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줄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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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줄 세우기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21.05.0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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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배우 윤여정 씨가 2021년도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아 전 국민에게 큰 기쁨을 안겨 주었다. 특히 윤씨 시상 소감을 통해 큰 울림을 주었는데, 자신과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들을 향해 "우리는 서로 다른 역할을 했기에 경쟁으로 볼 수 없다"라며 "나는 그저 운이 좀 더 좋아서 이 자리에 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윤 씨의 소감은 모든 수상 후보들이 서로 전혀 다른 영화들 속에서 각자의 방향성을 가지고 자신만의 연기를 했는데, 여러 관점에서 평가되어지는 과정 속에 자신이 운 좋게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는 소위 개인 맞춤형, 정성평가를 한 결과다. 

우리 사회는 점수 중심의 한 줄 세우기식 경쟁에 익숙해져 있다. 점수는 공정하다는 맹목적인(?)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입 전형에서 수능 위주의 정시 전형이 확대되어온 배경이기도 하다. 그동안 여러 논란 과정을 거치며, 서울 주요 16개 대학은 2023학년도에는 신입생의 40% 이상을 수능 위주의 정시 전형으로 선발하게 되었다. 수능 중심의 정시 전형 확대는 2019년의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 정책인데, 계속 혼란과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점수는 과연 공정한 것인가? 

그런데 최근 지금과 같은 수능은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수능으로는 학업 역량을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고등학교 3년간의 각 과목 성적이 학업 역량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많이 나왔고, 그동안 정부와 대학도 이를 중시해왔다. 대학 학점을 수능 성적, 고교 교과 성적과 연계해 분석해보면 고교 교과 성적과 상관관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수능의 점수는 공정하지도 타당하지도 않다는 지적이 있다. 대학들은 그동안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학교생활기록부를 중심으로 학생의 역량과 잠재능력을 종합적으로 읽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2014년 당시 세계은행 총재인 김용 박사는 ‘글로벌 인재포럼’ 특강에서 가수 싸이와 만났던 이야기를 하며, ‘그는 정말 특출한 인재’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물론 학생부나 수능 점수로서가 아니라, 그만의 영역에서 그렇다며, 점수로 한 줄 세우는 한국 교육을 걱정했다. 교육은 학생들의 다양성을 끌어 안아주고 각자 재능이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트머스대 총장을 역임한 그는 ‘다트머스대의 입학생 선발기준은 나름대로의 다양성(diversity) 공급에만 초점을 맞추었다’고 하며,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생각을 한다는 것을 경험시켜주려 한다. 이것이 미국 교육의 특징이다.’라고 하였다. 다양성은 바로 창의성의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 2021년의 대학들은 교육부의 “대학 기본역량 진단” 때문에 많이 긴장하고 있다. 기본 취지는 빠른 미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각 대학이 특성화 방향을 스스로 찾아 혁신하여 교육의 질적 역량을 키우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진단 취지와 괴리감을 느끼는 현장의 목소리다. 지금의 평가 기준과 접근방식이 ‘대학의 기본역량을 정말 제대로 진단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이 ‘진단’도 획일적, 정량적 지표 중심으로 평가하여, 대학별 교육철학, 특성, 맥락, 경쟁력을 살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절차적 공정성’에 비중을 두어, 획일화된 틀로 형식적인 평가가 시행된다면, 학령인구 감소, 재정 위기 등을 극복해나가야 할 대학들이 나름대로의 생존, 발전 방향을 세우고 유지해나가기 더욱 어려울 것이다.

결국 ‘기본역량’의 개념과 다양해야 할 ‘대학별 특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며, 어떻게 대학별 고유의 역량을 제대로 읽어 진단의 ‘타당성’,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다. 대학의 유형, 역량, 규모를 타당성 있게 세부적으로 분류하며, 맞춤형으로 보다 합리적이고 합목적적인 평가 기준과 접근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대학별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현장실사가 이루어져야 하며, 평가위원의 윤리성, 전문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특히 ‘얼마나 잘 못하나?’를 보며 줄 세우기보다는, ‘얼마나 잘하고 있나?’를 드러내주며 컨설팅해주는 평가가 훨씬 생산적일 것이다. 

정부, 대학을 비롯해 우리 사회는 ‘평가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 각 개인, 기관이 다른 특성, 지향점, 환경 등을 가지고 있음에도 기본적으로 한 줄 세우는 방식을 선호해왔다. 이 과정에서 비교, 경쟁할 수 없는 내용들도 획일화된 틀에 넣어 줄을 세웠다. 아이들의 성장, 학생 선발, 교수 업적 및 대학 평가, 공무원 인사평가, 각종 기관 평가 등의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없는 배경의 하나일 것이다. 유엔 산하 기구에서 발표하는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올해 62위로 내리막길이다. 

우리 모두는 다양성을 수용하는 ‘여러 줄 세우기’를 위해, 그것이 힘이 들고 시행착오가 생기더라도 이를 극복하며 발전시켜 나가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100% 완벽한 시스템을 고집하면 제자리에서 맴돌다 결국 후퇴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하나의 틀에 넣어 줄 세우는 것만이 공정한 것이 아니다. 각 사람, 각 기관이 특성, 잠재력을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키워나가도록 도울 수 있는, 다양성을 수용하는 평가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양한 영역에서 최고가 나오도록 돕는 일이다. 그래야 여러 영역에서의 ’윤여정‘이 나오지 않겠는가.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연세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회장, 국제퍼지시스템협회(IFSA) 집행이사,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과학기술분과 의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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