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지역 화해·공존 위한 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 구축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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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지역 화해·공존 위한 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 구축 주장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05.03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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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연구보고서]

■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총서_ <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토대 연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인문정책연구총서의 하나로 연구보고서 <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토대 연구>(연구책임자: 양일모 서울대 교수)를 지난 2월 12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경제 · 인문사회연구회 2020년도 인문정책연구사업』의 일환으로 수행된 연구과제 중 하나이다.

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의 연대를 구축하기 위한 종래의 논의는 주로 정치·경제·군사 등 실용적인 측면에서 교류와 협력이 주된 내용을 이루었다. 이러한 논의는 정치적 현실과 밀접하게 연동되면서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자율성과 항구성을 담보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교류와 협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내셔널리즘과 자국중심주의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아시아 지역의 현실주의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의 공동과제 그리고 인류공동체의 미래를 구상하기 위한 보편적 어젠다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의 목적은 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구상하는 인문 지식인을 발굴하여 지식인의 인적 교류와 지적 교류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물론 인문 지식인은 인문학자에 한정되지 않고, 지적 교류는 인문학적 주제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21세기의 인문적 지식은 종래의 인문학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등을 포함하는 융합적인 성격을 요청한다. 

이 연구는 아시아 지역의 화해와 공존을 위해 지역과 국가를 넘어서는 보편적 주제에 대한 지속적인 공동 탐구와 대화의 필요성 그리고 이러한 공동의 탐구와 대화를 위한 플랫폼으로서 지식인 네트워크의 구축을 주장한다.

* 이 연구보고서의 서론과 결론부를 소개한다.

◆ 연구 필요성

아시아에서 평화적 지역 공동체를 구상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군사’ 등 실용적 측면의 교류와 협력이 중요하지만, 자율성과 항구성을 담보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주제를 논의할 수 있는 지식인 네트워크의 구축이 선행되어야 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일본, 중국 등에서 ‘동아시아’ 지역에 주목하는 학술적 담론이 전개되기 시작했으며, ‘동아시아’ 혹은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용어가 관료, 학계, 시민사회에 이르기까지 유행처럼 번지면서 그 가능성과 문제점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ASEAN+한·중·일, 동아시아 싱크탱크 네트워크(NEAT), 동아시아정상회의(EAS), 한·일·중 삼국 협력(Korea-Japan-China Trilateral Cooperation) 등 아시아지역의 평화를 도모하는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어져 왔으나, 아시아의 지역 통합 논의는 기본적으로 지역의 정치・경제적 통합 혹은 안보공동체를 지향해 왔다. 21세기에 진입한 이후로도 아시아의 지역 통합 논의는 지속되고 있으나, 각 지역의 내셔널리즘의 발호로 인한 배제와 혐오, 경제적 상호 의존성이 강화되면서도 정치・안보적으로는 갈등이 심화하는 아시아 패러독스 현상이 발생했으며,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 등으로 교류와 연대의 논의는 급속히 냉각 중에 놓여 있다.

이에 지리적 개념을 넘어 인문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아시아를 조망하면서, 근대 및 근대적 지식체계의 문제 등을 포함하여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달로 인해 글로벌 차원에서 제기되는 보편적 어젠다를 발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대화 채널이 요구되고 있다. 인문학은 휴머니즘과 민주주의에 기초한 세계시민 정신을 함양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를 조망하기 위한 자양분이자 동력이다. 지금이야말로 인문적 소양을 지닌 지식인을 중심으로 타자의 언어와 문화, 역사와 가치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세계시민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문학적 고민은 자국 중심의 민족주의 혹은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아시아는 이질적이고 대립적인 ‘민족국가-세계체제’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해야 하며, 이 방향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지식인들이 지적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동일한 사고방식이 아니라 ‘동보성(同步性)’을 확보하는 것이 인문학적 사고에 주어진 과제다. ‘세계-민족/인류-국민’과 ‘자국문화-세계문화’를 대립축으로 간주하여 어느 한편에 서는 것보다는 그 양편의 경계(境界)에 서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문학-인문학자’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아시아 지역은 하나의 통괄적인 이름으로 종합되기 어려울 정도로 종교, 민족, 언어, 문화가 매우 다양하며, 근대기에 들어와서는 식민지와 피식민지, 민족해방과 국민국가건설, 자본주의적 근대화 혹은 사회주의적 근대화라는 서로 다른 역사적 과정을 거쳤다. 그러면서 자율적·항구적 교류와 협력을 가능케 하는 인문지리적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이 더 강해졌다.

