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기자가 말하는 수학과 생물학의 만남, 수리 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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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기자가 말하는 수학과 생물학의 만남, 수리 생물학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5.03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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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 과학 리포트]_ 수학으로 새로운 생물학의 길 연다

우리나라 지폐 속 인물 하면 누가 떠오르나요? 오만원권 속의 신사임당부터 시작해 세종대왕, 이이, 이황 등 역사적으로 나라를 대표할 인물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럼 지폐에 수학자의 얼굴이 들어간다면 어떨까요? 지난 3월 25일 영국의 새로운 50파운드 지폐(한화 약 7만7천900원)에 수학자가 들어가 화제를 모았습니다.

영국의 새로운 50파운드 지폐 이미지 출처: 영란은행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50파운드 지폐 속 인물은 바로 영국의 수학자이자 암호학자, 컴퓨터 과학자이기도 한 앨런 튜링입니다. 2015년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다뤄지기도 했죠. 5파운드, 10파운드 지폐에 들어간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와 소설가 제인 오스틴에 이은 수학자라니, 얼마나 큰 업적을 세웠길래 지폐에 들어갔을까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앨런 튜링의 모습.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앨런 튜링은 천재 수학자이자 현대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수학자로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해 연합군이 승리하는 데 큰 기여를 했죠. 그리고 컴퓨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튜링 기계’를 만들고 이는 인공지능 분야를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아이디어가 됩니다. 이런 그가 다뤘던 분야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수리 생물학입니다.

생물학의 5가지 혁명에 비견할 ‘수리 생물학’ 혁명

수리 생물학은 말 그대로 수학적으로 생명현상을 분석하는 학문입니다. 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기구나 수학 기술, 또는 수학적인 영감을 생물학의 다양한 분야에 응용하죠.

예를 들어 앨런 튜링은 얼룩말의 줄무늬나 표범의 반점 무늬처럼 동물마다 다른 무늬를 갖는 이유를 살폈습니다. 무늬를 만들기 위해 표면에 퍼지는 성분을 ‘확산제’, 반대로 무늬를 만들지 못하게 하는 성분을 ‘억제제’라고 부르고 그 두 성분의 상호 작용을 ‘반응-확산 방정식’으로 나타냈습니다. 그리고 방정식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는 무늬를 분류한 ‘튜링 패턴’을 정리했습니다.

이처럼 수리 생물학은 겉으로 보기엔 불규칙해 보이는 생명현상에서 규칙을 찾아내고 정리합니다. 기존의 생물학으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각을 주죠. 이런 수리 생물학을 일컬어 영국의 수학자이자 대중 과학 저술가로 잘 알려진 이언 스튜어트는 그의 저서 ‘생명의 수학(The Mathematics of Life)’에서 ‘생물학의 혁명’이라 꼽았습니다.

수학자이자 대중 과학 저술가인 이언 스튜어트와 그의 저서 ‘생명의 수학’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사이언스북스

물론 이전에도 생물학에 수학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혔을 때도, 렌즈를 가공해 현미경을 만들어 생물을 관찰했을 때도 그 뒤에 수학이 있기에 가능했지요. 이언 스튜어트는 현미경, 린네 생물 분류법, 진화론, 유전자, 그리고 DNA 구조에 이르는 다섯 차례의 혁명 과정에서 수학은 필수적이었다며, 그다음 여섯 번째 혁명의 주자는 바로 ‘수학’이라 꼽았습니다. 지금까지의 생물학 혁명에서 도구 역할을 했던 수학이 수리 생물학을 중심으로 드디어 전면에 나섰다고 본 것이죠.

생명과 수학의 만남, 그 역사

 수리 생물학의 시작은 ‘피보나치 수’, ‘피보나치 수열’로 유명한 13세기의 이탈리아 수학자 레오나르도 피보나치입니다. 아래의 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생각한 게 그 시작이죠.

‘막 태어난 한 쌍의 토끼가 1달 후부터 매달 토끼 한 쌍을 낳는다고 할 때, 1년이 지나면 총 몇 쌍의 토끼가 있을까? 단, 태어난 토끼는 죽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문제의 조건에 따르면, 첫 번째 달에 막 태어난 토끼 한 쌍이 있다면, 두 번째 달이 지나고 세 번째 달이 지나면 처음의 토끼들이 새끼 한 쌍을 낳아 총 두 쌍의 토끼가 됩니다. 그리고 네 번째 달에는 또다시 처음의 토끼 한 쌍이 새끼 한 쌍을 낳아 총 세 쌍의 토끼가 되죠. 그걸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습니다.

