간과 감염균의 치열하고도 기나긴 애증관계를 통해 인류가 지금의 모습으로 빚어졌음을 진화인류학, 진화의학, 인지종교학의 개념 틀로 설명한다. 각각 신경인류학자, 인지종교학자인 두 저자의 협업은 감염병을 둘러싼 인류의 몸과 마음의 진화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낸다. 과학과 인문학, 어느 한쪽의 언어만으로는 충분히 담아내지 못할 몸, 마음, 사회, 문화의 작동기제를 학제적 접근으로 포괄하고, ‘균과 인류의 존재를 위한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분석해낸다.

인류의 진화사는 곧 감염병의 진화사다. 인류를 괴롭히는 1400여종의 병원체 대부분은 스스로 불러들인 것들이다. 인류 스스로 끊임없이 감염병을 만들고, 만들어낸 감염병을 두려워하고, 그 원인을 애꿎은 곳에 전가하면서 증오와 혐오, 공포에 시달려왔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아 보이는 이러한 현상은 인류가 감염병에 맞서 살아남기 위한 행동에서 비롯한 것으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감염병을 통해 우리는 우리 안에 자리한 ‘원시인’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1장에서는 코로나19를 둘러싼 이러한 역설적 상황들을 감염균의 입장에서 역사적으로 조망한다. 2~4장은 감염균과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어떻게 공진화해왔는지를 다룬다. 불과 옷의 발명이 부른 뜻밖의 감염병 재앙, 기생충 박멸이 부른 알레르기 역습에 대한 내용이 흥미롭다. 5~8장은 인류가 두뇌를 얻으면서 빚어낸 독특한 면역체계, 즉 감염균과의 싸움을 통해 빚어진 인간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감염병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인간이 갖게 된 혐오, 회피 등의 적응적인 행동을 행동면역체계라고 하는데, 행동면역체계는 부패한 음식, 해로운 동물 등에 대한 회피를 넘어 성관계에 대한 도덕적 기준, 음식 금기, 외국인 터부,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 등으로 발전하게 됨을 다양한 역사적 사건, 종교적 관습과 의례, 사회문화적 금기 등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9~10장은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인류가 이룬 작은 승리와 ‘위드 코로나’(with corona)가 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혐오와 배제가 감염병에 맞서 싸워온 인류의 진화적 산물이라고 해서 그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들은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감염 가능성이 없는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과민한 혐오와 배제, 차별의 행동반응이 일어나는 것이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비극이다. 저자들은 우리가 현대사회를 활보하는 ‘구석기인’이라고 진단하며, 구석기 시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행동면역체계가 감염병 상황에서 강력하게 활성화되고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증명하고 이의 위험성을 예리하게 진단한다.

코로나19가 물러가도 강박적인 위생규율과 서로에 대한 감시, 집단 사이의 미움과 혐오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이러스에 관해 수많은 의사와 과학자가 연구 중이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바이러스 밖에서 일어나고 있다. 바로 인간이다. 인간 본성과 인간다움에 대한 다양하고도 냉정한 성찰이 필요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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