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지리적 개념을 넘어 인문적 사유의 대상으로 아시아를 조망하면서, 아시아 각 지역의 다양한 문화적 특질과 다언어 사회를 포용하고, 민주주의 문화를 구축하고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인문학적 주제를 통한 지식인과 민간 차원의 지속적인 대화 채널이 필요하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집중된 국가권력의 향배나 부침에 따라 불안정성과 가변성이 크기 때문에 항구적·안정적 교류가 담보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극우 민족주의’ 혹은 ‘배타적 국가주의’로 국내적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정치권력의 속성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길항관계를 초월하는 ‘경계-인문학’적 측면에서 지식인과 민간 차원의 대화 채널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 연구 목적

21세기는 글로벌리즘과 함께 ‘아시아의 시대’라는 희망 속에서 출발했지만, 오히려 분쟁과 갈등, 반목과 오해, 혐오와 배제라는 경계할 만한 현상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내셔널리즘과 현실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국 중심주의적인 논의를 넘어서기 위해, 인류공동체의 미래를 구축하기 위한 보편적 어젠다를 발굴하는 일이 시급하게 요청된다. 또한 상호간의 대화 채널을 지속할 수 있는 보편적 어젠다를 논의할 주체로서 인문학자라는 좁은 의미를 넘어선 인문지식인을 발굴하고 아시아 지식인의 교류[人流]와 인문지식의 교류[文流]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은 민족-국가적 아이덴티티를 숙명으로 짊어지고 있으나, 한편으로 국가체제나 민족 범위를 초월하여 길항하는 사명과 의무를 지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중・일 등 동아시아 삼국 사이에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상호의존성이 증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의 반일(反日), 반중(反中) 감정, 일본의 혐한(嫌韓), 혐중(嫌中), 중국의 반일(反日)과 혐한(嫌韓) 현상은 지역적 교류에 상당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분쟁과 갈등의 해소 및 전쟁 위험 배제에 관한 논의, 반목과 오해의 역사를 극복하고 상호 신뢰 및 문화 다양성의 존중을 위하여 문화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논의 등이 어느 정도 활발하게 전개 되었지만, 배타적인 국민감정과 자국 중심주의적 정치가 맞물리면서 분출되는 각 지역의 혐오와 배제, 헤이트 스피치 등의 현상은 아시아의 지역 연대와 협력을 위한 논의에 심각한 장애가 되는 실정이다.

아시아의 지역 연대와 협력을 위한 논의는 ‘한-중-일’을 중심으로 하는 좁은 의미의 동아시아 협력 논의에 치중되기 쉽다. 아시아의 국민국가 건설 과정에서 특별한 위상에 처한 홍콩과 타이완, 북한, 오키나와 등의 지역은 그동안 국가 중심주의적인 연대나 공동체 논의에서 배제되어 왔다. 이러한 지역을 포괄하면서 정치, 경제, 안보 차원을 넘어설 수 있는 보다 넓은 차원의 구상력이 요청된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지식인의 교류는 좁은 의미의 동아시아에 국한하기보다는 범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혁신적 포용국가를 지향하기 위한 ‘신남방정책, 신북방정책’에 부합하는 권역별 인문학적 주제와 인문적 소양을 지닌 지식인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성이 날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다.

따라서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 대한 논의와 결부하여 일본, 중국, 타이완, 베트남과 인적 교류와 지식 교류를 위한 네트워크 구축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일본·중국과의 교류는 종래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한·중·일 사이의 혐오와 배제에 관한 논의에 대한 구체적 분석과 함께 그러한 논의에 내재하는 다양한 측면에 대한 심층적 분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타이완의 경우, 국민국가의 한계를 넘어서는 논의의 장(場)을 마련할 필요가 제기된다. 베트남과는 경제 분야의 교류가 활발하고 한류 열풍으로 문화적 협력과 교류가 활발한 특징이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로 한류 열풍이 타국에서 전통문화와 충돌할 여지가 있는 만큼 타국의 역사와 문화에 기반한 상호이해와 인식을 시도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시·공간적으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세계사적 현실에서, 아시아의 인문적 지식인들은 새로운 차원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아시아, 그리고 아시아를 넘어선 세계를 구상할 수 있는 비전과 상상력을 제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문학적 주제는 인문학 영역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전, 인공지능산업의 성장은 인문학을 위협하는 요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인문학이 비인간적 인격체, 즉 로보 사피엔스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참여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 제안한 인문적 소양을 지닌 지식인이란 인문학 영역에 관한 지식만을 가진 인문학자가 아니라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을 포함하는 융합적 소양을 지닌 지식인을 의미한다.

