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대’ 라이프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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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스피노자 ‘대’ 라이프니츠
  • 서정욱 배재대 명예교수·철학
  • 승인 2021.05.03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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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스피노자 vs 라이프니츠』 (서정욱 지음, 세창출판사, 216쪽, 2021.03)

 “그래도 지구는 돈다.”
확실하지 않지만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1633년 교황청에서 재판을 받고 나오면서 남긴 말이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역시 분명하지 않지만 스피노자가 한 얘기로 잘 알려져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 말은 종교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아주 대표적인 말이다. 스피노자가 주장한 이 말 속에는 다급함 속에서 자유와 편안함을 찾을 수 있고, 자연법칙이라는 거대한 힘 앞에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스피노자가 태어난 다음 해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받았다. 종교개혁으로 신구교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서로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던 시기에 스피노자는 파문을 당하고 광학렌즈를 깎으며 철학을 하였다. 

  “당신의 박사학위 청구 논문을 거절합니다.”
뚜렷한 이유 없이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는 라이프니츠의 박사학위를 수여하지 않았다. 결국 라이프니츠는 다른 대학교로 옮겨 박사학위를 받았고, 교수초빙을 스스로 거절한 다음 당당하게 연금술협회 회원이 되어 수학, 물리학, 외교관, 가정교사 등을 하면서 역시 철학을 하였다.

  두 사람의 철학을 철학사에서 합리론이라고 한다. 합리론은 사람의 이성의 문제를 다루는 이론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지식이나 지혜를 얻는데 이성을 통해야 가능하다. 그런데 이 이성은 신이 인간에게 준 것이라고 당시는 믿었다. 합리론자로서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이 두 철학자는 신의 문제를 다루었다.

  스피노자는 『신학정치론』에서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변신론』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이어서 두 철학자는 신을 실체로 보고 실체의 문제를 다룬다. 스피노자는 『윤리학』을 통해서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단자론』과 『자연과 은총의 이성적 원리』에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세창출판사 세창프레너미 시리즈 중 『스피노자 vs 라이프니츠』에서 가장 먼저 다루어진 문제도 두 철학자가 신과 실체의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외적으로 다른 일을 하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철학은 오늘날까지도 찬연히 빛나고 있다. 이런 위대한 철학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 중 또 다른 이유를 두 철학자가 접한 인물에서 찾아보았다. 신의 문제를 쉽게 다루지 못했던 시절에 두 사람이 신의 문제를 나름 자유롭게 다룰 수 있었던 이유를 이런 인물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주로 위험한 인물을 접하거나 영향을 받았다. 자신보다 먼저 유대교로부터 파문을 당할 뻔 했지만 자존심을 꺾고 살려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살한 같은 공동체 소속 아코스타. 이탈리아 어부였으며 시민혁명 주동자였던 마사니엘로도 스피노자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스피노자로부터 직접 많은 영향을 받은 네덜란드의 계몽주의자 쿠르바흐 형제도 스피노자가 접한 위험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암스테르담은 당시 중고서점과 출판사가 많았다. 특히 검열이 심했던 당시 검열을 피해야 했던 저자나 책들은 이곳에서 다른 제목이나 표지가 바뀌어 출판되고 유통되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스피노자에게 라틴어를 가르친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는 급진적 진보주의자 판 덴 엔덴이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이렇게 당시로서는 위험한 인물이었던 이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정치적으로 후견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과 주로 교제를 나눈다. 대학에서는 당시만 하여도 위험한 학문으로 분류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접하였고, 유명한 발명가 바이겔과 만나 많은 조언을 들었다. 연금술협회에서 시작된 후원자와 친숙하게 지내며 많은 도움을 받았고, 후견인의 가정교사가 되어서는 여러 나라를 쉽게 여행할 수 도 있었다. 라이프니츠의 가장 든든한 후견인은 누가 뭐래도 프로이센의 초대 왕이었던 프리드리히 1세의 부인인 조피 샤를롯데와 그의 어머니 조피였다.

  이렇게 완성된 이들의 철학은 신과 실체의 문제 외에도 참 많이 닮아 있거나 비슷하다. 두 철학자도 다른 중세 철학자들처럼 신 존재 증명을 해야 했다. 존재는 실존하는 무엇이다. 신은 그렇지 못하다. 중세 철학자는 신의 교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이들까지도 이 문제를 다룬 것은 두 사람이 당시 철학을 할 때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스피노자의 결정론적 세계관과 라이프니츠의 예정조화설 이론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이미 존재하기 전에 결정되어 있다는 스피노자의 생각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으며 조화롭게 움직인다는 라이프니츠의 생각은 너무나 같다.

  1676년 두 철학자는 헤이그에서 만난다. 철학사에서는 이 두 사람의 만남을 세기의 만남이라고 말한다. 이 만남이 있고 몇 달 후 1677년 2월 스피노자는 자신이 출판하지 못한 책의 출판을 당부하며 조용히 죽는다. 하지만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는 외교 활동에 전념하였으며, 계산기를 만들고 미적분, 위상기하학을 발견하며 수학과 과학에 공을 남겼지만 철학은 뒷전이었다. 이후 조피 샤를롯데의 도움으로 베를린 학술원 초대 원장이 되고 많은 철학의 업적을 남겼다.

  갈릴레이 갈릴레오 재판이 보여 주듯이 당시 종교는 움직이는 지구를 멈추고, 멈춘 태양을 돌릴 정도로 강했다. 자연법칙보다 인간의 법칙이 더 강했음을 보여준다. 지구의 종말을 앞두고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생각에서 우리는 자연법칙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그의 강한 의지를 찾아 볼 수 있고, 학위 청구 논문이 거절되었을 때 보여준 라이프니츠의 행동 속에서는 자연법칙보다 더 무서운 인간법칙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두 철학자는 이렇게 위험한 시기에 신의 문제를 인간의 문제로 다루었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책을 출판할 수 없었고, 라이프니츠의 저서는 편지형식으로 귀족들에게 보내져 읽히게 되었다. 이렇게 두 철학자는 자연법칙과 인간의 법칙 앞에서 나약했지만 자유와 편안함으로 많은 저서를 남겼다. 이렇게 남긴 위험한 저서가 오늘날까지 읽힐 수 있는 것은 두 철학자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그들의 철학이 자유와 편안함을 원하는 인간의 삶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서정욱 배재대 명예교수·철학

계명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배재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 『인식논리학과 인식형이상학』 발표 후 『만화 서양철학사』, 『푸코가 들려주는 권력 이야기』 등 여러 편의 청소년을 위한 철학자 시리즈를 발표했다. 이어 『필로소피컬 저니』를 시작으로 『철학의 고전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읽기』, 『라이프니츠 읽기』, 『스피노자의 《윤리학》 읽기』 등을 통해 철학 고전의 요약과 철학의 대중화를 계속하고 있으며, 『소크라테스, 구름 위에 오르다』와 『아리스토텔레스, 시소를 타다』를 발표하면서 철학의 소설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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