피보나치 수열의 시작인 ‘토끼 문제’를 나타낸 그림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늘어나는 토끼의 수: 1, 1, 2, 3, 5, 8, 13, 21, 34, 55…

곧 피보나치는 계속 늘어나는 토끼의 수에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앞의 두 수를 더한 값이 다음 수가 된다는 규칙을 찾았습니다. 생물학적인 현상을 수학적인 눈으로 살펴 규칙을 찾아낸 것이죠.

이후 18세기에는 스위스 수학자 다니엘 베르누이가 천연두가 인구에 미치는 영향을 수학으로 설명한 데 이어 영국의 인구통계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의 증가를 지수 함수로 나타내기도 하면서 더 다양한 생물학 분야에 수학이 쓰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현대에 접어들면서 DNA 데이터와 같은 생물 정보의 양이 크게 늘고, 수학적 도구가 발전하면서 수리 생물학 분야는 더 거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수리 생물학 분야 이끄는 ‘IBS 의생명 수학 그룹’

수리 생물학 연구는 약 1000년의 역사를 가졌지만,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10년 정도입니다. 그만큼 연구하는 곳도 많지 않은데요, 기초 과학 분야를 연구하는 기초과학연구원(IBS)에 수리 생물학을 다루는 곳이 있습니다. IBS의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의 의생명 수학 그룹입니다.

우리 몸은 매우 복잡합니다. 수없이 많은 분자가 모여 화학 반응을 하고 상호 작용을 해 세포 하나하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이 세포가 모여 조직을 이루고 더 크게는 기관을 만들어 신체를 구성하죠. 의생명 수학 그룹은 이처럼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 조직, 기관처럼 신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크기의 생체 시스템과 상호 작용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학 이론을 만들고 이를 응용해 우리에게 도움을 줄 기술을 만듭니다.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 의생명 수학 그룹을 이끄는 김재경 CI 이미지 출처: IBS

의생명 수학 그룹을 이끄는 김재경 CI는 신체를 이루는 세포들의 상호 작용을 수학적으로 규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안정적인 생체 리듬을 유지할 수 있는 생물학적 회로를 설계해 2015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공개한 데 이어 60여 년 동안 생물학 난제였던 생체 시계의 속도가 유지되는 비밀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2019년에는 다국적 제약회사인 화이자와 함께 수면 질환 개선을 위한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동물 실험과 임상 시험 사이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와 사람마다 약효가 다른 원인을 찾아 알리기도 했습니다.

생체 시계의 비밀을 수학적으로 풀어낸 논문의 표지 이미지 이미지 출처: Kim et al, Mol Syst Biol (2019)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의생명 수학 그룹에서는 세포 사이의 상호 작용을 분석해 불안정한 생체 시계와 수면의 원인을 찾는 연구를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론은 추후 생명현상에 대해 이해를 돕는 것은 물론 암, 치매와 같은 난치병과 같은 생물학 분야 난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론을 바탕으로 스마트 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장치로 수면 패턴 데이터를 얻고, 그 안에서 규칙을 찾아 수면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김재경 CI는 “수면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지만, 수면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며 “의생명과학자와 협력을 통해 복잡한 수면의 근본 원리를 규명하고, 수면 질환의 원인과 치료법을 밝히는 획기적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생명 수학 그룹의 목표를 밝혔습니다.
 
수학과 생물학의 만남을 누구보다 환영했던 이언 스튜어트는 “21세기의 생물학은 20세기가 시작할 때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수학을 활용하고 있다. 22세기가 되기 전까지, 수학과 생물학은 서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시킬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앞으로 수리 생물학이 보여줄 수학과 생물학의 또 다른 모습은 어떨지, 기대해볼까요?

[출처] IBS(기초과학연구원) 포스트 |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 | 수학으로 새로운 생물학의 길 연다 | 2021.4.16 |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31256812&memberNo=37571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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