서구를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Industry 4.0)이 회자되면서 Smart Factory를 통한 산업분야의 구조조정, Cyber 공간과 Physical 공간이 고도로 융합하는 CPS(cyber-physical system) 등장이 예상된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미래사회가 포스트 휴먼 사회로 나아갈지라도 ‘Humanity’, ‘Human Co-becoming’ 등 휴머니즘은 증진되어야 한다. 모바일 인터넷과 클라우드 기술의 발전, 사물 인터넷 및 빅데이터 기술 등장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업무 환경 및 방식이 개선되면서, 아시아는 2030년경 전 세계 중산층의 66%, 중산층 소비의 59%를 차지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낙관적 전망과는 달리 인공지능과 고도화된 로봇의 등장에 따른 인간관계의 단절, 노동시장의 변화, 생명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인간의 생명 개념 모호화 등 윤리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이미 학계에서 대두하고 있다. 21세기에 전개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장치로서, 그리고 아시아의 문제에서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지적 대화의 무대로서 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 결론 및 정책 제언: 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 구축을 위하여

현재까지 한국은 중국과 타이완, 일본, 베트남 등 여러 아시아 국가들과 폭넓은 인적 교류(人流)’와 인문문류(文流)를 맺어왔으며, 이는 대중적 차원과 학술적 차원을 막론하고 이루어졌다. 향후 관건은 이런 다양한 층위와 방식의 교류를 증진하고, 이를 가로막는 장애요인을 해소하는 데 있을 것이다. 특히 2010년대에 들어와 교류의 지속성과 안정성이 정치・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저해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해 교류가 직접적으로 차단되고 있는 현실은 중대한 도전으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19는 그간의 교류를 반성하고, 나아가 그 한계를 직시하여 새로운 발전을 도모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한국과 아시아 각국의 교류는 일면 활발하였으나, 그 이면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잠재적 불협화음이 존재하였다. 중국과의 교류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상호소통, 연계와 대화, 동아시아 지평의 확대 등과 같은 개방된 자세를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았다. 타이완의 경우에도 양자 관계에서 외교적 관계로 인해 한국이 보인 상대적 수동성, 지식인 교류와는 분리된 민간 층위의 교류 등 여러 가지 한계가 노정되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혐한문제와 역사 갈등 등의 문제로 ‘화해’가 점차 요원해지고 있고, 베트남의 경우에는 한류 열풍의 화려한 무대 이면에서 지식인과 정부 정책결정자들 사이의 경계가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적 어려움이 가로 놓여 있는 국면에서 상황의 전환을 꾀하기 위해 지식인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다음과 같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정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 한·중·일 온라인 플랫폼 형식의 지식인 네트워크 구축

먼저 한・중・일 지식인이 먼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연차적으로 아시아로 확대해 갈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는 책임있는 기관이나 조직 - 예를 들면,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의 인문정책특별위원회 – 이 대화장치를 갖춘 플랫폼을 구축하고, 점차 아시아의 지식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론장을 열어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위상과 능력은 중국이나 일본 및 아시아의 지식인들을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다. 이 플랫폼은 학술, 사상, 이념의 넓이와 깊이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이 플랫폼은 현재 아시아 각국의 수익 구조 중심에서 벗어나 학술자료의 제공에서부터 담론의 형성까지 가능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국가중심주의적 접근 지양과 대중적 차원에서의 민간 교류 활성화

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 구축에 있어서 ‘국가’ 중심주의적 접근은 경계되어야 한다. 오히려 국민국가적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관점이 교차되고, 새로운 실험이 감행되는 장소들 사이의 연계가 더욱 중요하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타이완은 중화권 및 아시아 권역에서 네트워크의 결절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타이완은 중화권에서는 인문담론의 회합 지점으로서 중국 또는 다른 중화권 지역이 감당하기 어려운 독특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반
(半) 국가적 특수성으로 인해 국가중심주의를 넘어선 의제를 제시할 수 있다.

▶ 대중적 차원에서의 민간 교류 활성화를 위한 공동관심사 모색

아시아 지식인의 교류는 지식인 간의 교류에서 그치지 않고, 중국의 부상이라는 거시적 트렌드부터 아시아 각국의 자국중심주의·배타주의라는 미시적 트렌드까지 아시아 내의 광범위한 문제적 흐름을 직시하여야 한다. 즉 아시아의 지식인 네트워크에서는 인문주의적 관점에서 상호 대화를 통해 평화롭고 화해로운 미래상을 제시하고, 각국의 시민이 참여하는 공동의 대화가 가능한 어젠다를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지식인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류가 아시아 전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이미 대중적 차원에서의 민간 교류는 충분히 활성화되었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 저변과 심층으로 작동될 수 있는, 보다 장기적인 공동의 관심사를 계속해서 모색해가지 않는다면, 이러한 유행은 – 설령 아무리 오래 지속되더라도 – 그 기반이 취약할 뿐만 아니라, 한류 수용국에서는 오히려 반발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도 유념해야 할 것이다.

▶ 아시아 국가 간 문화적/역사적 유사성 탐색을 위한 인문교류 추진

역사적으로 아시아 국가들은 많은 문화적 유산을 공유해왔으며, 이는 문화적·역사적 유사성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통문화 속에서의 유사성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식민, 분단, 냉전 등 20세기 근현대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유사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아시아 전체의 관점에서 이러한 이슈를 다루는 것은 학술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아시아 내에 만연하고 있는 갈등의 요소를 약화시키고 화해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서도 중요하다.

특히 중국의 ‘화합학(和合學)’이나 일본 지식인들의 ‘화해론’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아시아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나름의 화해와 협력 방안의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화해론을 한 곳으로 아울러 현실에 구현하는 것은 한국이 역내 갈등을 극복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 학술적 차원에서의 공동 대화를 위한 폭넓은 인문교류 지원

상술한 목표들이 달성되는 것을 가로막는 최대의 현실적 장애물은 인적, 물적 자원의 부족이다. 아시아는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국가와 민족, 언어와 문화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아시아 지역 내에 존재하는 언어의 장벽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학술대회뿐만 아니라 시민단체의 모임에서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각국 내의 사회적 수요가 충족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인적·물적 기반도 취약한 실정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우선 상대국의 언어를 이해하고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번역 자원을 인적 자원, 웹DB 등을 통해 구축하고, 한국의 아시아 각국 전공학자, 아시아 각국의 한국 학자들을 지원하고 이들의 교류를 촉진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각국 사이에 학술교류의 저변을 넓혀나가는 전략이 요구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각국의 지식인뿐 아니라 시민사회도 활발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디지털 인문교류의 역할이 필수적일 것이다.

▶ 총괄하되 직접 간섭하지 않는 정부의 역할 모색

상술한 여러 방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구체적·단기적·반응적으로 지식인 교류를 활성화하려 시도할 경우, 자칫 국가가 지식인을 통제하거나 이용하여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의제를 선점하기가 쉽지 않고, 갈등의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 이전의 관계조차 회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아시아 지식인 네트워크는 중국의 굴기부터 아시아 내의 역사분쟁문제, 혐한문제 등 국가 차원의 논의, 정치적, 군사적 관점에서 풀리기 어려운 난제를 둘러싼 이슈가 국가와 정부 바깥에서 논의되는 대안적 장(場)으로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식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지원하면서도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내의 지식인들을 포괄하는 통합적인 기구, 예컨대 중국의 사회과학원 같은 공적인 학술 연구 기구의 설립이 요구된다.

▶ 장기적 비전의 수립

코로나19 사태가 극적으로 보여주었듯이, 국가 간의 교류에서는 예기치 못한 변수가 나타날 수 있으며, 선제적인 방식이 아니라 반응적인 대응방식으로는 이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상쇄할 수 없다. 따라서 국가 간, 지역 내 교류에 대한 장기적 비전이 있어야만 지식인 네트워크가 계획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예컨대 역사분쟁의 경우 개별 사안에서의 ‘피해자-가해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갈등이 지속될 경우 모두가 피해자라는 현실을 자각하고, 상대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 내의, 혹은 보편적 관점에서 시민사회 전체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장기적 목표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장기적·포괄적 비전을 바탕으로, 소수 전문가들의 제한적 대화가 아닌, 시민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폭넓은 교류와 협력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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